[신년 수필-이대로] 송구영신

이대로(서북미문인협회/오레곤문인협회 회원)

 

송구영신

 

해마다 12월이 되면 왠지 모르게 허전함을 느낀다. 연초에 굳게 다짐했던 소망이 열두 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진전이 없었으니 말이다. 예년과 달리 올해는 코로나 역병의 끈질긴 저항으로 마냥 무기력한 상태의 연속이었다. 해가 바뀐다고 무슨 뾰족한 수가 생기려나 의구심마저 든다. 기대감이 약해진다. 그래도 시간은 쉬지 않는다. 이제는 맥없이 궁상만 떨고 있을 수는 없다. 억지로라도 털고 일어나서 다시 도전해 보아야겠다. 

노인들 치고 시간 빨리 지나간다고 말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 어릴 땐, 빨리 커서 얼른 어른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그렇게도 느리게 가던 시간이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집안에만 처박혀 있는데도 웬 시간이 그렇게 빨리 지나가는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누군가가 그랬다고 한다. 코로나 역병도 인간의 잘못으로 생긴 거라고, 사람이 저지른 잘못 때문에 기후가 변질하고 그에 따른 바이러스가 창궐하게 되었다고. 그리고 기후가 점점 더워져서 지구 땅덩어리 자체가 열을 받아 짜증이 나서 정신없이 돌다 보니까 시간이 빨라진 거라고. 

인생의 띠를 풀어본다. 그냥 뛰어놀고 재미만 있었던 유소년기, 꿈을 꾸고 꾼 꿈을 실현해 보려고 희망과 흥분에 젖었던 청년기, 있는 그대로 현실에 순응하면서 앞만 바라보고 최선을 다했던 장년기, 그러다가 늙어버린 노년기. 노년이 되면서 부터는 허탈감도 느낀다.  지난 세월을 하늘에 뜬 구름 위에 올려놓고 뒤적거리다가 한숨도 쉬고 후회도 한다. 

그 많은 사연이 엉키고 풀리면서 신기함을 느껴지기도 한다. 구름을 올려다보는 것도 힘이 들면서 이제까지 지내온 모든 것이 은혜였다는 것도 깨닫는다. 그래서 노인이 되면 철이 든다고 말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기 전까지는 안간힘을 다 쓰다가 지쳐 쓰러지기도 하고 실망과 자책으로 세상을 원망도 했다. 은혜를 은혜로 깨닫지 못하고 심지어는 원수로 갚으라는 악마의 소리를 엿듣기도 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설날이 되면 흉측하게 생긴 악마를 만들어 광장에 세워두고 불을 질러 태우면서 악을 쫓는 행사를 한다고 한다. 묵은 것은 보내버리고 새로운 것을 맞이하려는 마음은 어느 곳 누구든지 마찬가지인 것같다. 우리 고향에서도 설날이 되면 한패의 농악대가 북치고 장구치고 꽹과리를 울리면서 동네 뒷골목이나 동네 우물을 돌면서 악을 쫓아내는 행사를 하였다. 설날을 맞아 부엌에서 더운물 떠다 날라 우물가에서 목욕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는 것이 그 옛날 우리 고향의 풍습이었다. 

악을 멀리하고 선을 가까이하려 함은 왜일까?  원래 사람은 선한 심성을 갖고 창조되었단다. 세상에 적응하며 살아남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마음마저 변해버렸다고 한다. 변하는 것도 모르고 정신없이 살다가 연말이 되면 깨닫고 새해를 맞아 다시 새로워지려고 각오를 다진다. 그러나 그러한 새로운 각오와 다짐도 오래가지 못한다. 몇 주일이면 긴 시간에 속하고 다시 중독된 일상으로 휘말려 들고 연말이 돼서야 또 후회한다. 쳇바퀴 도는 다람쥐가 우리의 현실을 보여준다. 

일 년에 한 번만이라도 그런 생각을 하고 돌이켜보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생각한 김에 좀 더 생각해보면 어떨까? 일 년을 계절별로, 계절을 달마다, 매월을 주일마다---. 날마다 잠들기 전에, 매끼 식사때마다 새로워지고 있는가를 점검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순간순간마다 행하기 전에 한 번 더 점검하는 습관을 기른다면 우리의 마음과 몸은 늘 새로워지고 깨끗해질 것이다. 

생일이 여러 번 있으면 좋겠다는 동심과 같이 송구영신을 기리는 날이 더 많아져서 나이가 더 할수록 더 철이 들고 더 깨닫는 새로운 인생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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