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없는 통화녹음은 불법?…무고·갑질 어떻게 밝히나

'윤상현 발의' 통비법 개정안 논란…"부당 목적 이용 금지해야"

해외에선 동의없어도 당사자 대화·통화 녹음 대부분 '합법'

 

최근 발의된 이른바 '대화·통화녹음 금지법'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대화·통화녹음 당사자가 상대방의 동의를 받지 않고 녹음할 경우 처벌하도록 하는 법률 개정안이다. 개정안은 사생활의 자유와 음성권 등을 이유로 제시했지만, 오히려 국민의 권리를 침해할 가능성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24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8일 통신비밀보호법(통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공동발의자로는 구자근, 김선교, 이명수, 양금희, 박대수, 박덕흠, 엄태영, 이헌승, 윤영석, 권명호 등 국민의힘 소속 의원 10명이 함께 이름을 올렸다.

개정안은 당사자 간의 대화까지도 양쪽 모두의 동의가 없을 경우 녹음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긴 경우, 최대 10년의 징역과 5년 자격정지에 처하는 처벌 규정도 추가됐다. © 뉴스1


◇윤상현 의원 발의 개정안 "동의없는 대화녹음, 최대 10년 징역까지"

현행 통비법에 따르면 '당사자 간의 1대1 대화'를 녹음하는 것은 합법이다. 통화녹음도 위법이 아닌 셈이다. 다만 공개되지 않은 타인간 대화를 녹음하는 것은 금지돼 있어 제3자가 다른 사람의 대화를 몰래 녹음할 경우 형사처벌 대상이다.

그러나 이번에 윤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안은 '대화 참여자는 대화 상대 모두의 동의 없이 대화를 녹음할 수 없다'는 내용을 추가해, 당사자 간의 대화까지도 양쪽 모두의 동의가 없을 경우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긴 경우, 최대 10년의 징역과 5년 자격정지에 처하는 처벌 규정도 추가됐다.

윤 의원 등은 통비법 개정안 제안 이유로 "일방의 사생활의 자유 또는 통신 비밀의 자유와 헌법에 보장되고 있는 인간의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의 일부인 음성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고 밝혔다.

상습적으로 폭언·폭행 등 이른바 '갑질' 의혹을 받고 있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부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이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출석하고 있다.2018.6.4/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대화녹음 금지법 설득력↓"…수사·재판서 애로도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동의 없는 대화·통화녹음이 헌법적인 가치를 특별히 위배하지도 않을뿐더러, 일률적으로 금지하자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헌법학자인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이나 행복추구권은 모든 기본권을 이야기할 때 들어가는 건데 대화·통화녹음이 특별히 문제 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선을 그었다.

장 교수는 "물론 나도 모르게 대화·통화녹음을 당할 경우 기분이 좋지 않을 수 있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대화·통화녹음은 '갑질'처럼 당사자가 부인해버리면 끝나는 사안에서 (증거 활용에) 필요한 경우도 있는데, 일률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그동안 한진 일가 사건 등 갑질 문제나 직장내 괴롭힘, 성범죄 및 성범죄 무고 등 다양한 사건에서 대화·통화 녹음을 증거로 피해자들이 억울함을 벗은 사례들이 적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찰관계자는 "국내에서는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보급률이 높은 만큼 당사자간 대화·통화녹음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고, 녹음된 내용이 수사에서 활용되는 사례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성범죄나 성범죄 무고 같은 사안에서는 재판에서도 피해자들의 증거로 많이 활용되는데 (당사자간 대화녹음이) 원천 금지돼 녹음 내용이 위법수집증거가 될 경우, 정확한 수사나 재판에 애로가 생길 수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는 통화녹음 기능을 지원하는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의 보급률이 높은만큼 녹음 파일이 수사나 재판에서 활용되는 경우도 많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 제공) © 뉴스1


◇美는 50개주 중 75% 대화녹음 '합법'…유럽은 일부 규제

해외의 경우 '사생활 보호'를 중시하는 프랑스, 독일 등 일부 유럽 국가에서 통화녹음을 규제하지만, 대부분 당사자의 대화·통화녹음은 합법으로 본다.

프랑스의 경우 상대방의 동의없는 대화·통화녹음뿐 아니라 녹음 파일 소지만으로도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단, 공익 차원의 녹음 및 보도에 활용할 경우에는 예외를 허용하고 있다.

독일도 마찬가지로 대화 상대방의 동의없는 대화·통화녹음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으며, 동의를 받을 때 '계약 관련 사항을 녹음하겠다'고 하는 등 이유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

반면 미국은 50개 주(州) 중 75% 이상인 37개 주에서 합법이다. 캘리포니아 등 13개 주에서만 대화·통화녹음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일본이나 영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상대방의 동의 없는 대화·통화녹음은 합법이지만, 제3자에게 공유하는 것은 금지하고 있다.

이외에도 캐나다, 스페인, 이탈리아, 스웨덴, 인도, 브라질 등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상대방의 동의가 없더라도 당사자의 대화·통화녹음은 합법이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통화중 녹음기능이 없는 애플사의 아이폰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다. 윤 의원은 ‘상대방 동의 없는 대화 녹음’을 금지하는 내용의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바 있다. (공동취재) 2022.8.22/뉴스1 © News1 허경 기자


◇"김무성 죽여버려"…'대화녹음 공개 곤욕' 윤상현 대표발의

앞서 국민의힘은 지난 1월 김건희 여사와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에서 나눈 대화를 녹음해 MBC에 건넨 이명수 서울의소리 기자 등을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김 여사도 이들을 상대로 1억원을 청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통비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당사자 간의 대화·통화녹음도 불법이 되므로 당시 정치권을 뒤흔들었던 김 여사의 녹취록 파문 등도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이 기자가 자리를 비운 사이 당사자로 참여하지 않은 대화가 녹음된 부분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으며, 지난 23일 이 기자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또 일각에서는 이번 통비법 개정안 발의에 '의도'가 숨어있는 거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대표발의자인 윤 의원은 지난 2016년 제20대 총선을 앞두고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를 공천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취지의 대화가 녹음된 파일이 공개돼 곤욕을 치른 바 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대화·통화녹음이 금지될 경우 가장 큰 이익을 보는 것은 정치인들이 아닐까 싶다"며 "악용 소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부작용을 막으려는 목적이었다면 녹음을 부당한 목적으로 이용하지 못하도록 금지한다든가 했어야 한다고 본다"고 꼬집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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