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즈힐 이모들'의 육아 실험…아파트 곳곳서 이뤄지는 '응팔'

'모두가 모두를 돌보는 세상' 온다

 

서울 성동구 하왕십리동 텐즈힐 1차 아파트에는 이모(異母)들이 있다. 마을 공동체 '이모들'은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단지 내에 있는 모든 아이의 엄마가 돼 주겠다는 취지로 모였다. 아이들에게 '동네 아줌마, 이모'처럼 편하게 다가가는 게 모토다. 

이모들이 운영하는 '텐즈힐 꿈나무 센터 돌봄 교실'은 6~7세부터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 6~8명이 참여하고 있다. 거리두기 4단계 여파로 현재는 2명만 정기적으로 나오고 있으나, 여름방학엔 토탈 공예 교실·척척박사 꿀벌 교실·창의력 융합 보드게임 등 3가지 프로그램을 요일별로 운영했다.  

'이모들'의 일원이자 초등학생 자녀를 둔 엄마이기도 한 권모씨(40대)는 "제 아이의 친구들을 보는 느낌으로 참여하고 있다. 맞벌이하는 엄마들도 출퇴근을 하면서 항상 둘러볼 수 있고 재택을 할 때도 편하게 맡길 수 있어 상당히 만족해 한다. 아무래도 같은 아파트 주민이 운영하니 믿을 만하고 많이 의지가 되는 듯 하다"고 했다.  

이 모임은 아파트에 돌봄 걱정을 하는 30·40대 맞벌이 부부들이 많고, 퇴근 후 어린 연령대 아이들이 혼자 있어 도움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자녀를 이미 다 키운 40~50대 여성들이 젊은 부부들에게 육아 노하우를 전수하고자 시작했다고 한다. 

"엄마가 데리러오면 집에 가기 싫다고 숨는 아이들도 있고, 아이들이 주말에도 이모들 보고 싶다고 할 때 보람을 많이 느껴요. 한 장소에 머물러야 하는 학교와는 달리, 교실 안에서 잠을 자는 아이도 있을 만큼 편하고 안락한 공간으로 생각하더라고요. 아이들을 계속 만나면서 다른 집 아이들이지만 정도 가고 사랑도 주게 됩니다. 힘들기도 하지만 즐거움도 있어 '황혼 육아를 미리 체험하는 것 같다'는 농담을 하기도 합니다."

텐즈힐의 마을 공동체 '이모들'처럼 입주민이 겪고 있는 돌봄 문제를 함께 해결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대단지 아파트에서는 바로 옆집의 이웃도 모르고 지내기 쉽다. 이런 문제를 극복해보려는 시도가 '공동주택 같이 살림' 프로젝트다. 서울시는 5명이 이상 주민이 모임을 만들어 신청하면 활동비를 최대 6000만원까지 지원한다. 첫해인 2019년에는 22단지, 작년에는 30단지, 올해는 13단지가 참여하고 있다. 

신수정 서울시 사회적경제담당관은 "아파트 주민들이 모여 아이·어르신 돌봄 등 단지 내 가장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며 "이용자도 서비스 제공자도 주민이고, 영리를 추구하는 일반 기업과 달리 재투자 대상이 독거노인 등 취약 계층이라 사회적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 모임을 조직화해 공동체를 위해 재투자하는 협동조합을 설립하는 게 최종 목표"라고 설명했다.

 서울시 성동구 텐즈힐 1단지 아파트 주민들이 운영하는 '텐즈힐 꿈나무 센터 돌봄 교실'.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 뉴스1


동대문구 전농동 전농래미안아름숲아파트에선 단지 내 맞벌이 부부의 아이들을 돌봐주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하굣길 아이들에게 간식을 나눠주는 일부터 시작했다가 저녁시간대 아파트 도서관에서 아이들의 식사를 챙겨주고 교육을 진행하는 서비스로 확대했다. 코로나19 이후 외부인에게 아이를 맡기기 쉽지 않아졌다는 점도 한몫했다. 

아름숲 주민들은 돌봄 서비스가 인기를 끌면서 단지 내에 '베이비시터 양성과정'을 만들었다. 주민 14명이 과정을 이수하고 민간 전문 자격증 중 하나인 '돌봄 전문 인증'도 받았다.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아 애플리케이션 돌봄플러스-래미안아름숲도 개발했다. 

돌봄플러스 운영사인 휴브리스의 문호진 기술이사는 "단지 주민들 대상으로 한 달 정도 베이비시터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부모들이 신청서를 올려주면 단지 내 등록된 시터 들이 신청서를 확인해 육아문제를 해결하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향후 실버 케어도 플랫폼에 담을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현재 단지 내 돌봄은 전농래미안 아파트에서만 시범 운영하고 있으나, 향후 다른 아파트로 확대할 계획도 갖고 있다. 

송파구 장지동 위례포레샤인아파트 주민들은 단지 내 커뮤니티 센터에 방과후 교실을 만들어 맞벌이 부부 자녀들이 남는 시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세대 수가 많은 데다 신도시라 학원까지 이동하는 거리가 있어 마을 안에서 배움이 이뤄졌으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시작한 모임이다.

단지 내 작은 도서관이 문을 연 2019년 아이들이 도서관을 많이 찾길 마음에서 시작된 단기 강습이 정기 수업으로 확대됐다. 아직 시범 단계이나, 다음달부터는 발레·줄넘기·유아 축구·영어 뮤지컬·독서 하부르타·독서 토론·클레이 등의 수업을 다양하게 진행할 예정이다. 방역수칙에 맞춰 수업 1개 당 6~10명씩 총 80~90명 규모로 운영할 계획이다.

