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부외과 명의 "전세계 이끌던 한국의료, 10년 전 수준으로 돌아갈 것"

최세훈 서울아산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

"우리나라 의학 발전 신기루였을지도…정부 위기 못 느껴"


지난달 25일, 전국의 의과대학 교수들이 본격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기 시작했다. 병원이 이들의 사직서를 수리하지 않아도 민법상 한 달 뒤면 사직 효력이 발생한다. 바로 그 시간이 불과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최세훈 서울아산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는 의대 교수들이 사직서 제출에 결의하기 6일 전, 윤석열 대통령이 병원에 방문해 의료진들을 만난 다음날인 19일 "삶의 목적을 포기한다"며 공개 사직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최 교수의 사직서 제출 소식이 펴지자 주변 의사들은 최 교수가 병원을 떠나는 것은 국가적 인재 손실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도 그럴 것이 최 교수는 폐암, 폐이식, 흉부외상, 선천성 폐기형 수술 분야에서 전세계에 손꼽히는 의사다. 


최 교수는 의술도 뛰어나지만 2022년엔 '의료계의 신춘문예'에서 대상을 받기도 한 '낭만닥터'다. 후배들과 수술을 멋지게 끝내고 왁자지껄 맥주를 나눠 마셨던 그때가 너무나 그립다는 그가 이젠 4월 말 병원을 떠날 생각을 하고 있다. 삶의 전부를 포기할 결심을 했다는 최 교수의 이야기를 뉴스1이 들어봤다.  


-전공의가 떠난 지 두 달이 지났다. 많이 힘드셨을 것 같다.

▶2박 3일 꼬박 한숨도 못 자고 일하기도 했다. 이보다 더 심한 교수님들도 있다. 하지만 몸보다 마음이 더 힘들다. 우울감이 너무 크다.


문제가 있긴 했지만 그래도 잘 돌아가던 집이었다. 진짜 수술 멋있게 하고 보람 느끼고 전공의들과 맥주 마시며 왁자지껄 놀고 또 같이 만나서 일하고. 정말 재미있게 살았다. '야, 흉부외과 의사 진짜 좋아'라며 후배들 꾀기도 하고.


환자 보는 것도 너무 감사했다. 내 손으로 환자들이 낫고 그들과 농담하고 웃고 이러는 게 너무 좋았다. 그런데 이 모든 게 다 없어졌다. 내 잘못이 아니라 완전히 외부에서 두들겨 패서 망가졌다. 이 분노와 좌절, 괴로움, 허무함이 우리 교수들을 휘감고 있다.


-마지노선을 이달 말로 두신 이유는.

▶사실 5월 10일로 계획해놨었다. 내가 꼭 수술해야 되는 환자들은 해야 하니까. 근데 다음달이 되면 전공의들도 돌아올 필요가 없어진다. 진급도 안 되고 해서. 그래서 진짜 이번 달 안에 어떻게든 최대한으로 해결을 해야 한다. 정말 마지노선이다. 사직하는 교수도 25일부터 나올 거다. 계속 이어질 거고, 5월 되면 더 가속화될 거다. 나도 정말 무섭다.


-하지만 대중들은 이렇게 말한다. '나갈 사람 다 나가고 새로 뽑으면 된다, 의사 하고 싶은 사람 많다.'

▶그건 정말 너무 몰라서 하는 말이다. 시니어 교수들 나온다는 말도 그렇고. 정말 답답하다. 이미 각 분야가 많이 분화돼 있다. 나도 수술 정말 열심히 하는 사람이지만 지금도 새로운 걸 배우며 발전하는 사람이다. 내가 여태까지 했던 수많은 경험들과 눈앞에서 본 죽음들, 이런 것들은 절대로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대체가 가능하지 않다는 거다.


지금 나간다는 교수들 다 필수 의료의 대체 불가능한 사람들이다. '저 사람은 나가면 안 되는데' 하는 사람들이 먼저 나간다.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더 이상 못 버티기도 하고. 너무 일방적으로 두드려 맞아서 화도 난다. 진짜 국민들이 의사 욕할 때가 아니고 좀 도와줘야 한다.


-그래서 의대 증원을 하되 필수의료를 지원해주겠다고 한다.

▶공부를 덜한 것이다. 환자가 지금 중환자실에 누워 있어서 다리에 근육 하나도 없는데 '걸어야지'라고 하면 못 걷는다. 그러면 살짝 운동시켜 받아들일 만하게 하고 그다음 단계를 진행해야 한다.


지금 이 상황도 똑같다. 나는 필수의료 패키지 중에 동의하는 것도 있다. 근데 그걸 과시하듯이 '너 안 따라오면 다 죽어'라고 하면 안 되는 거다. 어쨌든 환자가 죽으면 안 되잖나.


난 사실 합의만 되면 의대 정원을 늘려도 좋다. 늘리려면 교묘하게 떡도 주고 매도 주고 설득해가면서 하면 됐을 거다. 근데 지금 망쳐버리지 않았나. 이건 잘못한 거다.


-전공의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전문의 중심 병원을 만들겠다고도 한다.

▶문제는 전공의가 없는데 전문의 중심병원? 전문의는 전공의를 대신할 수 없다. 전공의가 돌아오지 않는 한 시니어 의사? PA간호사? 어떤 방법을 써도 전공의 자리를 메꿀 수 없다.


현대의학은 다 협업이다. 전공의는 한 축이다. 그 축을 그냥 의사로 퉁칠 수 없다는 거다. 인턴, 레지던트, 전임의, 교수 4명이 하던 일을 10이라고 한다면 지금 교수 혼자 3도 못한다. 어떤 다른 인력으로도 메꿀 수 없다. 처방도 넣고 튜브도 넣고 응급 등 다 할 줄 알지만 그렇게 봐선 안된다.  


-그럼에도 정부는 꼼짝 안 할 모양새다.

▶이제는 너무 많이 왔다. 전공의들을 천하의 몹쓸 사람으로 만든 건 정말 큰 죄다. 이제는 원점 재검토와 사과 말고는 방법이 없다.  


정부는 진짜 이 위기를 못 느끼는 것 같다. 하는 데까지 하고 안 되면 그냥 다 같이 망가지는 거다. 근데 안 될 것 같다. 그냥 정말 다 망할 것 같다.


-망한다는 것,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난 2003년에 전공의를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정말 아수라장이었다. 10년 전에도 흉부외과 교수 한 명이 해외 학회 발표하면 그날은 경사가 난 거다. '한국인의 밤'이라고 해서 학회에 온 한국 의사들이 모여 축하해주고 그랬다. 또 10년 전에는 우리 폐암 조직 모아서 외국 연구진에 주고 논문에 이름 하나 넣고 그랬다. 지금보다 환자들도 많이 죽었다. 정말 급한 환자들도 많이 죽고 그랬다.


근데 지금은 우리 전공의가 나가서 외국 대가들 앞에서 발표한다. 우리가 전세계 리더다. 그 말도 안되는 발전을 난 봤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의료가 당연하지 않다는 걸 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신기루 같은 거였을지 모르겠다. 이렇게 간다면 우리는 10년 전으로 돌아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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