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의대 집단 사직 '현실화'…의·정 이견에 환자 불안 증가

전국 각지 병원에서 입장 표명 후 사직서 제출 이어져

"교수마저 떠나면 환자는 어디로"…불만·걱정 표출도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정책'에 반발한 전국 의대 교수들의 집단 사직이 현실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정부와 의료계가 엇박자를 타며 좀처럼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어 '의료 공백'에 대한 우려는 지속되고 있다.

◇경기·대구·전북·울산 등…전국 교수 사직 '현실화'

25일 교수단체인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는 성명을 내고 "오늘 사직서를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교수직을 던지고 책임을 맡은 환자진료를 마친 후 수련병원과 소속 대학을 떠나겠다는 입장이다.

경기지역에서는 분당서울대병원과 용인세브란스병원, 고대안산병원이 이번 성명에 참여했다. 분당서울대병원의 경우 사직서를 제출하기로 결의를 모은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미 사직서를 제출한 교수들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후 5시 비대위 회의에서 사직서 제출 방법 등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대안산병원의 경우 안암·구로와 함께 이날 아침 각각 온라인 총회를 진행했다. 교수진은 사직서를 제출하고 있고, 병원 측은 정확한 규모를 집계 중이다.

연세대 의대 교수들은 이날 오후 6시 의대학장에게 사직서를 일괄 제출하기로 했으나 제출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용인세브란스병원의 경우에도 교수진이 신촌·강남병원과 뜻을 같이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오후 5시로 예정됐던 비대위 회의는 취소됐다.

대구 계명대 일부 의대 교수들도 개별적으로 비대위 측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있다. 비대위는 교수들이 사직서를 받아 일괄적으로 행정부서에 전달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구 가톨릭대 의대의 경우 교수 3명이 개별적으로 사직서를 행정실에 제출했다. 현재 비대위 교수들은 내부 회의를 통해 단체 사직서 제출 여부를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북대 의대 교수협의회 비대위 역시 이날 성명서를 내고 "오늘부터 전북대 의대와 전북대병원 교수들은 사직서를 제출한다"며 "교수로서의 직을 걸고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울산대 의대 교수협의회 비대위도 이날 성명서를 통해 "의과대학 교수 767명 중 433명이 사직서를 제출한다"고 밝혔다. 울산대 의대의 경우 서울아산병원 528명, 울산대병원 151명, 강릉아산병원 88명이 3곳의 수련병원에서 총 767명의 교수가 재직하고 있다.

이 밖에도 충북대 의대와 충북대병원 소속 교수 50여 명은 이미 사직서를 제출했고, 경상국립대 의대 소속 교수 260여명 중 217명은 사직서 제출 투표에 참여한 상태다.

이에 앞서 지난 18일 부산대 의대는 교수 55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참여자 356명 중 79.5%가 자발적 사직서 제출에 동의한다고 답했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의 의대 정원 배분에 반발한 전국 의대 교수들이 집단 사직서 제출을 예고한 25일 서울 시내 대학 병원에 환자가 지나가고 있다. 2024.3.25/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정부의 의대 정원 배분에 반발한 전국 의대 교수들이 집단 사직서 제출을 예고한 25일 서울 시내 대학 병원에 환자가 지나가고 있다. 2024.3.25/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교수 떠나면 환자는 어디로"…환자 '의료 공백' 우려↑

"교수들마저 떠나면 환자들은 이제 정말 어디로 가야 하나요…."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에 반발해 전국 의대 교수들이 '무더기 사직'을 예고한 25일 오전 광주 동구 조선대학교 병원에서 만난 안모 씨(45)는 아버지 걱정에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의 70대 아버지는 얼마 전 이 병원에서 전립선 암 초기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주말 사이 조선대 의대 교수 78%가 사직서 제출에 동의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불안감을 감출 수 없었다.

