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부실여신 검사 손 뗀 금감원, 부당대출 3875억 못 막았다

2014년 '감독관행 혁신 방안' 발표…"개별 여신 검사 안해"

사라졌던 '여신반' 지난해 부활…"체계적 감독 방안 마련"


대형 은행에서 3875억 원 규모의 부당대출이 적발되면서 내부통제 실패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가운데 관리·감독 권한을 가진 금융감독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작지 않다.


실제 금감원의 검사 시스템에도 허점이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014년 감독 관행을 혁신한다는 이유로 '부실 여신' 검사를 은행 스스로에 맡기면서 10년 가까이 은행 여신을 살펴보지 않은 것이다.


지난해 은행권에서 수백 억원대 금융사고가 연이어 발생하자 금감원은 다시 검사팀 내 '여신반'을 꾸려 개별 여신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부당 대출은 이미 은행권 전반에 퍼질 대로 퍼진 상태였다.


지난 4일 금감원은 국민·우리·농협은행에 대한 검사를 실시한 결과, 3875억 원 규모의 부당대출 정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특히 은행 직원들이 브로커와 공모해 서류를 조작하고 금품까지 받는 등 과거와 달리 범행 수법이 교묘해지고 금액도 커졌다.


비난의 화살은 은행으로 향했지만, 금융권은 은행을 관리·감독하는 금감원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지난 4일 실시된 언론 브리핑에서도 "그동안 금감원 검사가 부족했다거나, 시스템이 미흡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여러 번 나왔다.


취재 결과 금감원 검사 방식에도 구멍이 있었다. 금융당국은 지난 2014년 그간의 검사 관행이 창조 금융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감독관행 혁신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종합검사를 50% 이상 축소하고, 직원의 제재는 금융사에 맡기는 등 '감독 완화' 방안이 담겼다.


특히 이 방안에는 부실 여신 검사를 금융회사에 맡기는 내용도 포함됐다. 대출에 부실이 발생했다는 이유만으로 금감원이 나서 제재하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였다. 이후 금감원 검사팀 내 여신을 집중적으로 살펴보던 '여신반'도 사라졌다.


금감원 내부 사정에 밝은 관계자는 "금감원이 개별 여신에 대한 검사를 한동안 안 했다"면서 "여신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검사를 하려고는 했으나 이미 공개적으로 발표한 것이 있으니 쉽게 건드리지 못했다"고 말했다.


금감원이 개별 여신을 검사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레 검사도 '본점' 위주로만 진행됐다. 이에 은행권에서는 금감원이 영업점(지점) 대출까지 살펴보지 않는다는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실제 지난해 적발된 금융사고는 대부분 영업점에서 발생한 것이었다.


금감원은 부실 여신을 확인하지 않는 대신 은행에 자율적 감시를 주문했지만, 10년 가까이 은행들의 부당 대출을 걸러내지 못하면서 임직원들의 범죄 수법과 대출 규모가 악화됐다.


물론 '부실 여신=부당 대출'은 아니다.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이 혐의를 받고 있는 문제처럼 은행 자원을 '사유화'하는 것은 일벌백계해야 하지만 연체 등 '부실'이 발생했다는 이유로 부당 대출로 낙인찍게 되면 재무상태 및 담보 능력이 우수한 대기업에만 대출이 쏠리는 문제가 생긴다.


'비 오면 우산을 뺏는다'는 지적을 받아온 은행이 자칫 부당대출 프레임으로 손가락질만 받게 된다면 정작 우산이 필요한 저담보 중소기업은 은행 대출 문턱을 넘을 수 없게 된다. 금융사고에 손을 대는 '사람'이 문제지, '시스템' 문제로만 몰고 가면 실효성은 없고, 명목상 통제만 늘어나는 규제의 덫에 갇힐 수 있다는 은행 영업 일선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규제가 만능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금감원이 지난 10년 손을 놓은 사이 금융소비자 보호법도 시행되고, 책무구조도도 도입됐다.


금감원은 지난해부터 검사 시 본점뿐만 아니라 영업점(지점)에 대한 검사도 진행하기로 했고, 사라진 '여신반'도 다시 부활시킨 상태다. 금감원은 "이번 검사 결과 드러난 은행 지주 경영 관리상 취약점을 중심으로 체계적인 감독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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