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상속세 75년만에 대수술…각자 받은 만큼만 '유산취득세' 낸다

자녀당 5억, 배우자 법정상속분 무관 10억까지 공제

다자녀·재산 많을수록 절세 커져…과세자 비율 절반 이상 감소 전망

 

정부가 1950년 상속세 도입 이후 75년 만에 과세 체계를 유산세에서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바꾸는 대대적인 손질에 나섰다.

지금처럼 사망인이 물려주는 전체 상속재산이 아닌 개별 상속인들이 각각 물려받는 재산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방식으로, 상속인이 많은 다자녀 가구나 재산이 많은 가구의 세부담이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상속세는 과세표준(과세 대상 재산)에 따라 세율이 높아지는 누진 구조여서, 상속인이 많아지면 과세표준이 잘게 쪼개져 세액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번 상속세 정부 개편안에선 최근 여야가 공감대를 이룬 '배우자 상속세 폐지'는 논의가 진행 중인 만큼 일단 빠졌다. 또한 여야간 논쟁 중인 최고세율 인하와 관련한 내용도 담기지 않았다. 정부는 최고세율 인하의 경우 "향후 유산취득세 전환과 별개로 사회적 합의 등을 바탕으로 별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새로운 상속세 개편안을 올해 법 개정을 통해 2028년부터 시행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12일 이러한 내용을 담은 '유산취득세 도입 방안'을 발표했다.

상속세 과세 방식은 유산세와 유산취득세 방식으로 나뉜다. 유산세는 사망자(피상속인)의 전체 유산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반면, 유산취득세는 상속인들이 각자 상속받는 재산을 기준으로 과세한다.

정부는 상속인들이 '받은 만큼'만 세금을 내도록 개편해 세 부담의 형평성을 높이고, 공제도 상속인 각자가 혜택을 받는 것이 타당하다는 판단하에 유산취득세 개편에 나섰다.

정부가 지난 2월 26일부터 이달 5일까지 일반국민 1만 명과 전문가 34명을 대상으로 온라인·대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일반국민의 82.3%, 전문가의 85.3%가 상속세 제도의 개편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유산취득세 전환에 대해서는 일반국민 71.5%, 전문가 79.4%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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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당 5억원 공제…배우자 법정상속분 상관없이 10억원 이하 전액 공제

 

유산취득세 개편에 따라 전체 유산이 아닌 상속인 개개인이 받는 유산에 대해서만 과세가 이뤄진다.

자녀가 상속받을 경우 최대 5억 원까지 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어 개편 시 세 부담이 크게 낮아질 전망이다.

현행 상속세는 사망자의 전체 유산을 기준으로 상속인과 수유자(유언 등에 따라 상속받는 자)가 연대해 세금을 납부하는 방식이다.

현재는 기초 공제(2억 원)와 자녀 1인당 5000만 원을 합산한 금액과 일괄 공제 5억 원 중 큰 금액을 공제하는 방식이지만, 자녀 공제액이 적어 대부분 일괄 공제를 적용해 왔다.

정부는 이를 상속인이 실제 취득한 재산에 대해서만 과세하고, 자녀 1인당 최대 5억 원을 공제하는 방식으로 개편을 추진하기로 했다. 기타 상속인(형제·자매)도 2억 원이 기본 공제된다.

수유자의 경우 직계존비속은 5000만 원, 기타 친족은 1000만 원을 한도로 공제된다.

 

배우자, 법정상속분 무관 10억 원 이하 공제…국회서 배우자 상속세 폐지하면 반영

 

배우자 공제도 합리적으로 개선된다. 기존에는 배우자가 실제 상속받은 금액과 관계없이 피상속인의 전체 상속재산에서 5억 원을 전액 공제받았지만, 개정안에서는 배우자가 받은 상속재산이 10억 원 이하일 경우 법정상속분(배우자:자녀=1.5:1)과 관계없이 전액 공제하도록 변경된다.

다만 배우자 최대 공제 한도는 법정상속분과 최대 30억 원 기준 둘 중 적은 금액으로 기존과 동일하게 유지된다. 법정상속분이 30억 원 이하라면 전액을 공제받을 수 있으나 이를 초과하면 30억 원에 대해 공제받을 수 있는 셈이다.

현재 배우자·자녀가 있는 경우 10억 원까지 인적 공제가 적용돼 상속세가 부과되지 않는 일종의 면세점 기능을 하고 있다. 이를 유지하기 위해 정부는 '최저한 공제' 10억 원을 도입해 모든 상속인·수유자의 공제 합계가 10억 원 미만일 경우 부족한 금액을 추가 공제하도록 설계했다.

