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슐린 펌프' 합병증 예방 효과 탁월하지만…병원선 "돈 안되는 환자"

환자보는데 30분 걸려도 의료수가 '0원'

인슐린 펌프 사용률 0.4% 불과 연속혈당측정기도 10%뿐


"인슐린 펌프는 의료수가가 하나도 없어요. 환자 보는 시간도 많이 들고 인력도 많이 필요한데 수가가 없으니 병원도 (의사들에게) 다른 환자를 더 보라고 하죠."


대한당뇨병학회 보험대관이사를 지냈던 김종화 부천세종병원 내분비내과 과장은 지난달 25일 <뉴스1>과 전화 인터뷰에서 이같이 토로했다. 의료수가 문제가 당뇨 전문의 감소를 초래하고 있다는 의미다.


전문의도 줄어드는 의료계 현실 속에서 1형 당뇨 환자들은 점점 설 곳을 잃어가고 있다. 정부가 부랴부랴 지원책을 내놓고 있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의료수가와 급여 체계 등으로 인해 실제 환자들이 맞닥뜨리는 의료 환경은 열악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의료수가 없는 인슐린 펌프…효과 좋아도 병원에선 '굳이'


인슐린 펌프는 혈당 수치에 따라 실시간 자동 또는 원격으로 인슐린을 주입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다. 김 과장은 "알고리즘에 따라 혈당 수치에 맞춰 (인슐린) 용량이 조절된다"며 "연속혈당측정기와 인슐린 펌프를 모두 쓰는 경우 그렇지 않은 환자보다 당화혈색소가 1~1.2% 정도 차이가 난다"고 했다.


당화혈색소(HbA1c)는 혈당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지표다. 김 과장은 "당화혈색소가 1%만 낮아도 합병증을 예방할 수 있다"며 "적게는 20%, 많게는 60%까지 예방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인슐린 펌프는 정부에서 요양비를 지원하고 있지만 정작 사용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인슐린 펌프 자체에 대한 의료 수가가 마련돼 있지 않아 병원 입장에서는 별로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김재현 삼성서울병원 당뇨병센터장은 "인슐린 펌프는 가장 위험한 4등급 의료기기인데 수가가 없어서 병원에 둘 수도 없다"며 "우리나라에서는 (인슐린 펌프를) 사용하는 환자가 전체의 0.4%밖에 안 된다"고 말했다.


혈당을 일정하게 유지하려면 탄수화물을 먹는 양에 따라 인슐린 사용량을 세심하게 조정해야 한다. 그래서 의사가 환자의 인슐린 펌프를 세팅할 때는 한 명당 20~30분씩 걸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돈이 되지 않는 환자'를 오래 진료하는 의사를 병원에서 곱게 볼 리 없다.


김 센터장은 "이런 의료수가에서는 첨단 기기 쪽으로 환자를 유도할 수가 없다"며 "혈당 조절만 잘하면 중증 합병증이 안 오고 투석할 필요도 없으니 결국 나라에서 쓰는 돈도 줄어들 텐데 (인슐린 펌프) 수가를 약간만 올려도 전체 경제적 이익이 더 크다"고 강조했다.


◇ 스마트폰도 5년은 안 쓰는데…"렌탈 제도·요양급여 전환 필요"


연속혈당측정기와 인슐린 펌프는 스마트폰과 연동돼 1형 당뇨 환자들이 실시간으로 혈당을 관리할 수 있도록 돕는 첨단 의료기기다. 한 번 구매하는 데 수백만원을 호가하고 전극과 주삿바늘 등 소모성 재료 때문에 환자들에게는 경제적으로 부담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연속혈당측정기와 인슐린 펌프의 지원 기준액을 대폭 상향하고 환자 부담액을 최대 476만원까지 줄인 '소아·청소년 1형 당뇨 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인슐린 펌프는 5년에 한 번으로 지원 간격이 길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김미영 1형당뇨환우회 대표는 "5년 사이에 기기가 고장이 나거나 기기를 분실하면 다음 지원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거나 100% 자비로 부담해야 한다"며 "전자기기와 연동해 데이터를 주고받아야 하는데 그사이 스마트폰을 바꾸는 경우 연동에도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기기 렌탈(대여)도 지원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일본의 경우 환자가 매월 기기 사용료를 지불하는 렌탈 방식으로 운영해 초기 진입장벽을 낮췄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에서 연속혈당측정기는 의료기기 규제로 인해 2018년까지 수입조차 되지 않았다. 1형 당뇨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을 위해 해외 공동구매를 추진했던 김 대표는 2017년 식약처로부터 의료기기법 위반으로 고발당하기도 했다.


당시 김 대표의 사연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환자가 치료 목적으로 의료기기를 수입할 수 있도록 규제 완화가 이뤄졌다. 하지만 아직도 국내 의료체계는 1형 당뇨 환자들에게 넘기 어려운 장벽이 많다. 그중 하나가 '요양급여 전환' 문제다.


요양비는 환자가 먼저 기기를 구매하고 사후에 보조금을 환급받는 방식인 반면, 요양급여는 건강보험과 같이 의료기관 방문 당시 환자가 자기부담금만큼 지불하는 방식이다. 현재 정부의 의료기기 지원 방식이 요양비 형식이기 때문에 환자들로서도 선뜻 비싼 기기를 선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센터장은 "요양비로 해놓고 환자더러 '알아서 선택하라'는 식"이라며 "요양비로 지원해준 지가 4년이 넘었는데 연속혈당측정기를 쓰는 환자는 전체의 10%도 안 된다"고 말했다.


◇ "1형 당뇨는 '췌장 장애'입니다"…장애 인정 요구하는 환우회


환우회에서는 또 국가가 1형 당뇨를 '중증 난치질환'이나 '장애'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형 당뇨는 췌장의 인슐린 분비 기능이 아예 작동하지 않는 '췌장 장애'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1형 당뇨' 병명을 '췌도부전'으로 불러야 한다는 병명 변경 요구도 나온다. 여기에는 1형 당뇨가 일반적인 '당뇨'로 불리는 '2형 당뇨'와 이름이 비슷해 사회적 편견을 받고 있는 점도 한몫한다.


부산에 사는 1형 당뇨 중학생 윤호(가명·14)의 어머니 김미화씨(가명·여·45)는 "당뇨라는 병 자체가 편견이 가득하다"며 "생활습관에 따라 고칠 수 있는 병도 아니고 먹는 것과 상관이 없는데 주변에서는 '이건 먹어도 되느냐'는 질문을 계속 한다"고 말했다.


김미영 환우회 대표는 "저희도 처음에 장애에 대한 낙인과 부정적인 인식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다"며 "심부전 환자들처럼 췌도부전도 장애를 인정받으면 의료·복지 혜택을 받아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내부에서부터 인식을 바꾸게 됐다"고 설명했다.


1형 당뇨는 혈당 관리가 잘되지 않으면 당뇨 합병증에 걸리거나 저혈당 쇼크가 와서 위험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중증 질환'으로 분류되지 않아 복지 대상에서도 배제되고 상급종합병원 이용마저 제한되고 있다는 것이 환우회 측 주장이다.


김 대표는 "복지부가 최근 상급종합병원에 중증 환자 위주로 치료하도록 지침을 내렸는데 1형 당뇨는 꾸준한 교육과 관리가 필요함에도 중증 질환이 아니라서 배제되고 있다"며 "동네 내과에서는 치료가 안 되고 상급종합병원은 진료하시는 의사분들 입지가 점점 좁아지니까 저희가 갈 데가 없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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