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어령 유언 "죽음은 애초에 난 곳으로 돌아가는 것…거기에 있겠다"

영결식 2일 국립중앙도서관 엄수…문체부 전현직장관, 문화계 인사 250여명 참석

김화영 교수 "17살 문학소년이 만난 젊고 패기 넘치던 우리 국어선생님"

 

고(故) 이어령 초대 문화부장관 영결식이 2일 오전 10시 서울 국립중앙도서관 국제회의장에서 엄숙하게 거행됐다.

영결식에는 유족과 전현직 문체부 장관을 비롯해 문체부 직원과 문화예술계 인사 250여명이 참석, 방역수칙을 지킨 가운데 고인을 추모했다.

문체부는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내며 한국예술종합학교와 국립국어원 설립, 도서관 발전 정책 기반 마련 등을 통해 문화정책의 기틀을 세운 고인을 기리고 예우하고 장관 재임 시 도서관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지성의 상징인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영결식을 거행했다.

영결식에서는 고인의 영정 입장을 시작으로 묵념, 장례위원회 집행위원장인 박정렬 문체부 문화예술정책실장의 약력보고, 장례위원회 위원장인 황희 문체부 장관의 조사, 이근배 전 대한민국예술원 회장과 김화영 고려대 교수의 추도사 등을 진행했다.

황희 문체부 장관은 "죽음은 '애초에 난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하셨던 장관님의 유지를 기리며 애써 슬픔을 달래보지만 비통하고 황망한 마음 가눌 길이 없다"며 "지난해 2월, 제가 문체부 장관으로 부임한 첫날 가장 먼저 평창동을 찾아 이어령 장관님을 찾아뵀다"고 말했다.

황 장관은 "당시 확신에 찬 모습으로 저에게 들려주신 장관님의 생생한 가르침에 대한 제 수첩의 기록들은 오늘 장관님을 보내는 저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한다"며 "생의 마지막 날까지 우리 시대의 옳은 목소리를 내어주신 장관님의 삶이 우리에겐 선물이자 희망"이라고 말했다.

전 예술원 회장 이근배 시인은 "선생님은 문단에 첫걸음 떼는 철부지 저를 손잡아 주시고 거두어주셨다"며 "임종하시기 이틀 전, 손을 잡은 저에게 겨우 '이근배 병풍' 하시며 선생님의 병상 바로 앞에 펼쳐놓은 글씨도 안되는 제가 쓴 가리개를 가리키셨다"고 말했다.

이 시인은 "저는 북받치는 울음을 겨우 참고 문밖에 나오고서야 터뜨렸다"며 "이 땅의 한 시대의 정신문화를 일깨운 우주를 휘두르는 빛의 붓, 뇌성벽력의 그 생각과 말씀 천상에서 더 밝게 영원토록 펼치시라"고 말했다.

문학평론가 김화영 교수는 "불과 보름 전에 뵌 선생님의 모습은 휠체어에서 간신히 일어서자 힘센 남자분이 포옹하듯 부축해 의자로 옮겨 앉으셨다"며 "1959년, 17살 문학 소년이 화동 언덕의 고등학교 교실에서 처음 만난 젊고 패기 넘치던 우리 국어선생님이셨다"고 회상했다.

김 교수는 "긴 세월을 동행하며 느끼고 생각하고 창조하는 정신의 도전을 선생님께 배웠다"며 "지상의 마지막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가만히 허공을 응시하다가 가셨다는 선생님, 죽음이 올 때는 고개 돌리지 않고 뜬눈으로 정 대면하며 '거기에 있겠다'는 선생님이 가장 명철한 선생님답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죽음을 기억하는 일이 삶을 진정하게 사는 것임을 가르쳐 주신 선생님, 메멘토 모리, 이제 편히 잠드소서"라고 맺었다.

영결식이 끝난 후 고인은 서울 서초구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한 뒤 충남 천안공원묘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고인은 60년 넘게 학자·언론인·소설가·비평가 등으로 활동했으며 초대 문화부 장관(1990~1991)을 지냈다. 지난해 10월에는 한국 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금관 문화훈장을 받았다.

고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암 투병 끝에 지난 26일 별세했다. 향년 88세. 유족으로는 부인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 장남 이승무 한예종 교수, 차남 이강무 백석대학교 애니메이션과 교수가 있다. 고인의 장녀 이민아 목사는 2012년 위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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