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대선은 처음"…민주당 텃밭 호남서 펼쳐지는 진풍경

윤석열, 광주전남 방문 역대 최다…호남 민심 구애 총력

김대중·노무현 정신 계승 주장도…"표심 효과는 지켜봐야"

 

"이런 대선은 처음이다."

20대 대선 투표가 임박하면서 여권의 핵심 지지기반인 광주전남에선 역대 선거전에선 찾아볼 수 없는 진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국민의힘이 더불어민주당보다 더 자주 호남을 찾고 그동안 금기 시했던 김대중·노무현 정신 계승도 강조한다.

대선 때면 으레 쏟아지던 지역 발전을 위한 대형 공약 대신 '복합쇼핑몰'이나 '흑산공항' 같은 지역 현안이 전국적 대선 이슈로 떠오르며 전체 공약을 뒤덮어 버리는 기현상도 나왔다.

호남 민심을 얻으려는 국민의힘의 '서진전략'이 낯선 풍경의 원인으로 꼽히는데, 효과를 거둘지 관심이 쏠린다.

◇윤석열 공식 선거운동 후 2차례 방문…보수정당 후보 최초

국민의힘은 이번 대선에서 호남 민심 공략을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지난 15일 20대 대선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이후 빡빡한 일정에도 10일간 2차례 광주전남을 찾았다.

역대 국민의힘 계열 정당(자유한국당, 새누리당 등)의 대선 후보 중 최다 방문이다.

2012년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와 2017년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는 공식 선거운동 시작 후 각각 1차례 광주전남을 방문했다.

윤 후보는 공식 선거운동 이틀째인 16일 광주 송정매일시장을 찾아 거점 유세를 벌였다. 일주일 뒤인 23일엔 전남 목포를 찾아 집중 유세를 펼쳤다.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도 광주와 전남을 오가며 집중 지원사격을 벌이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 22일 전남 신안 흑산도를 방문한 데 이어 광주에서 복합쇼핑몰 유치 간담회를 열었다. 24일에도 광주를 찾아 충장로에서 지원유세를 펼쳤다.

이밖에 김기현 원내대표, 태영호 의원 등도 잇달아 광주를 찾아 지지를 호소했다.

지역정가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대선에서 보수정당 후보가 이처럼 자주 호남을 찾는 것은 처음 본다"며 "국민의힘이 확실히 예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고 말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 23일 오후 전남 신안군 하의도 고 김대중 대통령 생가를 찾아 참배한 뒤 전시된 사진을 둘러보고 있다. 2022.2.23/뉴스1 © News1 구윤성 기자


◇ "김대중.노무현 정신 계승" 금기 깬 윤석열

윤석열 후보는 그동안 민주·진보 진영의 아이콘이자 국민의힘 계열 정당에선 언급조차 하지 않았던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도 치켜세우고 있다.

윤 후보는 지난 16일 송정매일시장 거점유세에서 "위대한 지도자 김대중 선생님"이라며 김 전 대통령을 두 번이나 언급했다.

23일엔 목포에서 유세를 하고 "저나 국민의힘은 지금 이재명의 민주당보다 더 김대중 정신에 가깝고 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김대중 정신을 구현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수정당 대선후보로는 처음으로 배를 타고 신안 하의도에 있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가를 찾기도 했다.

윤 후보는 생가에 있는 김대중 대통령 영정 앞에 분향·헌화한 후 "김대중 정신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기반한 국민통합 정신"이라며 "우리가 위대한 정신을 잘 계승해야겠다"고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거론했다. 윤 후보는 22일 전북 익산을 찾아 "노무현 대통령께서는 원칙 없는 승리보다 원칙 있는 패배를 선택한다고 하셨다. 노무현 대통령이 계셨다면 저렇게 도시개발사업에 3억5000만원 들고 가서 1조원의 시민 재산을 약탈하는 부정부패를 결코 좌시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을 거론했다.

국민의힘 계열 정당에서는 그동안 김대중 정신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을 차마 입에 올리지 못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선 일본의 자유민주당을 모델로 영구 집권을 위해 1990년 '보수대연합'을 추진한 이른바 3당합당의 원죄가 있어서다.

당시 여당인 민주정의당의 노태우 대통령과 제2야당인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 제3야당인 신민주공화당 김종필 총재가 3당 합당을 선언, 민주자유당을 출범하면서 김대중의 평화민주당은 고립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죽음에 이르게 한 원죄가 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총괄선대위원장은 "'노무현 정신'을 말하기 전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집요하게 조롱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것부터 먼저 사과하는 게 도리에 맞다"고 비판했다.