같이 살림 프로젝트 '포레우리'에서 방과후교실을 담당하는 하선화씨는 "키움센터나 학교 방과후 교실이 잘 돼있긴 하지만, 순위가 차면 맞벌이 부부 자녀라도 못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이 도서관에서 책을 보고 부모님 퇴근 전까지 시간을 보내고 가기도 한다"고 전했다. 

하씨는 "일단은 뭔가를 배우려고 멀리 가지 않아도 돼서 좋고, 놀이터에서 만나던 친구들과 같이 수업을 받을 수 있어 다들 만족해 한다. 또 신도시 특성상 사람들이 금방 친해지기 어려운데 친해질 수 있는 계기도 됐다"고 했다. 

또 "아파트가 임대와 장기전세로 나뉘어 있어 임대아파트 주민들에 대한 약간의 차별이 있는데 마을 공동체 '포레우리'를 통해 자체적으로 협심해 차별 문제를 이겨낼 수 있었다. 처음에 차별의 시선을 보내던 다른 단지 분들도 이제는 활동에 같이 참여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 News1 DB


돌봄은 아이들 만의 문제는 아니다. 고령화로 독거노인이 늘면서 '어르신 돌봄'도 사회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1인 가구 중 70세 이상(18.1%)이 20대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지난해(18.4%)보다 0.3%p 줄었지만, 이 연령대 여성의 경우 1인 가구 비중이 27.5%에 달했다.

그러나 아이 돌봄과 달리 어르신 돌봄은 '갈이 살림' 프로젝트에서도 아직 본격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신 주민들은 어르신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통해 간접적으로 혼자 사는 어르신을 돕고 있다. 

포레우리 마을학교에서는 체조수업, 영어 대화 수업 등 시니어 교실 2개를 운영할 예정이다. 하선화씨는 "어르신 분들이 배움에 대한 욕구는 굉장히 많으신데 위치상 복지회관이 굉장히 멀다. 방과후 교실과 마찬가지로 마을 안에서 배움이 이뤄지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마포구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아파트 주민들은 단지 내 텃밭에서 화분을 키워 혼자 사는 어르신들에게 갖다주는 '식물돌봄' '이웃돌봄'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이 아파트에 60대 이상 고령층 인구가 절반 이상이고, 그 중에서도 1인 가구가 많다는 데서 착안했다. 

박신연숙 마포래미안 주민대표는 "어르신들한테 어떻게 안부를 물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식물을 심어서 1년에 2번씩 방문하기 시작했다. 찾아뵙고 화분을 드리니 정말 좋아하시고 반가워하시더라. 어르신들이 인사를 반갑게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아파트 생활에서 너무 고맙다고 말씀해주신다"고 전했다. 

박 대표는 "입주한지 7년 됐는데 해를 거듭할 수록 친구들이 생겨서 어르신들이 공용공간에 앉아계시는 일도 많아지고 있다"며 "어떤 층은 어르신들끼리 이웃과 문을 열고 살아 처럼 서로 빈대떡을 부쳐먹는 등 꼭 '응팔'(응답하라 1988) 속 골목길 같은 관계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했다. 

실제 김승섭 고려대 보건대학원 교수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책에서 친척·친구가 많고 지역사회에서 조직활동을 하는 등 사회적 연결의 정도가 높을 수록 사망률이 1.8~2.7배 가량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승섭 교수는 이를 '더 많이 연결돼 있을수록, 더 오래 산다는 결과'라고 해석했다. 

서울시 마포구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아파트 주민들이 단지 내 텃밭에서 함께 식물을 심고 있다.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 뉴스1


박 대표는 "식물을 전해드리면서 어르신께서 키우는 식물을 화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건강상태도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게 됐다. 앞으로 관계망이 더욱 돈독해지면 어르신께서 갑자기 병원에 가게 됐을 때 단지 내 소셜미디어 톡방에 '지금 시간 있는 사람 잠깐 같이 가실 분'이라고 올려 직접 어르신을 도와드리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벌써 7년 동안 이 아파트에 살다보니 건강하셨던 분들이 치매에 걸리셨거나 넘어지셔서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듣곤 합니다. 서로 걱정하고 빨리 낫길 기원하는 마음을 갖게 되고 좀 더 이웃간의 정을 느낄 수 있더라고요. 저도 엄마가 멀리 계셔서 자주 갈 수가 없는데, 꼭 가족만이 돌봄을 하는 게 아니라 이웃이 함께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까 싶어요. 지금 내가 여기서 이웃들에게 한 활동처럼 우리 엄마에게도 좋은 이웃이 있지 않을까요. 누구나 내 이웃부터 돌보면 내 가족에게도 안전한 사회가 된다고 생각해요."

전문가들은 '지역돌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결국은 공공이 돌봄의 주체가 돼야 한다고 봤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돌봄의 공급주체가 지역사회 등으로 다양화되는 건 정말 환영한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돌봄은 가능하면 공공에서 하는게 맞다. 돌봄 공백도 결국 민간에 떠맡겼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선제적으로 공공에서 하고 민간에서 일부를 책임지는 형태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퇴근을 빨리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회사나 사회에서도 돌봄이 진행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문화가 확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제휴사)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뉴스포커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