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1뷰]"사람 많은 곳 두렵다"…이태원 참사에 집단 트라우마 징후

필터링없이 온라인에 퍼진 생생한 참사 영상에 '충격' 호소 

놀이공원 취소, 지하철 타기 무섭다… 공포심 지속되면 치료받아야

 

#"너무 속상했어요. 저도 저기 있는 사람 중 하나였을 수도 있는데…" 
직장인 정모씨(28·여)는 30일 새벽 '이태원 참사' 기사를 보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100명이 넘는 또래가 평소 찾았던 이태원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믿기 어려웠다. 

정씨는 일요일인 다음날(31일) 친구들과 용인 에버랜드에 놀러가기로 한 약속도 취소했다. 정씨는 "뭔가 마음도 안좋고, 사람 많은 곳에 가는 게 내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150명이 넘는 사람이 서울 한복판에서 압사로 숨진 '이태원 참사'로 인해 세월호 참사나 9·11 테러 때처럼 '집단 트라우마'(collective trauma) 조짐이 감지되고 있다. 

특히 이번 참사 희생자들과 비슷한 연령대인 20대와 30대들은 참사 후 며칠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두려움과 우울감을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9·11 테러·세월호 참사 등…직접 겪지 않은 사회구성원들도 '트라우마'

3일 의료계에 따르면 집단 트라우마는 전쟁, 자연재해, 대규모 사고 등 충격적인 사회적 경험으로 인해 사회 구성원들에게 발생하는 정신적 외상을 말한다. 

앞서 지난 2014년 발생한 세월호 참사 때도 세월호 침몰을 실시간으로 지켜 본 많은 수의 국민들이 정신적 충격을 호소한 바 있다. 실제로 세월호 참사 다음날인 2014년 4월17일 하루에만 여객선 예약 취소 요청이 수천건에 달하기도 했다.

이번 이태원 참사 역시 마찬가지다. 핼러윈 파티를 즐기러 간 수많은 사람들이 서울 한복판에서 압사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우울함과 불안감을 말하고 있다.

대학생 한모씨(24·여)는 "(참사가 일어난 밤) 새벽 내내 심장이 두근두근거려서 잠을 못잤다"며 "친구들끼리 서로 이태원은 안갔냐고 안부 연락을 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답했다.

선릉역 쪽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김기열씨(29)는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졌다는 생각이 든다"며 "세월호 때도 안타깝고 슬펐지만, 이태원 사고 현장은 작년 핼러윈 때 나도 다녀온 곳이라는 생각에 새벽 내내 무섭다는 생각에 사고 소식을 찾아봤다"고 말했다.

◇서울 한복판 '압사'에…지하철·놀이공원 등 "인구밀도 높은 곳 불안" 호소

특히 인구밀도가 높은 서울 등 수도권에 거주하는 시민들은 인파로 인한 '압사'가 남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반응이다. 

지하철 9호선을 타고 출퇴근하는 직장인 강상훈씨(39)는 "매일 아침 신논현역에서 9호선 급행열차를 타고 여의도로 출근한다"며 "평소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이러다 깔려 죽는거 아니냐'는 농담도 하곤 했는데, 이태원 참사 이후로는 농담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숨을 쉬었다.

강씨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내리막길에서 사람들이 몇겹으로 쓰러지는 참사 영상을 봤다. 그 이후로는 문득 누가 밀거나 쓰러지면 지하철같은 곳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사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강씨뿐 아니라 이번 이태원 참사를 직접 경험하지 않았지만 SNS 등을 통해 현장에서 촬영된 참사 영상을 접했다가 정신적 충격을 호소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서대문구에 거주하는 정모씨(35·여)는 "유튜브에서 사람들이 쓰러져서 출동한 구급차와 심폐소생술(CPR)을 하는 사람들 옆에서 노래를 틀어놓고 춤을 추는 사람들의 영상을 보고 놀랐다"며 "같은 인간인가 싶을 정도로 혐오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직장인 김모씨(28)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상의를 벗고 얼굴이 창백해진 채 땅바닥에 널부러진 사람들의 영상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며 "그때 이후로 누가 이태원 관련 영상을 올렸을까봐 개인 SNS에도 안들어가고 있는 중"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전문가 "SNS 올라온 생생한 영상, 직접·간접 경험 벽 무너뜨려 트라우마 유발"

이처럼 이태원 참사를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적 충격을 호소하는 상황에 대해 전문가들은 소셜미디어나 미디어를 통해 현장을 접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해국 가톨릭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이태원 참사에서는) 영화에서 볼만한 상황들이 현실에서 발생했고, 그 상황을 생생하게 영상으로 접해 간접 경험과 직접 경험의 차이가 작아졌고, 직접 경험한 것 같은 트라우마 상태에 빠지기 쉽게 됐다"며 "SNS 등에 이같은 영상들이 상위에 올라 있으니 (자극적인 영상들의) 노출 빈도나 충격의 강도가 컸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트라우마의 증상 중 가장 흔한 것이 '경험의 재연'인데, 사람들이 많이 밀집한 곳에 가거나 할 경우 공포심이 들어 심장 박동이 빨라지거나 공황발작 같은 증상들을 느끼기 쉽게 됐을 것"이라며 "부적절한 행동을 한 사람들에 대한 분노, 희생자들에 대한 미안함, 억울함 등의 복합적인 감정을 외부로 투사하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도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입장문을 통해 "유가족과 부상자·목격자·지인 등 많은 국민들이 우울증, 죄책감, 수면장애 등 심각한 정신외상성 증상을 경험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사고 장면을 연상할 수 있는 자료영상과 현장사진의 노출만으로도 정신적 트라우마가 유발되고 지속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 교수는 "생리적으로 공포스럽고 당황스러운 일을 목격했을 때 나타나는 정상적 스트레스 반응이며, 미안함과 죄책감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 역시 마찬가지"라며 "(이같은 부정적인 상태로) 3~4일에서 일주일 정도 기능이 떨어질 수는 있지만, 더 오래 지속되고 일상생활에 지장이 발생할 경우엔 정신과 전문 치료를 받아보는 것이 좋겠다"고 당부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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