◇ 지역 현안인 '복합쇼핑몰''흑산공항'이 전체 공약 덮어

이번 대선은 이전과 다르게 지역 발전을 위한 새로운 국책사업 등 대형 공약은 없고 지역 현안이 전국적인 이슈로 부각하며 첨예한 논란을 빚었다.

국민의힘이 쏘아올린 '복합쇼핑몰'과 '흑산공항'이 대표적이다.

윤석열 후보는 16일 송정매일시장 유세에서 "다른 지역에 다 있는 복합쇼핑몰이 광주에만 없다. 민주당의 반대로 광주에는 들어서지 못했다"며 "광주 시민들이 간절히 바라고 있는 복합쇼핑몰을 유치하겠다"고 했다.

이준석 대표는 22일 흑산도를 찾아 "정권교체를 이루면 흑산공항을 반드시 건설하겠다"며 민주당을 저격했다.

이 대표는 "흑산공항 건설사업은 이명박 정부 시절 울릉공항과 같이 거론됐지만 문재인 정부의 공약 사항이었다. 지난 5년 동안 문 대통령께서 의지만 있었다면 흑산공항은 최소한 첫 삽을 떴어야 한다"며 "아직까지 첫 삽을 뜨지 못했다는 것은 이 지역에서 정당의 경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역대 대선에선 중앙정부가 풀어야 할 굵직한 공약이 나왔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22일 오후 광주 북구 운암동 한 카페에서 가진 광주시민과 함께하는 복합쇼핑몰 유치 공동대응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2.2.22/뉴스1 © News1 황희규 기자


2012년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대선공약으로 광주 자동차 100만대 생산기지 조성, 친환경 그린카 클러스터 구축 지원 등을 내놓았다.

2017년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5·18광주정신 헌법 전문 명기, 에너지신산업 메카 육성, 에너지밸리 조성, 문화수도 광주 조성과 문화 융합형 4차 산업 중심도시 건설, 문화수도 위한 7대 문화권사업 등을 공약으로 걸었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선 광주공항 이전, 인공지능도시, 모빌니티산업 구축 등 굵직한 이슈는 묻히고 지자체에서 이미 추진 중이거나 협의 중인 사안이 정쟁 도구로 떠올랐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공공기관 지방 이전이나 군공항 이전을 국가사업으로 추진하겠다는 등 진짜 중앙정부나 정치권이 나서야 할 걸 얘기하면 100% 반기겠다"며 "진짜 중앙정부나 다음 정부가 지원해줘야 할 일이 산적해 있는데, 그런 것은 언급하지 않고 지자체가 알아서 할 수 있는 일을 들고 와서 표만 의식한 정치행위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호남 두자릿수 지지율 확보 위한 서진전략과 갈라치기

국민의힘의 이같은 행보는 이른바 서진전략을 통해 호남 표심을 잡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사실상 한자릿수에 머물던 호남 득표율을 끌어올리고 중도층 표심을 공략해 압도적인 정권교체를 이루겠다는 전략이다.

호남에서 지지율을 두자릿수까지만 끌어올려도 대선 승리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게 서진 전략의 핵심이다.

역대 대선에서 보수 정당이 호남에서 얻은 최고 득표율은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얻은 10.52%다.

지역주의가 약해지고 있는 호남의 분위기와 '민주당 갈라치기' 의도도 있다.

민주당과 문재인 정부의 주축인 586세력을 타깃으로 삼아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호남의 표심을 끌어들이겠다는 전략이다.

지역정가 한 관계자는 "윤 후보는 지역주의나 5·18 등으로부터 부채 의식이 없는 자유로운 정치인"이라며 "2030 등을 중심으로 지지율이 올라가는 등 국민의힘의 서진전략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보고 있다"고 평가했다.

반면 윤 후보의 사드 추가 배치, 선제 타격 등 적대적인 외교안보관은 김대중의 평화 정책과 반대되고 문재인 정부 적폐 수사 발언 등은 호남민심과 결이 달라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지역정가 한 관계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햇볕정책'으로 대변되는 평화 경제 체제"라며 "남북대화보다 사드 추가 배치를 얘기하면서 김대중 정신을 계승한다는 건 모순이라 호남민심이 받아들이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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