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년이 흘렀어도 아직도 생생"…5·18 민주묘지 추모객 발길 '북적'

"44년이 흘렀어도 아직도 어제처럼 생생합니다. 이제는 5·18을 왜곡하는 세력이 더이상은 없었으면 합니다."


제44주년 5·18민주화운동을 일주일 앞둔 11일 오전 10시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는 추모객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오월 영령 참배객의 발길이 계속되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도 끊이지 않고 흘러나왔다.


대학생 역사기행단부터 가족 단위의 참배객, 필리핀과 중국 등에서 온 이주여성들까지 1980년 민주화를 외치다 스러진 오월 영령의 넋을 기리는 데 여념이 없었다.


일부 추모객들은 챙겨온 물티슈로 묘비를 정성스레 닦았다. 민족 열사들이 잠들어 있는 묘역 앞 사진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고 눈물을 훔치는 학생도 있었다.


경기도에서 광주를 찾은 문은지 씨(24)네 4인 가족은 김경철 열사 묘에서 5분여간 머물렀다.


문 씨는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수화를 통해 김 열사에 대해 전달했다.


문 씨는 "5·18 최초 희생자인 김경철 열사도 청각장애라고 들어서 그 부분을 부모님께 설명해드렸다"고 말했다.


외국인들도 다수 민주묘지를 찾아 오월 영령의 넋을 기렸다.


필리핀에서 한국에 온 지 20년째인 윤쟈크린 씨(46)는 행방불명자의 묘에서 물티슈를 꺼내 묘비를 닦는 데 여념이 없었다.


윤 쟈크린 씨는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광주 토박이인 남편을 통해 들었다고 한다.


그는 "너무 많은 사람이 죄 없이 죽은 게 가슴아파서 이렇게라도 봉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캐나다에서 온 조셉(61)은 "택시운전사 영화를 통해 5·18민주화운동을 알게 됐다"며 "내가 어린 시절 한국에서 그런 일이 있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껴 방문했다"고 말했다.


교과서를 통해서만 5·18을 접했다는 대학생들은 열사들의 묘역 앞에서 무거운 표정으로 써진 글귀를 읽는 데 집중했다. 


숭실대 사회과학대학 차원의 역사기행을 신청해 방문했다는 최예림 씨(20)는 "내가 그때 당시 시민이었다면 민주화운동에 참여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볼 때 이분들의 희생이 값지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민주 열사들의 묘비 속 얼굴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던 김대식 씨(71)는 먹먹한 표정으로 당시를 회상했다.


군대를 제대하고 일자리를 찾고 있던 중 학생들이 군홧발에 무자비하게 짓밟히는 장면을 목격했다.


현재는 관광버스 기사로 일하며 민주묘지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1980년 5월 당시의 상황을 설명해주고 있다.


김 씨는 5·18 왜곡 세력과 관련해 강력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 5·18을 모티브로 한 게임에서 북한군이 등장했다는데 어린아이들은 그런 게임을 통해 잘못된 부분을 학습할 수 있어 문제가 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의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는 부분을 크게 따라부르며 오월 영령에 대한 추모의 목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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