정정훈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대부분이 유산취득세를 도입하고 있다"며 "OECD와 국제통화기금(IMF)에서도 유산취득세가 과세 공평성과 부의 분배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상속인 각자가 본인에게 해당하는 공제를 그대로 적용받을 수 있어 세금 감소 효과를 직접 체감할 것"이라며 "받은 만큼 세금을 부담하는 방식으로 과세 형평성이 제고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국회에서 논의 중인 배우자 상속세 폐지의 경우 여야가 합의를 이루면 이번 개편에도 그대로 반영될 예정이다. 배우자 상속세 폐지는 법정상속분에 따른 최대한도인 30억 원을 없애거나, 이에 상관없이 전액 비과세하는 방식이 거론된다.

정 실장은 "배우자공제, 자녀공제 등 국회 논의를 통해 바뀌는 부분은 바뀌는 그대로 흡수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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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자녀 2명 30억 나눠 상속하면 세 부담 절반 이하로

 

개편안의 핵심은 사망자(피상속인)의 재산 전체가 아닌 배우자·자녀 등 상속인이 물려받는 재산에 각각 공제와 세율을 적용하므로 재산이 많을수록, 상속자가 많을수록 유리해진다.

만약 30억 원의 재산을 배우자와 두 성인 자녀에게 각각 10억 원씩 상속하는 경우 현행 유산세 방식의 상속 체계에서 세율은 4억4000만 원가량이다. 배우자공제(법정상속분 12억9000만 원)와 일괄공제 5억 원 등을 제외하고 과세표준을 적용한 결과다.

개편된 유산취득세 방식에서는 상속인 각자가 상속받은 금액에서 개별 공제를 적용받아 과세표준을 산정한다. 이에 따라 배우자는 배우자 공제를 통해 상속세를 내지 않아도 되며, 자녀들은 자녀공제 각 5억 원을 적용받는다. 과세표준 5억 원에 20% 세율을 적용하면 1인당 9000만 원씩만 내면 되는 셈이다. 상속세 세율은 1억 원 이하는 10%, 1억 원 초과 5억 원 이하는 20%, 5억 원 초과 10억 원 이하는 30% 등을 적용한다.

세 부담은 배우자와 자녀에게 어떻게 분배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며, 상속인이 많을수록 절세 효과는 커진다.

유산취득세 전환이 완료될 경우, 정부는 과세자 비율(신고자 수 대비 과세인원)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 2023년 기준으로 상속세 신고자 수(결정인원)는 29만 3000명이었고, 과세 인원은 1만 9900명으로 과세자 비율은 6.8%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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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업·영농 등 '물적공제' 유지…조세회피 대비책 마련

 

정부의 유산취득세 도입 방안이 실현되더라도, 가업·영농상속 공제 등 피상속인의 재산 특성에 기반한 물적 공제는 현행 방식이 유지될 예정이다.

현재 10년 이상 계속 경영한 중소·중견기업을 상속하면 가업상속 재산가액에 해당하는 금액을 공제받을 수 있다. 공제 한도는 경영 기간 10~20년은 300억 원, 20~30년은 400억 원, 30년 이상은 600억 원이다. 유산취득세가 도입되더라도 이러한 체계는 유지돼 가업을 승계하는 상속인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유산취득세 전환 이후의 납세 절차는 현재 기본 틀을 유지하는 가운데, 상속재산의 분할과 관련한 별도의 '분할 기한'을 설정하기로 했다.

각 상속인과 수유자가 각자 신고하거나 공동 신고도 가능하다. 피상속인을 기준으로 과세 관할을 결정하는 현행 제도도 유지되며, 신고 기한도 '상속 개시 후 6개월 이내'로 기존 방식과 같다.

단 '신고 기한 후 9개월 내'의 분할 기한이 새로 생긴다. 정부는 신고 기한 내 상속재산 분할을 완료하지 못하더라도 우선 법정 상속분에 따라 분할된 것으로 보며, 신고 후 재산분할 확정 시 수정을 허용할 방침이다.

정부는 유산취득세 전환 시 발생할 수 있는 조세 회피를 방지하기 위해 위장분할, 우회 상속 등에 대한 대응 방안도 마련했다.

현재 상속세 위장분할에 대한 부과 제척기간(국세를 부과할 수 있는 기간)은 10년, 허위·누락 신고 등 부정행위의 경우 15년이다. 정부는 조세 회피 방지를 위해 위장분할 부과 제척기간도 15년으로 연장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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