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대표 '착취' 글에 교수들 분노…의료계 내홍 점입가경

"교수, 착취 사슬 중간관리자" 박단 대전협 대표 글에 교수들 들썩

병원협회 총회 박민수 차관 초대에 "지금이 그럴 때냐" 논란 확산


의대 증원 문제로 인한 의-정 갈등이 두 달 넘게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의료계의 내부 분열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의료계의 목소리를 하나로 담기에도 역부족인 상황에서 내부 총질까지 하는 악재가 잇따르면서 일각에서 추진하는 단일대오 전선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전공의 대표가 의대 교수들을 저격하는 글이 확산되면서 전공의들을 감싸왔던 교수들의 분노가 폭발하고 있는가 하면 전국의 약 3500여 개 병원급 의료기관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는 병원협회 총회에 박민수 보건복지부 차관이 초청된 것을 두고도 의료계 내부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14일 의료계에 따르면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2일 밤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1만2000명에 휘둘리는 나라, 전공의를 괴물로 키웠다' 제목의 한겨레신문 기사를 올리고 의대 교수들을 '착취 사슬 관리자'라고 표현한 본문의 내용을 따로 뽑아 올렸다.


박 위원장이 공유한 글에는 "전공의들에게 전대미문의 힘을 부여한 것은 다름 아닌 정부와 병원이다. 수련병원 교수들은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에게 불이익이 생기면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이들은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착취의 사슬에서 중간 관리자 역할을 해왔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에 일부 교수들은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전공의들의 심정은 이해하지만 전공의들을 보호하려고 애써온 의대 교수들까지 적으로 돌리고 있는 형국이라는 지적이다.


석정호 연대 의대 교수는 박 위원장이 올린 게시글의 댓글을 통해 "교수들이 중간관리자라는 말을 인정하지만 교수 역시 격무와 연구, 진료, 교육에 있어 세계 어느 나라 못지 않게 열심히 수행하느라 노력 중"이라며 "전공의들을 가르치고 좋은 수련 환경으로 변화시켜 가는 데 의식과 실천이 부족한 측면은 있지만 이토록 대치점에 두고 가르려는 느낌을 주는 것은 마음이 별로 좋지 않다"고 했다.


강홍제 원광대 의대 교수 비대위원장도 "자기 지지 세력에 기관총을 난사하는 것은 윤 대통령만이 아니었다. 실망이다"라며 "사제지간이 아닌 직장상사와 부하직원 관계라면 더 이상 전공의를 교수들이 지지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지방의 한 필수과 교수도 "박 위원장이 대형사고를 쳤다"며 "안 그래도 꾸역꾸역 버티고 있는데 화가 나다 못해 허탈하다. 나도 전공의였다. 그래도 내 새끼들 더 가르쳐보겠다고 지금까지 버티고 애쓴 맘이 다 무너진다"고 말했다.


그동안 '내 새끼'라고 지칭하며 전공의들의 무사 귀환을 위해 힘써온 교수들로서 현 상황에 적잖은 실망감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다만 박 위원장의 글을 편협하게 해석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박형욱 단국대 의대 교수는 "전공의들에 대해 정성을 쏟았던 교수님들 입장에서는 매우 기분이 나쁠 수도 있다"면서도 "그렇다고 박 위원장이 맘에 안 들면 전체 전공의들에 대한 지지를 거둘 것인가. 반대로 박단 회장이 마음에 들면 전체 전공의들이 행보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지지할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이어 "박 위원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체 전공의들"이라며 "전체적인 맥락을 고려하면 박 위원장이 일부 인용한 글은 크게 반응할 문제도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그러면서 "그보다 더 비판해야 할 것은 병원협회에서 박민수 보건복지부 차관을 불러 축사를 듣고 웃고 떠든 것을 더 비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대한병원협회는 지난 12일 개최한 제65차 정기총회에 박 차관을 초청했다. 이날은 앞으로 2년간 병원협회를 이끌어 갈 차기 회장을 뽑는 자리이기도 했다.


이날 총회에서 새 회장으로 당선된 이성규 당선인은 당선 소감으로 가장 먼저 "최우선으로 금번 의정 사태 문제 해결을 위해 뛰겠다"며 "현재 의료사태를 어떻게 원만히 풀어낼 것인가 고민하며 차근차근 실타래를 풀어 나가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에 박 교수는 "전공의들에게 온갖 폭력적 언사를 해 온 박 차관을 지금 불러 축사를 듣는다니 지금이 그럴 때냐"며 "병협과 박 차관이 한몸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느냐"고 일갈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교수는 "아무리 병원장들의 모임이라고는 하지만 지금이 어떤 때인데 박 차관을 불러 하하 호호 웃고 있느냐"며 "이 모습을 본 전공의들과 교수들의 마음은 어떨 거라 생각했는지, 의료계 내부에서도 위치에 따라 직역에 따라 따로 노는 모습을 보니 희망이 더욱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의료계의 내분은 여러 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정부는 한목소리를 요구하고 있지만 의료계의 대표라고 할 만한 의협마저도 새 회장 당선인은 비대위원장 자리를 요구하며 갈등이 격화되는 모양새다.


이에 한 의료계 관계자는 "외부의 거대한 적이 있는데도 그 적과 맞서 싸울 동지들끼리 화합하지 못하고 욕하고 헐뜯고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라며 "정부가 총선 이후 다시 전열을 갖출 시간에 의료계도 다시 모여 하루라도 빨리 한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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