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기간확대'가 핵심 아닌데…대선주자들 '헛다리' 일 가정 양립 정책

여성관리자 21% "출산 후가 휴 승진누락"…업무배제 등 경험
고용부 불이익 신고 연평균 36건…"불이익에도 신고 않아"

 

출산휴가를 요청하자 회사는 A씨에게 대체인력을 직접 구해오라고 요구했다. 첫 임신 때는 대체인력을 구했지만 두 번째 임신 때는 자신만큼의 경력을 가진 대체인력을 구하지 못해 결국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A씨는 "출산휴가만 제대로 받았어도 경력 단절을 막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방송작가 A씨의 사례)

임신 20주차에 회사에 임신 사실을 알린 B씨는 대표이사로부터 "계속 회사를 다니면 부서를 바꿀 거다" "월급 줄어들 것이다"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B씨는 5개월여간의 노력 끝에야 회사로부터 출산휴가를 받아낼 수 있었다. (서울 서남권직장맘지원센터 상담 사례)

일·가정 양립을 위한 오랜 노력이 있었지만 오늘도 임신·출산을 준비하는 직장인 여성들은 휴직과 퇴사라는 선택지를 두고 깊은 고민에 빠진다. 이들은 A씨와 B씨처럼 임신 사실만으로 퇴사를 종용받았다거나 출산휴가에 들어간다는 이유로 승진에서 누락됐다는 경험담을 심심찮게 접한다.2020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여성관리자패널조사에 따르면 출산휴가 사용 후 승진 누락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여성 관리자는 이용자의 20.9%였다. 이들은 업무배제(12.9%), 원하지 않는 부서 이동(10.8%), 권고사직(0.2%) 등을 경험한 것으로도 나타났다. 육아휴직 이후 승진 누락을 경험했다는 응답은 22.6%, 업무배제는 14.8%였다.


◇임신·출산 차별 '위법 행위'…'불이익' 우려 '신고 저조'
  
임신이나 출산에 의한 직장 내 차별은 위법 행위다. 일명 '모성보호 3법'이라 불리는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 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이 법적 근거다.
  
이에 따르면 출산휴가를 미지급한 사업주는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출산휴가 중 노동자를 해고한 사업주는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육아휴직을 이유로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한 사업주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그러나 직접 문제 제기에 나서는 경우는 드물다. 직장갑질119가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8년 1월~2021년 5월 고용노동부에 접수된 육아휴직 불이익 신고 건수는 연평균 36.3건에 불과했다. 

직장갑질119는 "단체에 접수된 제보 건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숫자라는 점에서 불이익이 발생해도 신고하지 않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임신·출산·육아는 연속된 문제다. 출산 전부터 겪은 고충은 출산 후에도 이어진다. 서남권직장맘지원센터에 따르면 C씨는 출산휴가 사용을 두고 사업주와 이미 한 번 갈등을 겪었다. 힘들게 출산휴가를 받아낸 C씨는 사업주로부터 출산휴가 후 자신을 해고하겠다는 말을 들었다. 근로기준법은 출산휴가 기간 및 그 후 30일간을 해고금지 기간으로 규정한다.
   
프리랜서나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현실은 더욱 고단하다. 이들의 육아휴직은 법적으로도 보장되지 않는다. 특수고용직 신분인 보험설계사로 일한 D씨도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없었던 사례를 전했다.
  
D씨는 "영업 실적이 없으면 해촉 대상자가 되기 때문에 육아휴직을 신청했는데 알고 보니 육아휴직 신청서는 정규직 직원만 쓸 수 있는 서류였다"고 말했다. 육아휴직 신청 후 D씨는 사내 프로그램에 접근이 차단됐고 그제서야 자신이 해고된 사실을 알게 됐다. 3년 가까이 다닌 회사였지만 D씨에게 해고 사실을 미리 알려준 사람은 없었다.
  
정부는 최근 이 같은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대안을 내놨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4월 발표한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에는 2025년까지 육아휴직 적용 대상자를 고용보험에 가입한 특수고용직, 프리랜서 등으로 확대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대권주자들, 육아휴직 기간 확대 공약…"기간이 문제 아냐"

일 가정 양립 문제 해결을 위해 정치권에서도 관련 공약과 정책을 내놓고 있다. 특히 대권주자들은 육아휴직 기간 확대를 공약으로 공통 제시했다.

지난달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 유승민 전 의원은 부모에게 각각 육아휴직 3년을 부여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정의당 대선 예비후보 이정미 전 의원도 지난 12일 육아휴직 3년 보장과 육아 기간 경력 인정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또 다른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육아휴직을 1년 6개월로 확대하는 방안을 담아 공약을 발표했다.

그러나 단순히 육아휴직 기간만을 확대하는 것은 일 가정 양립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난주 부연구위원은 "육아휴직 기간 확대는 여성, 남성 모두 경력에 좋지 않다"며 "지금처럼 육아휴직 사용자 중 여성의 비율이 높은 상황에서 기간을 확대한다면 여성의 부담만 늘어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도 "한국은 외국에 비해 육아휴직 기간이 긴 편"이라며 "기간이 문제가 아니라 육아휴직 자체를 사용하지 못하는 근로자들이 너무 많은 게 문제"라고 말했다.

일 가정 양립이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복합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그 중 하나는 임신·출산·육아를 사유로 근로자들을 부당 대우하는 고용주들에 대해 제재를 강화하는 것이다. 남성의 육아휴직률을 높이는 것도 효과적인 대책으로 꼽힌다.

허 조사관은 "일 가정 양립은 재원 마련, 공공 보육 시설, 조직 문화, 인식 등 여러 문제가 얽혀 있어서 한 가지 방안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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