암 특성상 초기 진료가 중요한데, 전공의 이탈 상황에 이어 교수들마저 병원을 떠날 의사를 나타내면서 남는 인력으로 병원을 운영할 경우 진료가 지체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담당 교수가 암 진단을 했으니 아버지의 상태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다. 그런데 담당 교수가 떠나고 10% 남짓 교수들만 남으면 전공의도 없는 상태에서 진료가 가능한 것이냐"고 걱정했다.

그러면서 "골든 타임을 놓치고 상황이 더 악화되면 어느 누가 책임져주는 것도 아닌데 왜 환자들이 피해를 봐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40대 아들의 뇌질환 치료를 위해 함께 병원에 온 고모 씨(65)도 불안함을 내비쳤다.

고 씨는 "뇌 관련 진료는 대학병원에서만 가능한 것이지 않느냐. 전남대 병원도 상황이 마찬가지일 텐데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느냐"며 "적어도 보호자들에게는 관련 상황을 공유해줘 다른 방안을 찾을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의료대란이 한 달 넘게 지속되면서 이날 병원 대기석은 텅 비어있는 등 예전과 비교해 한적한 모습을 보였다. 대기하던 보호자들은 의료진과 교수들의 이탈 등으로 이러한 상황이 발생한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고 씨는 한산한 대기석을 보며 씁쓸하다고도 했다. 그는 "대학병원이 이렇게 한가한 것을 난생처음 보는데 씁쓸한 감정도 동시에 든다"며 "환자와 보호자들이 살기 위해 다른 병원을 찾아 떠났을 그 마음이 애잔하다"고 했다.

이와 관련, 한국백혈병환우회 등 9개 환자단체가 함께하는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이날 성명서를 통해 "환자의 불안과 피해를 가중하는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 장기화에 강한 유감을 표명하며, 의료진의 빠른 복귀는 물론이고 양측이 환자 중심의 의료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자료사진. 2024.3.6/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자료사진. 2024.3.6/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정부 "대화할 때"…교수 "2000명 증원 백지화 없이 대화 없다"

전날 전공의 면허정지 처분과 관련해 "유연한 처리 방안을 모색해 달라"고 주문했던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의료계와의 소통을 더욱 강화해 줄 것을 거듭 당부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와 주례회동을 갖고 "의료계를 비롯한 사회 각계와 더욱 긴밀히 소통해 줄 것"을 주문했다고 김수경 대통령실 대변인이 서면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에 대한 면허정지 처분을 사실상 유예하며 대화의 손짓을 보냈지만 의대 증원 철회 없이는 대화도 없다는 의료계를 상대로 더 설득해 보라는 메시지로 풀이된다. 이에 정부는 의료계와의 대화 협의체 구성을 위한 실무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은 이날 전공의 면허정지를 26일부터에서 28일로 유예하기로 했다는 언론 보도와 관련해 "사실과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뉴스1과 통화에서 "3일 유예하면서 유예라고 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하면서 "26일부터 면허정지 처분은 일단 중단하고 상황을 지켜볼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정부는 의료계에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오전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보다 나은 의료체계를 만들기 위해 이제는 대화에 나서야 할 때"라며 "의대 교수들은 전공의들이 조속히 병원으로 돌아오도록 설득해 주시고, 전공의들과 함께 개혁 논의에 참여해달라"고 말했다.

정부는 전날 윤석열 대통령이 전공의 면허정지 문제를 유연하게 처리하고 협의체를 구성해 의료계와 대화를 추진하라는 지시에 따라 대화 준비를 위한 실무작업에 착수했다.

반면 의료계는 정부의 대화 의지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증원 방침 철회를 요구했다.

전날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난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는 이날 "정부에 의한 입학정원과 정원 배정의 철회가 없는 한 이 위기는 해결될 수 없다"면서 "정부의 철회 의사가 있다면 국민들 앞에서 모든 현안을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는 입장을 재차 확인했다.

의대 교수 비대위도 "정부는 의과대학 학생, 전공의, 교수가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도록 근거 없는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철회하고 진정성 있는 대화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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