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세습' 주력한 재벌과는 다르다…'부의 환원' 나선 4050 창업가들

카카오 김범수 이어 배민 김봉진도…"재산 절반 사회에 환원"

韓 벤처 1세대 중심으로 美 자산가와 유사한 기부양상 나타나

 

 김범수 카카오 의장에 이어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이 재산 절반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했다.


'흙수저' 출신으로 자수성가해 오늘날 IT 산업을 이끌고 있는 두 사람은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데 총력을 기울인 1세대 '재벌' 총수와 다른 행보로 이목을 끈다.

◇카카오 김범수 이어 배민 김봉진도 '재산 절반 기부' 선언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은 지난 18일 더기빙플레지(The Giving Pledge)를 통해 아내 설보미씨와 함께 재산 절반을 기부하겠다고 발표했다. 더기빙플레지는 전 세계 부호가 재산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약속하는 운동이다.

김 의장이 배달의민족을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에 매각하면서 받은 주식과 기빙플레지 가입 조건이 '자산 10억 달러(약 1조1058억원) 이상'인 점을 종합하면 김 의장의 기부 규모는 최소 5500억원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김 의장은 더기빙플레지 내 서약서를 통해 "저와 아내는 죽기 전까지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했다"며 "이 기부선언문은 우리의 자식들에게 주는 그 어떤 것들보다도 최고의 유산이 될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8일 김범수 카카오 의장도 재산 절반을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김 의장은 사내 카카오톡 채널 '카카오 공동체 타임스'를 통해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재산 절반 이상을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기부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며 "카카오가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의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사람을 찾고 지원해 나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김 의장 재산은 개인 명의로 보유한 카카오 주식만 10조원에 달해 그가 기부 의사를 밝힌 '재산 절반'은 5조원 상당으로 추정된다.

'자본주의의 고향' 미국에서는 거액의 '기부왕'이 심심찮게 등장하지만 두 사람의 '재산 절반' 기부 선언은 한국에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파격적인 결단이다.

◇"노력보다 많이 얻게된 부…어떤 식으로든 환원해야"

김봉진 의장과 김범수 의장은 '흙수저' 출신의 자수성가형 기업인으로 평범한 회사원 생활을 하다 창업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들은 오랜 시간 '사회 환원'이라는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다양한 기부활동을 펼쳐온 바 있다.

두 사람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수년간 수백억원 규모의 사재를 기부해왔다. 김범수 의장은 최근 10년간 개인 차원에서 현금 72억원과 주식 약 9만4000주(약 152억원)를 기부했고, 김봉진 의장은 지난 2018년부터 2020년까지 NGO와 학교 등에 총 100억3100만원을 기부했다.

이들은 '개인적 부'가 개인이 노력으로 축적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고 판단하고 다음 단계로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한 공적인 일에 스스로가 일군 부를 사용하겠다는 남다른 철학으로 주목받고 있다. 

김범수 의장은 지난 2017년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제 노력보다 훨씬 많은 부를 얻었기 때문에 그 이상은 덤인 것 같다"며 "어떤 식으로든 사회에 환원하지 않으면 마음에 걸린다. 자연스럽게 제가 할 수 있는 일, 카카오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사회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언급했다.

김봉진 의장도 "존 롤스의 말처럼 '최소 수혜자 최우선 배려의 원칙'에 따라 그 부를 나눌 때 그 가치는 더욱 빛난다고 생각한다"며 "기부서약은 제가 쌓은 부가 단지 개인의 능력과 노력을 넘어선 신의 축복과 사회적 운에 그리고 수많은 분들의 도움에 의한 것임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김봉진 의장과 아내 설보미 씨의 기부 서약서 (우아한형제들 제공) © 뉴스1

◇부 세습에 기부는 뒷전이었던 재벌기업…벤처 1세대는 '부의 환원' 고민

이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는 '사회환원'보다는 '부의 대물림'에 주력해 온 재벌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조사결과 지난 2014년 기준 국내 자산가의 74.1%는 부를 세습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사회에서 소위 '재벌'으로 불리는 산업화 1세대는 한국 전쟁 이후 폐허가 된 상황에서 '경제부흥', '경제자립'이라는 기치 아래 외형적 성장에 주력했다. 당시 1세대 창업가들은 정부 주도하에 산업발전과 이를 이어갈 승계구도에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많은 재벌 기업이 사회적 책임 이행을 위해 기부를 해왔다. 그러나 이는 총수 개인 자산보다는 회사 자산을 기부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마저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후 '속죄'의 의미인 경우가 대다수였다. 대중이 재벌 총수의 기부활동을 탐탁지 않게 바라본 배경이다.

그러나 해외 자산가들은 달랐다. 상속으로 세계적인 부호가 된 우리나라 재벌들과 달리 해외 자산가들은 자수성가로 부를 축적해 사회에 환원하는 모습을 보였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은 재산 99%를, 수년간 세계 부자순위 2위권에 이름을 올린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가는 재산 85%를 기부하겠다 공언했다. 팀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도 죽기 전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초기 산업화 이후, IT붐을 타고 새롭게 등장한 벤처 1세대들은 달랐다. 벤처 불모지였던 1990년대 중반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열정 DNA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대를 연 이들은 '부의 창출'을 넘어 '부의 환원'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1세대 창업가가 투자자로 변모해 후배 양성에 주력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우리나라도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 보편화될 것"

업계에서는 국내 4050 창업가를 중심으로 사회환원에 대한 적극적인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국내 기부 문화가 더욱 활발하게 자리잡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국내 창업가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이 보편화되면서 김봉진·김범수 의장과 같은 통 큰 결단이 보편화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봉진 의장은 이번 기부 결정을 두고 개인만의 문제가 아닌 더 나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시초가 됐으면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의장은 지난 18일 더기빙플레지를 통해 기부 소식을 밝힌 직후 <뉴스1>에 "각자의 방식으로 기부문화가 대한민국에 더 확산할 수 있도록 작은 힘을 보태겠다"고 심경을 전했다.

국내 벤처업계 관계자는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은 스웨덴 국내총생산(GDP)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그룹(발렌베리그룹)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들은 5대째 세습을 이어가면서도 막대한 세금과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며 스웨덴 국민에게 존경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발렌베리그룹처럼 국내에서도 책에서만 보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벤처업계를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고 선배의 정신을 이어받은 후배 창업자들도 이러한 행보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고 기대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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