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역 30년→무죄'…남편 '니코틴 살인혐의' 30대 파기환송심서 뒤집혀

검찰, 무기징역 구형

파기환송심 재판부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 '살인' 혐의 입증 부족"


니코틴이 든 물과 음식을 먹여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1심과 2심에서 징역 30년을 선고받은 30대 아내에 대한 파기환송심에서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


2일 수원고법 제1형사부(박선준·정현식·강영재)는 살인 등의 혐의로 기소된 A씨(39·여)의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서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 결심 공판에서 A씨에게 원심과 같은 '무기징역'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A씨는 2021년 5월 26∼27일 남편 B씨에게 3차례에 걸쳐 니코틴 원액이 든 미숫가루, 흰죽, 물을 마시도록 해 B씨가 니코틴 중독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날 선고 공판에서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소송의 경과와 판결 요지에 대해 50여분 동안 자세하게 설명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로 선고한 이유는 △피해자의 사망에 제3자가 개입한 정황이 없는 점 △피고인이 최초 경찰 수사단계부터 살인 범행을 부인한 점 △피해자 사망과 피해자의 행적, 신고, 경위 등에 관한 피고인의 일관된 진술 등이다.


또 △다량의 니코틴 원액을 흰죽과 찬물에 타서 의식있는 피해자에게 먹게 하는 살해 방법이 가능한지 △발각의 위험을 무릅쓰고 이와 같은 살해 방법을 선택할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지 △피해자의 다른 행위가 개입돼 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는지 등에서 검찰의 객관적인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니코틴의 용량'에 대해서도 의문점을 제기했다. 아내가 숨진 남편에게 건넨 흰죽과 찬물에 치사량의 니코틴이 들어있느냐에 대해서도 이를 확인할만한 직접적인 자료가 없다는 것이다. 흰죽의 경우에도 죽을 먹게 된 경위나 흰죽에 넣었다고 주장하는 니코틴의 농도 등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는 게 파기환송심 재판부의 입장이다.


'범죄 후 정황'에 대해서도 피고인이 살인했다는 행적으로 보기에는 의문점이 많다고 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숨지자 피고인이 사망사실을 신고하고, 피해자가 먹은 것으로 보이는 니코틴이 들어있는 찬물을 피해자 책상에 그대로 놓은 점, 피고인의 동생이 피해자 장례식 후 피해자 집에서 오래된 흰죽을 봤다고 진술한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흰죽에 니코틴을 넣어서 먹게 하는 살해 방법을 사용했다면 흰죽을 그대로 방치했다는 점도 의문이라고 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또 니코틴이 냄새가 나고 음용하면 혓바닥을 지르거나 혀가타는 듯한 통증이 느껴지는데, 의식있는 피해자가 이를 음용했다는 것 역시 의문점이 남는다는 입장이다.


이외에도 △전자담배를 피는 피고인이 어떤 경로로든 니코틴을 구매하거나 확보한 정황도 확인되지 않은 점 △피해자의 휴대폰 포렌식 결과 '전자담배', '자살', '부모 의절' 등을 검색한 내용이 확인되는 점 △피해자가 숨지기 전 자살을 암시하는 말과 실제 자살을 시도했던 점 등에 비추어봤을 때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고 했다. 


'피고인의 범행 동기'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여전히 피고인이 내연남과 내연관계를 유지했으나 이 관계만으로 살인의 동기가 있다고 하기 부족하고 피해자의 사망으로 경제적인 이득이 있는지도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날 선고 공판을 마친 후 A씨측 배재철 변호사는 "수사기관이 처음부터 피고인으로 범인을 잘못 지정한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배 변호사는 "살인은 모든 범죄사실 중 흉포한 동기가 있어야 하는데 내연남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남편을 살해할 동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뚜렷한 살해 동기도 없다"고 못박았다. 그러면서 "지난 2년간 피고인 본인과 가족들이 고통받았고, 중간에 사건이 보도되면서 '낙인'이라는 2차 피해도 있었다"고 꼬집었다.


앞서 1심과 2심은 A씨에게 '살인 혐의'가 있다고 보고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1심 법원은 "피고인은 액상 니코틴을 구매하면서 원액을 추가해달라고 했고, 이를 과다 복용할 경우 생명에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등 피해자 사망 전후 사정을 볼 때 3자에 의한 살해 가능성은 작다"고 판시했다.


2심 재판부는 '찬물'을 통한 범죄만 유죄로 인정했다. 다만 형량은 1심과 같았다. 


하지만 대법원은 지난해 7월 "공소사실이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며 징역 30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깨고 이 사건을 수원고법에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유죄 부분에 대해 제시된 간접증거들이 공소사실을 뒷받침하는 적극적 증거로서 충분하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추가 심리가 가능하다고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에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4차례에 걸쳐 변론 절차를 거쳤고, 이날 대법원의 취지에 따라 무죄 판단을 내렸다.


한편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A씨가 남편의 정보를 이용해 대출을 받은 '컴퓨터 등 이용 사기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로 인정해 징역6월에 집행유예1년을 선고했다.


A씨는 집행유예 선고로 이날 석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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