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피아]돈되면 가짜뉴스면 어때?…'사이버렉카' 부추기는 알고리즘

<20세기 대중문화의 꽃은 TV다. TV의 등장은 '이성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고 인간의 지성을 마비시켰다. '바보상자'라는 오명이 붙었다. 하지만 TV가 주도한 대중매체는 비약적으로 발전하며 우리 사회 곳곳을 바꿔놓았다. 21세기의 새로운 아이콘은 유튜브(YouTube)다. 유튜브가 방송국이고 도서관이고 놀이터고 학교고 집이다. 수많은 '당신'(You)과 연결되는 '관'(Tube)이 거미줄처럼 촘촘한 세상이다. '취향저격'을 위해 인공지능(AI)까지 가세했다. 개인화로 요약되는 디지털 미디어의 총아인 유튜브. 유튜브가 만든 세상은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적인 '멋진 신세계'일까. /편집자註>

 

견인차처럼 사건·사고 소식을 먼저 끌기 위한 유튜브 '사이버 렉카' 경쟁

가짜뉴스 확산 견인하지만, 유튜브 알고리즘은 이용자 체류 시간에 초점 

 

사고가 발생하면 견인차들은 분초를 다투며 현장에 출동한다. 이 같은 모습은 고속도로에서만 펼쳐지는 풍경이 아니다. 각종 사건·사고 소식을 먼저 끌고 가기 위한 경쟁적 질주가 유튜브 위에서도 벌어진다.


이른바 '사이버 렉카'라 불리는 현상이다. 문제는 이 같은 경쟁이 가짜뉴스의 확산과 개인에 대한 근거 없는 인신공격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유튜브의 추천 알고리즘이 사이버 렉카 경쟁을 부추긴다는 비판도 나온다.

◇돈이 되는 '사이버렉카'…가짜뉴스 확산 견인

"이거 사실이면 대한민국 난리난다"

섬네일을 가득 채운 자극적인 문구와 이미지, 가면 혹은 기계 합성음을 앞세운 내레이션. 사이버 렉카를 자처하는 유튜버들의 특징이다. 온라인 커뮤니티부터 정치권까지 분야를 막론하고 조회수가 뽑힐 만한 이슈를 비슷비슷한 형식으로 단시간에 뽑아낸다. 사실 확인 절차 없이 의혹 수준의 내용을 퍼 나른다. 기성 언론 보도 내용을 줄줄 읊기도 한다. 기사 속 일부 내용에 사실처럼 가장한 본인의 생각을 교묘히 섞어 논란을 증폭시키는 방식이다.

대표적인 사이버렉카로 정배우, 뻑가 등이 꼽힌다. 본래 게임 콘텐츠를 주로 다루던 정배우는 이슈 몰이형 콘텐츠가 인기를 끌자 '기자'를 자처하며 사이버렉카 경쟁에 뛰어들었다. 특히 지난해 인기를 끌었던 '가짜사나이' 출연진에 대한 폭로전을 이어갔다. 이 과정에서 한 출연진의 '몸캠 피싱' 사진을 유출해 명예 훼손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기도 했다. '가짜사나이'는 콘텐츠 자체가 내포한 폭력성 논란과 별개로 출연진에 대한 비방과 폭로전이 이어지면서 유튜브 업로드가 중단됐다.

사이버 렉카 유튜버로 꼽히는 '뻑가' 채널 영상들. (뻑가 유튜브 갈무리) © 뉴스1

가면을 쓰고 방송을 진행하는 뻑가는 주로 페미니즘과 관련된 이슈를 끌고 와 여성혐오 장사를 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남초 커뮤니티 여론의 입맛에 맞춰 활동 중인 아이돌 멤버를 두고 페미니스트라며 여론 심판대에 올리는 식이다. 여성 경찰관에 대한 비하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기존에 미디어 경험이 있는 이들이 사이버 렉카 경쟁에 뛰어들기도 한다. 연예 매체 기자 출신 김용호씨, MBC 기자 출신 김세의씨를 비롯해 강용석 변호사가 참여하고 있는 가로세로연구소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은 기존 미디어 악습, 옐로 저널리즘을 극대화해 가짜뉴스 장사에 나서고 있다. 지난 3월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백신 접종을 놓고 '바꿔치기' 가짜뉴스 확산을 주도하면서 백신 불신을 부채질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들은 근거가 불명확한 지난해 4·15 총선 관련 부정선거 의혹을 거듭 제기하고 있다.

