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로 미얀마 3권 장악…민 아웅 흘라잉 軍사령관은 누구?

 "쿠데타는 민 아웅 흘라잉 군 총사령관 대권 야망 때문"

 

 미얀마 군부가 1일 전격적으로 일으킨 쿠데타는 민 아웅 흘라잉 군 총사령관의 대권 야망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군부 쿠데타가 아니라 '민 아웅 흘라잉의 쿠데타'라는 말까지 나온다.


우선 이번 쿠데타는 군부가, 작년 11월 미얀마 총선에서 집권여당 민족주의민족동맹(NLD)이 국회 총 498석 중 단독정부 구성 요건인 322석을 훌쩍 넘는 396석을 차지하며 '압승'한 데 불만을 품어 일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거 전부터 NLD가 유리하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자 흘라잉 총사령관은 현지 언론에 "아웅산 수치 정부는 용납할 수 없는 실수",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라면서 불복 가능성을 제기해왔다. 그러나 선거 결과 군과 연계된 제1야당 통합단결발전당(USDP)은 33석을 사수하는 데 그쳤다.

알자지라 보도에 따르면 멜리사 크라우치 호주 시드니 뉴사우스웨일즈 법대 교수는 "법률상 오는 7월 65세가 되면 은퇴해야 하는 흘라잉 총사령관이 오랫동안 대권 야망을 품고 있었다"면서 "작년 11월 선거에서 USDP의 굴욕적인 패배가 그의 목표를 좌절시켰다"고 분석했다.

크라우치 교수는 "군은 다시 대통령실을 손아귀에 넣기 위해 법을 위반했다. 1일 새 의회 첫 개회를 앞두고 쿠데타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군은 1년 후 선거를 다시 열려고 할 것이다. USDP가 의석의 3분의 1을 확보하면 흘라잉 총사령관이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흘라잉은 2011년 미얀마가 49년간의 군사정부를 종식하고 민간통치로 전환하던 시기 총사령관에 임명된 인물이다. 그 이전 행적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1974년 양곤대 법대를 졸업한 뒤 다시 군 사관학교를 졸업해 군 경력을 착실히 쌓아왔다.

2015년 NLD가 두 번째 승리를 거머쥔 무렵부터는 야당 대통령 후보로서의 입지를 강화해왔다.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절을 방문하거나 고위 인사를 만나는 모습을 홍보하며 군인에서 공인으로 이미지를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다만 2017년 미얀마 군의 로힝야족 탄압 당시에는 대량학살을 홍보하고 정당화하는 캠페인 게시물을 소셜미디어 등에 게재하면서 미국과 영국의 제재를 받기도 했다.  

부패 의혹도 제기된다. 시민단체 '미얀마를 위한 정의'는 정치적 야망뿐 아니라 그의 부를 지키려는 노력도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했다. 단체는 성명을 통해 "흘라잉은 사익을 위해 총사령관 지위를 이용했고 쿠데타로 그 힘과 특권이 확대됐다"고 비판했다.

단체에 따르면 흘라잉 자녀들이 소유한 사업체는 그가 총사령관으로 있는 동안 국가자원을 이용해 수익을 올렸다. 또한 군부는 미얀마의 대표적인 대기업 미얀마경제공사(MEC)와 미얀마경제홀딩스(MEHL)를 소유하고 있는데, 보석, 구리, 통신, 의류 등 광범위한 부문에 투자하는 이 두 기업에 대한 궁극적인 권한을 흘라잉이 갖고 있다.

이에 유엔 조사관들도 두 기업이 민간의 감시감독을 받아야 한다면서 국제사회의 제재를 촉구한 바 있다.

단체는 "민주화가 더 진행돼 범죄에 책임을 묻게 되면 흘라잉과 그의 가족은 수입원을 잃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영국단체 버마캠페인의 마크 파마너 대표는 이 같은 문제에 착안, 트위터에 "이것은 군사쿠데타가 아니라 민 아웅 흘라잉의 쿠데타"라고 지적했다.

영국 시민단체 버마캠페인의 마크 파마너 대표는 1일 미얀마 군이 일으킨 쿠데타에 대해 "민 아웅 흘라잉의 쿠데타"라고 지적했다. 트위터 게시물 갈무리. © 뉴스1 최서윤 기자

군의 제도적 이권도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브릿짓 웰시 말레이시아 노팅험대 아시아연구소 명예연구원은 "NLD의 선거 승리는 군의 협상력을 약화시켰다"고 했다.

미얀마 군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임에도 의회내 일정 쿼터를 갖고 헌법 개정 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었지만, NLD의 압승으로 절대 다수당이 나오면서 군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약해졌다는 분석이다. NLD가 단독정부 구성요건인 322석을 훌쩍 뛰어넘는 절대 다수 의석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흘라잉의 권력 찬탈 시도와 쿠데타는 약 10년 전 들어선 문민정부를 거부하는 군부독재의 잔재일 것이다. 그러나 알자지라는 "흘라잉의 쿠데타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와 군이 권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라고 짚었다.

민주화를 체감하고 개방적인 시스템에서 살아본 젊은 세대가 저항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과 NLD는 시민들에게 "저항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재리 해리스먼 바워그룹 아시아 분석가는 "미얀마인 대부분이 군의 쿠데타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며 "1988년 군사독재 저항 시기 수천 명이 희생된 경험 때문에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망설이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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