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5년]끝내 꽃 피우지 못한 남북관계…한일관계는 '시계제로'

임기 초부터 남북관계 박차…文 "평화 지켰으나 취약"

무난했던 美·中관계…日과는 틀어진 뒤 반전 못 찾아

 

문재인 정부 5년의 외교·안보정책은 '평화를 위해 달린 시간들'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2017년 취임 후 올해 임기를 마칠 때까지 문재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 실현을 외교·안보의 목적으로 두고 북한을 향해 지속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국제무대에서는 항상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종전선언→평화협정 체결→항구적 평화체제)에 대한 각국의 협조를 요청했다.

미국, 중국 등 주변국과의 관계 또한 대체적으로 긍정적이었던 것으로 평가받는 가운데 이른바 전통외교에 국한하지 않고 신남방·신북방정책 등 외교 다변화를 적극적으로 꾀한 점도 특징이다. 하지만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과는 위안부, 강제징용 등 과거사 문제를 두고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이에 사실상 문재인 정부 임기 내내 한일관계는 '시계제로'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임기 초부터 남북관계 박차…文 "평화 지켰으나 취약"

문 대통령은 참여정부(노무현 정부)에서 역할했을 당시 남북정상회담이 노무현 대통령 임기 말에 이뤄진 상황 등에 상당한 아쉬움을 느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고스란히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반영됐다. 문 대통령은 임기 초부터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 박차를 가했다.

문 대통령이 취임했을 당시 남북·북미관계는 일촉즉발의 긴장 상황이었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말폭탄 대치상황'이 심화돼 군사적 긴장도가 위험수위였다. 북한은 2017년 7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8월에는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9월에는 6차 핵실험을 실시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7월 '베를린 구상'을 통해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 북한이 참가할 것과 평창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후에도 광복절 경축사, 유엔총회 연설 등을 통해 '평화'의 중요성을 반복적으로 역설했다.

평창동계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열겠다고 외치면서 올림픽에 북한의 참여를 요청하는 문 대통령의 언급은 당시 상황에 비춰봤을 때 '공허한 구호'로 여겨졌다. 하지만 김 위원장이 2018년 1월1일 신년사에서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하겠다'는 깜짝 발언을 내놓으면서 상황은 급반전됐다.

이후 남북·북미관계는 급물살을 탔다. 문 대통령은 임기 동안 김 위원장과 총 세 차례(2018년 4월27일, 5월26일, 9월18~20일) 만났고 2019년 6월30일 남·북·미 정상회동까지 합치면 네 차례 대면했다. 이 중 9월18일부터 20일까지의 정상회담은 평양에서, 나머지 만남은 판문점에서 열렸다.

이땐 '한반도 문제는 당사자인 남북이 주도권을 쥐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도 크게 힘을 받았다.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토대로 2018년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사상 최초로 북미정상회담 또한 열렸다.

그러나 2019년 2월27일부터 1박2일간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렸던 2차 북미정상회담이 비핵화 합의 도출 실패로 끝나는 등 '빈손회담'이 되면서 꽃을 피우려 했던 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진행도 사실상 막을 내렸다. 문 대통령은 이후에도 꾸준히 남북·북미관계 진전을 위해 노력했으나 더는 불이 붙지 않았다.

다음엔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에 반발해 북측이 남북 간 모든 통신선을 일방적으로 끊었다가 복원하는 우여곡절만이 이어졌다. 2020년 초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북한이 문의 빗장을 걸어버린 점도 영향을 끼쳤다.

그럼에도 일련의 과정을 통해 남북 간 대화의 끈이 지속적으로 이어져오고 있다는 점은 높이 평가된다. 문 대통령은 최근 임기를 마무리하면서 김 위원장과 마지막 친서를 주고받기도 했다. 5년 임기를 결산하는 여러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평화를 지켰다'는 긍정적 자평도 했다. 문 대통령이 퇴임 후 남북관계 개선에 있어서만큼은 역할을 할 것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반면 북한이 지금까지도 도발을 이어오고 있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8일 기준 올해에만 15번에 달하는 무력 도발을 감행했고 이달 안으로 7차 핵실험에 나설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문 대통령은 이를 감안한 듯 "우리의 평화는 아직은 잠정적인 것이고 취약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 9월23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뉴욕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페이스북) 2019.9.24/뉴스1


◇무난했던 美·中관계…日과는 틀어진 뒤 반전 못 찾아

역대 정부와 마찬가지로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정책 최우선순위는 한미관계, 한미동맹이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6월 미국을 방문, 취임 후 51일 만에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는데 이는 역대 최단기간 내 개최된 한미정상회담이었다.

