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구조 도운 상인들 "죽고 싶은 심정"…폐업 고민도

"상인들, 토하고 잠 못 자"…5일까지 '휴업' 애도

'헌화·음료 무료나눔' 추모…"생업 어쩌나" 우려도

 

"압사 현장 골목 앞에서 부상자들을 끌어냈어요. 사상자들을 끌어내면 소방관과 시민들이 뒤로 옮겨주고, 다시 제가 사상자를 끌어내면 누군가가 옮겨주고. 이날 이후로 정신적 충격이 커서 많이 힘들어요."


이태원 참사 현장 인근에서 클럽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참사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다. 사상자들을 현장에서 빼내고 구조를 도왔던 김씨는 참사가 발생한 직후 업장 문을 닫았다.

김씨는 트라우마와 함께 주변 상인에 대한 마녀사냥으로 인한 스트레스도 심하다고 토로했다. 참사 이후 인근 상인들이 가게 안으로 들어오는 피해자들을 막고 구조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퍼지면서 SNS에서는 해당 상점이 어디인지 추측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관련 글들을 볼 때마다 충격에 시달렸다고 한다.

김씨는 "충격으로 힘든 상태에서 SNS에서 주변 상인들을 모두 욕하는 악플들을 보고나니, 연예인들이 왜 악플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지 알겠구나 싶을 정도로 심정이 참담하다"고 했다.

 

CPR한 상인들 "계속 토하고 잠 못 자…폐업 준비도 많아"

이태원 참사를 목격하고 직접 피해자를 구출하거나 심폐소생술(CPR)을 실시했던 상인들도 같은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유태혁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 부회장은 "현장에 있었던 상인들은 며칠이 지나도 충격이 너무 커서 계속 토하고 잠을 못 자고 있어 인터뷰에 응하지도 못하고 있다"며 "국가애도 기간이 끝나는 5일이 지나도 당분간 문을 열지 않고 폐업까지 준비한다는 점주들이 있다"고 말했다.

유 부회장은 "CPR을 도왔던 우리 직원들은 현장 장면들이 잊혀지지 않아 더 이상 일을 못하겠다고 했다"며 "직원들의 트라우마가 심해 퇴사하고 치료를 받아야 할 상황이라 5일 이후에도 가게 문을 열지 않을 계획"이라고 했다. 

이태원 참사 현장을 둘러본 2일 인근의 식당, 카페, 클럽, 옷가게 등은 대부분이 휴업 중이었다. 불 꺼진 상점 외부에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11월5일 애도기간까지 휴점합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이태원 관광특구연합회는 이태원 상인들에게 5일까지 휴업을 권하는 문자 메시지를 발송했다. 100여개가 넘는 상점들이 국가애도기간 휴업에 참여했다.

◇"헌화에 써주세요. 무료입니다"…불 켜진 상점들도 추모 물결

문을 연 가게들도 각자의 방법으로 참사 피해자들을 추모하고 있었다. 소방·경찰관에게 빵과 커피를 무료로 제공하는 카페와 헌화를 위한 꽃을 무료로 제공하는 꽃집도 있었다.

참사 현장에서 300m 떨어진 곳에서 꽃집을 운영하는 홍서희씨(53)는 가게 앞에 흰색 장미 100송이를 비치했다. 꽃이 담긴 바구니에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헌화에 써주세요. 무료입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홍씨는 "우리 애가 24살인데 그 또래의 사상자가 많다고 한다"며 "3년 전에도 여기 골목에 사람이 몰려 위험한 상황을 목격한 적이 있다. 위험하다고 느끼긴 했지만 그런 참사가 일어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는데, 어른으로서 너무 미안했다"고 전했다.

그는 "국화를 가져다 놓으려고 했는데 꽃시장을 몇바퀴 돌아봐도 국화가 동이 나서 없었다"며 "희생자분들이 나이가 어린 학생들이니 장미를 좋아할 것 같아 하얀 장미라도 비치해놨다"고 덧붙였다. 

홍씨는 "비용이 많이 들지 않냐"는 질문에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전날 가게 앞에 비치한 70송이의 하얀 장미는 모두 헌화에 쓰였다. 홍씨는 "시아버님이 위중하셔서 내일 출근을 못할 수 있는데 자리를 비우더라도 애도 기간 중 꽃은 비치하고 싶어 100송이를 사왔다"고 말했다.

참사 현장에서 240m 떨어진 빵집은 5일까지 영업을 쉬지만 소방관, 경찰 등에게는 무료로 음료를 제공하고 있었다. 빵집 문 앞에는 '안타까운 참사로 돌아가신 분들을 애도하며 휴점합니다. 소방관, 구급대원, 경찰 분들께 커피 및 음료 제공'이라 적힌 안내문이 부착됐다.

상인들은 앞으로의 생계에 대한 걱정도 토로했다. 코로나19 이후 간신히 살아나던 상권에는 참사 이후 적막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

37년간 이태원에서 신발가게를 운영해온 이모씨(59)는 "참사가 며칠 안 되긴 했지만 인파가 확실히 줄었고 무서워서 이태원에 못 나오겠다는 사람들도 많다"며 "코로나19 이후 매출이 많이 줄었고, 거리두기가 완화됐다고 해도 성수기인 10월 치고는 아직 매출 복구도 채 안 됐는데 이번 참사로 걱정이 크다"고 했다.

이씨는 "우리 가게는 지방에서 일부러 찾는 손님들도 있어서 그냥 문을 닫을 수도 없는데, 참사로 돌아가신 분들 생각하면 마음만 아프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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