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수필-박순자] 신발

박순자(워싱턴주 기독문인협회 회장)

 

신발


“어! 춘향이 발이네요.”발의 치수를 재던 구두 점원의 말이다. 마치 춘향이의 발을 본 듯이 그 점원의 표정이 우습기도 했지만, 귀가 쭈뼛하고 듣기가 싫지는 않았다. 아니, 은근 적으로 기분이 좋았다는 표현이 더 솔직하리라. 춘향이는 맘씨도 좋고 발도 예뻤나 보다.  허긴 버선발로 그네도 탔을 것이고, 널도 뛰었겠지?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상상해 본다.  

나의 언니는 자신이 아버지의 발을 닮아 신발을 맟추려면 많이 고민된다고 투덜대곤 했다.  실제로 언니는 모든 면에서 부모님의 장점을 많이 닮아 주위로부터 부러움을 많이 지니고 있었다. 그런 언니가 항상 자랑스러웠고 좋았다. 참, 공평하신 조물주의 덕분일까? 다행히 나는 어머님의 발을 닮아 예쁘다는 찬사에 위로를 받았으니, 자연적으로 신발 쇼핑에 열을 올린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으리라. 그래서 신발 사는 취미가 습관적으로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미국에 이민 올 때도 애지중지하던 신발들을 이민 보따리에 넣었고, 지금까지도 보존하고 있다. 여기서 살면서도 나의 필요성보다는 관습적인 즐거움이랄까 기분전환으로 신발 가게를 기웃거리곤 했다. 그럭저럭 사들인 신발들을 보면서 비싼, 소위 브랜드 신발을 아끼느라 오랫동안 보관했다.  

어느 날 이 귀여운 샌들을 신고 춘향이(?)의 발을 보여주리라, 뽐내고 싶은 마음이 발동했다. 아뿔사!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발바닥의 촉감에 신경이 쓰였다. 불편했다.  보니 한쪽 신발 바닥 반쪽이 사라졌다. 옛 말에 아끼면 뭐가 된다더니, 그 꼴이 되어 버렸다. 아! 아까워! 수선할까 말까 고민하다 곱게 버렸다.  

한번은 구두쇼핑에 나선 날이었다. 백화점 명품 코너에서 신어 본 신발은 신식 유행의 스타일이었다. 편하고 품질이 좋은 것이 명품이라는 나의 잘못된 선입견 때문에 무조건 구매하려는 허영심에 경고장으로 일깨운 날이었다. 정장에 어울리는 그 신발을 신고 외출했다. 조금씩 발에 불편함이 오더니 급기야 발뒤축에 통증까지 동반한 피가, 걸음을 방해했다. 

지금은 옷도 가볍고 편한 신발이 나에겐 명품으로 자리매김한 지 꽤 된 것 같다.  신발장에서‘우리 좀 보아주세요!’하는 표정으로 우리를 주시하고 있는 등산화 두 켤레가 나란히 웃고 있었다. “오늘 저 등산화를 신고 세인트 에드워드 스테이트 공원에 가서 걸어 보고, 불편하면 과감하게 버립시다.”둘이서 걸었다. 한 시간가량 오르락내리락 하는 하이킹을 하는 동안 겉모양과는 달리 얼마나 발을 편하게 하는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앞으로 이 등산화로 애용합시다.” 오랜 만에 우리 부부의 의견일치였다. 

이제 또 한 해가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펜데믹 공포에 떨었던 작년에 비해서 올해는 좀 고삐가 풀리나 싶더니, 오미크론이라는 바이러스가 연속극처럼 이어졌다. 이 빠른 세상, ‘잠깐 있다 없어지는 안개 같은 인생’인데, 왜 그렇게 편한 마음으로 삶을 영위하지 못했는지 뒤 돌아보게 된다. 마치 편한 신발이 우리의 심신을 즐겁고 행복을 가져다주듯이  2022년에는 나의 편한 마음이 이웃에 전달되어 편안함을 주는 편한 신발의 일상이 되기를 마음속에 간절히 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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