5년 임기 대부분을 함께 한 트럼프 대통령과의 '케미'는 나쁘지 않았다. 특히 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정책 추진 과정에 있어 '괴짜' 스타일의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이만한 진전을 이루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정부 내부 평가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앞서 손석희 전 앵커와의 특별대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방위비 분담금을 5배 이상 올려달라는 요구 때문에 어려움이 있던 적도 있지만 "한국과의 관계에서만큼은 아주 좋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 '톱-다운'(Top-Down) 방식으로 만났던 것은 "상당히 대담한 발상"이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 후임인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관계 또한 긍정적인 편으로 평가된다. 대표적으로 1979년 만들어진 한미 미사일지침이 총 네 번의 개정을 거치면서 완전히 종료됐는데, 이 중 세 번째, 네 번째 과정을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 바이든 대통령과 각각 진행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9월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회담으로 500㎏으로 제한됐던 탄두 중량을 무제한으로 해제했고, 2021년 5월 바이든 대통령과 만나 지침 자체를 완전히 종료했다. 이로써 우리 군(軍) 미사일 개발의 족쇄로 여겨졌던 '최대 800㎞ 이내'로 설정된 사거리 제한 또한 풀리게 됐다.

문 대통령은 퇴임 후 바이든 대통령과 만남도 가질 예정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오는 21일 문 대통령 후임으로 취임하는 윤석열 당선인을 만나기 위해 방한(訪韓)한다.

올해 수교 30주년을 맞은 한중관계는 문 대통령이 임기 초 회복을 위해 가장 공들였던 사안 중 하나다.

2016년 당시 박근혜 정부가 주한미군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합의한 이후 한중 당국 간 대화 채널은 축소됐고 보복 조치로 한한령(限韓令·한류 제한령)도 발동됐다. 이에 2017년 10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3불'(사드 추가배치·미 MD체계 편입·한미일 군사동맹 추진 불가) 언급을 통해 중국을 달래고, 문 대통령은 그해 12월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남을 가졌다.

시 주석은 이때 사드에 대한 중국측 입장을 언급하면서도 "한국측이 이를 계속 중시하고 적절히 처리하기를 바란다"며 발언 수위를 상당히 낮추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한한령이 완전히 해제된 것은 아니지만 차츰 한국 게임, 영화 등이 중국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청와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임기 중 시 주석과 정상회담 6회, 통화 6회를 진행했다. 다만 시 주석의 방한은 코로나19를 이유로 문 대통령 임기 내 한 번도 이뤄지지 못했다.

대일(對日)정책은 실패로 끝났다. 문 대통령은 과거사 문제와 미래지향적 협력을 분리해 대응하겠다는 '투트랙' 전략으로 일본과의 관계를 구상했으나 의지와는 별개로 과거사 문제가 한일관계의 전반으로 흘러갔다.

2018년 5월 일본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의 계기 한일정상회담 때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문 대통령의 취임 1주년을 축하하는 딸기 케이크를 준비하는 등 훈훈한 분위기가 연출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의 한일관계는 '수교 이래 최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아베 총리에 이어 스가 요시히데 총리, 기시다 후미오 현 총리까지 이어지는 동안에도 반전은 없었다.

문 대통령은 2015년 12월 박근혜 정부 당시 한일 양국 정부 간 타결한 '한일 위안부 합의'를 사실상 파기한 것으로 일컬어진다. 2017년 12월 문 대통령은 "이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을 다시금 분명히 밝힌다"고 했고 일본 측은 이에 강하게 반박했다. 여기에 2018년 10월 한국 대법원이 일제시대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전범기업에 제기한 손해배상 판결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리면서 양국 관계는 완전히 틀어졌다.

2019년 7월 일본 정부는 이를 대한(對韓) 수출 규제 조치로 대응했고 이는 다시 일본제품 불매운동,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흔드는 결과 등을 낳았다.

독도를 둘러싼 다툼,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 사도광산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 추진 등 한일관계는 협력보다 전선(戰線)만 추가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우리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산업이 100대 핵심품목에 대한 대일 의존도가 감소한 것은 '아픈 성과'로 거론된다.

이외 문 대통령은 신남방·신북방정책 등 외교 다변화를 통해 한국의 정치·경제적 저변을 넓히려 했고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남방정책은 아세안(ASEAN) 국가들과의 협력 수준을 주변 4강국(미·중·일·러)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로, 신북방정책은 유라시아 국가들과의 협력을 적극 도모하겠다는 목표로 추진됐다.

2018년 5월9일 오후 일본 도쿄 총리관저에서 열린 한일정상회담 오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로부터 대통령 취임 1주년 기념 케이크를 받고 있다. (청와대 페이스북) 2018.5.9/뉴스1

기사제공=뉴스1(시애틀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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