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단 개혁 상징' 월주 큰스님 열반…"수행과 교화는 하나다"

1980년 10·27 법난 때 총무원장 강제 사퇴…1994년 종단 개혁 주도

 

대한불교조계종 제 17·28대 총무원장을 역임한 월주(月珠) 큰스님이 22일 오전 9시45분께 전북 김제 금산사 만월당에서 원적했다. 법랍 67세, 세수 87세.

월주 큰스님은 불교 정화운동에 앞장선 종단 개혁의 상징이었다. 1980년 제17대 총무원장에 올랐지만 같은해 '10·27 법난' 때 강제로 물러난 뒤에 국내외를 오가며 불교의 사회참여 운동을 적극 이끌었다. 이후 1994년 3선 연임을 강행했던 총무원장 의현스님이 물러나자 고인은 조계종 개혁회의에 참여해 종단 개혁을 이끌었으며 같은해 치러진 제 28대 총무원장 선거에서 재선됐다.

고인은 1935년 전북 정읍에서 태어난 월주스님은 금오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54년 법주사에서 사미계를 1956년 화엄사에서 비구계를 금오스님을 계사로 각각 수지했다.

그는 금산사 주지를 1961년부터 맡았으며 30대 때 조계종 개운사 주지, 총무원 교무·총무부장, 중앙종회의장 등 종단의 주요 소임을 맡아 활동했다. 그는 1980년 제17대 총무원장에 선출됐으나 전국 사찰이 군홧발에 짓밟힌 '10·27 법난' 때 강제 연행돼 총무원장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고인이 5·17 비상계엄 확대 조치 등으로 권력을 장악한 군부정권의 지지성명요구를 거부했을 뿐 아니라, 5·18 민주화 운동이 전개되는 광주를 방문해 부상당한 시민을 위로하고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행사도 봉행했기 때문이다.

총무원장에서 물러난 그는 미국 등지를 떠돌며 한국 불교의 방향을 고민하던 끝에 '깨달음의 사회화 운동'을 불교계 책무로 내세웠다. 이후 그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1989년), 불교인귄위원회 공동대표(1990∼1995) 등 시민사회 단체 영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특히 그는 정부의 지원이 없던 1992년 10월 나눔의 집을 설립해 지난 30여년 동안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보살펴 왔다. 30여 년 동안 무보수로 일하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명예와 존엄을 따뜻하게 지켜주는데 힘썼다.

1994년 3선 연임을 강행했던 총무원장 의현스님이 물러나자 고인은 조계종 개혁회의에 참여해 종단 개혁을 이끌었으며 같은해 치러진 총무원장 선거에서 재선됐다. 고인은 총무원장 시절에 불교의 대사회운동을 추진했으며 수행과 교화가 둘이 아님을 몸소 실천했다.

그는 총무원장 퇴임 후에도 사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 세계 각지에서 식수, 교육, 지역개발사업을 폈다. 저서로는 회고록 '토끼뿔 거북털' 등이 있다.

월주스님 분향소는 김제 금산사 처영문화기념관에 마련됐으며 장례는 종단장을 오는 26일까지 5일장으로 진행한다. 영결식은 26일 오전10시 거행하며 같은 날 금산사 연화대에서 다비식을 엄수할 예정이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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