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5곳 뺑뺑이 돌다 온 환자도"…자정 넘어 불 밝히는 야간약국
- 24-09-23
365일 새벽1시까지 문 여는 공공야간약국…서울에 단 33곳
연휴 때면 환자 두 배 늘어…'의료 대란' 피부로 느껴져
"올 추석 때요? 하루도 안 쉬었죠. 연휴 땐 평소보다 환자가 두 배는 돼요."
지난 20일 서울 금천구 시흥동에서 별장약국을 운영 중인 약사 이금봉 씨(72·여)는 지난 추석 연휴 때도 약국 문을 열었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이 씨가 운영하는 약국은 서울시에서 지원하는 '공공 야간 약국' 중 하나다.
새벽 1시까지 문을 여는 공공 야간 약국은 늦은 시간 급하게 약이 필요한 시민에게 '한 줄기 빛'이 되고 있다. 2024년 9월 기준 서울 전역에 33곳의 약국이 자정이 넘도록 불을 밝히고 환자를 맞이하고 있다. 공공 야간 약국은 낮 시간대 영업은 자율이지만 밤 10시부터 다음 날 새벽 1시까지는 의무적으로 문을 열어야 한다.
◇편의점 헤매다 오는 환자들…"없던 사명감도 생겨요"
만 3년 동안 새벽까지 약국 문을 열어온 이 씨지만 처음에는 큰 뜻을 품고 시작한 건 아니었다. 이 씨는 "집이 근처라 원래도 밤 11시까지는 문을 열었다"며 "1~2시간 정도 더 열면 되니까 '내가 한번 해보자'는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4년째 늦은 밤까지 환자를 만나며 그 생각은 완전히 달라졌다. 특히 추석처럼 연휴가 길 때는 문을 닫는 약국이 많아 먼 거리를 달려오는 시민도 적지 않다고 했다.
인근 자치구인 동작구·관악구부터 멀리서는 경기 광명시에서 찾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이 씨는 "'아무 때나 가도 문이 열려 있다'고 소문이 나서 더 열심히 하게 됐다"며 "처음엔 없었던 사명감이 어느새 생겼다"고 얘기했다.
관악구 대학동 '종로늘푸른약국'에서 1년째 야간 환자를 보고 있는 약사 배수성 씨(33·남)는 최근 '응급의료 대란'으로 병원에서 수용하지 못한 환자가 약국까지 밀려오는 걸 체감한다고 했다.
배 씨는 "한밤중에 손이 찢어진 환자가 병원 5곳에서 거절당해서 우리 약국까지 왔다"며 "당장 꿰맬 수는 없으니 봉합 밴드로 응급조치만 해드렸는데도 고마워하셨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병원은 몰라도 약국 없는 곳은 없잖아요"…동네 약국의 힘
배 씨의 약국은 지난해부터 공공 야간 약국 사업에 참여했다. 기존 약국 중 한 곳이 야간 매출이 적다는 이유로 더 이상 새벽 영업을 하기 어렵다고 '백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평소 365일 쉬지 않고 환자를 만나는 약국을 차리고 싶다는 꿈이 있었던 배 씨는 바로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지난해 예산 삭감으로 사업 유지가 불투명해졌을 때도 배 씨는 '버틸 때까지는 버티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배 씨는 동네 약국만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강조했다. 비응급 환자를 동네 약국에서 맡아 병원 부담을 덜 수 있다는 것이다. 배 씨는 "야간에 미열 같은 경증 환자가 굉장히 많다"며 "이들을 1차적으로 약국이 책임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 호우주의보가 내린 탓인지 약국을 찾는 발길이 뜸했다. 그러다 오후 10시쯤 별장약국으로 60대 남성이 급히 찾아왔다. 그는 아내가 갑자기 몸살 기운이 심해서 급하게 약을 사러 왔다고 했다.
동네 주민이라는 그는 반소매, 반바지에 편안한 차림으로 약국을 찾았다. 추석 연휴는 잘 보냈는지 안부를 묻고는 약을 들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약국을 나섰다. 이 씨는 다시 자리에 앉아 다음 환자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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