'가로세로연구소'는 백신 불신을 조장하고 음모론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가로세로연구소 유튜브 갈무리) © 뉴스1

사이버 렉카로 인한 폐해는 지난해 12월 아동 성범죄자 조두순 출소 당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들은 사적 보복, 이른바 '참교육'에 나선다며 조두순 주거지에 몰려들어 호송차 위에 올라가 차량을 걷어차거나 무단침입 등 난동을 부렸다. 인근 주민들은 피해를 호소했다. 당시 한 주민은 "당신들 12년 전에 뭐 했어요? 피해자 가족들 법원에서 피켓 들고 할 때 당신들은 뭐 했는데?"라며 "후원자 수 늘리고, 구독자 수 늘리고, 별풍선 구걸하고, 이거 아니냐"고 현장에 있던 유튜버들을 비판했다. 최근 인기 유튜버 진용진씨를 둘러싼 사생활 폭로전도 사회적 공익과 무관한 사이버 렉카 현상의 일환으로 꼽힌다.

문제는 주목 경쟁을 통해 쉽게 돈이 벌린다는 점이다. 기획과 제작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는 다른 유튜브 콘텐츠와 달리 단순히 화제가 되는 기사 내용을 자극적으로 정리해 읊는 것만으로도 '가성비' 높은 방식으로 조회수를 뽑을 수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콘텐츠들이 난립하고 있다. 현재 정배우, 뻑가, 가로세로연구소의 구독자 수는 각각 30만7000명, 92만9000명, 65만2000명이다. 이들의 인기 콘텐츠는 100만~20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사이버 렉카 유튜버들은 라이브 방송마다 500만원~1000만원에 이르는 수익을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체류 시간 늘리는 데 집중하는 유튜브 알고리즘

유튜브 알고리즘은 이 같은 사이버 렉카 경쟁을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는다. 유튜브 측은 구체적인 알고리즘 작동 방식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이용자 체류 시간을 늘리는 데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알려졌다. 닐 모한 유튜브 최고 상품 담당자(CPO)는 2019년 3월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유튜브 이용자 시청 기간 중 70%는 추천 알고리즘에 의한 결과이며, 알고리즘 도입으로 총 비디오 시청 시간이 20배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한 시민이 거주지로 향하는 조두순이 탑승한 차량을 공격하고 있다. 2020.12.12/뉴스1 © News1 조태형 기자

실제 다양한 연구에서 유튜브 알고리즘이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용자 체류 시간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2019년 버즈피드는 이용 기록이 없는 유튜브 계정으로 뉴스와 정치 관련 키워드를 검색해 검색 결과 목록 중 첫 번째 영상의 추천 영상을 계속 타고 들어가는 식으로 추천 알고리즘을 분석했다. 버즈피드는 처음엔 유튜브에서 케이블 채널 뉴스 영상이 추천되다가 실험이 거듭될수록 자극적인 콘텐츠가 추천되는 패턴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2019년 11월 발간한 연구서 '유튜브 추천 알고리즘과 저널리즘'은 "유튜브 추천 알고리즘은 이용자를 유튜브에 오래 체류시키는 것이 주요 목표"라며 "이 과정에서 추천 알고리즘은 이용자 개인의 선호에 알맞은 영상과 다른 이용자들이 관심을 보이는 영상을 추천한다. 하지만 이는 유튜브의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함이며, 그 과정에서 추천 알고리즘이 영상의 내용, 영상이 조회 수를 얻은 배경, 영상이 개개인과 사회에 미칠 파급력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지는 의문으로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유튜브 엔지니어 출신 기욤 샬로는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를 통해 "추천 영역에서 내가 작업한 알고리즘의 사회의 분극화를 더 심하게 만들고 있다"며 "분극화는 사람들을 잡아 두는 데 매우 효과적이고 알고리즘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 만한 것을 추천하는 게 우선이다"고 주장했다.

사이버 렉카라는 말은 지난해부터 국내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구글 트렌드, 네이버 데이터랩 등에 따르면 해당 표현은 지난해 5~6월쯤 처음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유튜브는 지속해서 콘텐츠 필터링을 강화하고 있지만 화제가 되는 이슈는 여전히 이용자의 체류 시간을 붙잡아두며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알고리즘을 통해 널리 퍼지고 있다는 얘기다.

사이버 렉카들끼리 서로를 견인하는 진풍경도 벌어진다. 소재가 떨어진 사이버 렉카들은 서로를 저격하며 이슈가 이슈를 낳는 구조로 조회수를 쌓고 돈을 벌고 있다. 자극적인 섬네일에 끌려 이들의 영상을 몇 편 시청한 이용자들은 알고리즘에 이끌려 사이버 렉카 콘텐츠로 가득 찬 추천 영상 리스트를 만나게 된다. 사이버 렉카는 오늘도 각종 이슈를 끌기 위해 유튜브 위를 질주한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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