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매춘"…'통념' 어긋나는데 재판부 왜 '무죄' 판단했나

'류석춘 선고' 촉발한 논란…'학문적 표현의 자유' 어디까지

"위안부는 매춘" 발언 무죄…정대협 명예훼손은 '벌금 200만원'


류석춘 전 연세대 교수(69)가 2019년 대학 강의 중 일본군 '위안부'를 '매춘의 일종'이라고 발언한 것을 명예훼손이라 보기 어렵다며 법원이 '무죄'를 판결했다. 법원이 해당 발언을 '학문적 표현의 자유'의 영역으로 해석한 것으로 풀이된다.

형법적 기준이나 처벌이 아닌 학계의 비판이나 토론 등을 거쳐 학문의 영역을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로 분석된다.

서울서부지법 형사4단독 정금영 판사는 24일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 전체를 향한 일반적 추상적 표현"이라며 "통념에 어긋나고 비유도 적절치 않지만, 헌법이 학문의 자유와 교수의 자유를 보호하는 것을 볼 때 교수에 대한 제한은 필요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며 류 전 교수의 해당 발언을 무죄로 판단했다.

다만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일본군에 강제 동원당한 것처럼 증언하도록 위안부 할머니들을 교육했다'는 취지의 발언과 관련해선 유죄로 보고 류 전 교수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불특정 다수'와 '사실 적시'

재판 쟁점은 류 전 교수의 위안부 관련 발언이 형법상 명예훼손에 해당하는지였다. 

형법 제307조는 공연히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공연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했다면 같은 법에 근거해 최대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명예훼손이 성립하려면 불특정 다수가 인지할 수 있는 상황에서 사실 또는 허위사실을 적시해야 한다. 즉, '불특정 다수'와 '사실 적시' 여부가 핵심인 것이다.

이번 1심 선고는 명예훼손죄 성립 요건인 '사실의 적시'와 대학교수의 '학문적 의견 표명' 사이에서 학문의 자유를 명예훼손 취지에 반하지 않는 범위에서 해석해 내린 판결이라는 것이 법조계의 시각이다.

이날 판결은 지난해 10월 대법원이 내린 선고와 비슷하다. 당시 대법원은 형법상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박유하 세종대 명예교수에게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깨고 무죄 취지로 서울고등법원에 사건을 돌려보낸 바 있다.

박 교수는 2013년 낸 책 '제국의 위안부'에 '위안부란 근본적으로 매춘의 틀 안에 있던 여성들',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군의 관계는 동지적 관계' 등을 기술해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를 받았다. 1심은 무죄를 선고한 반면, 2심은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허위 내용이라고 보고 유죄로 판결을 뒤집었다.

3심 대법원은 2심과 다르게 판단했다. 대법원은 "저서의 전체적 내용이나 맥락에 비춰보면 박 교수가 조선인 위안부가 자발적으로 매춘행위를 했다거나 일본군에 적극 협력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해당 표현들을 사용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짚었다

역사적 사건을 다룬 출판물 속 표현이 유독 법원의 판결을 받는 사례가 많은 것은 식민지 문제가 국내에서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법원이 우리 사회에서 민감한 역사적 문제를 놓고 명예훼손이라고 판단하기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곽준호 변호사(법무법인 청)는 "허위사실이든 사실이든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대해 표현했어야 명예훼손의 처벌 여부를 정할 수 있다"며 "사법부가 이 같은 판단을 했을 때의 파급력을 우려해 '학문의 자유'라는 이유로 판단을 미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근 대법원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과거보다 넓게 보고, 허위 사실이 다소 있더라도 공익에 부합하거나 단순히 의견을 제시한 정도로 판단될 경우 무죄로 결론내리고 있다. '있다' 또는 '없다' 같은 존재 여부 표현만 사실로 보고, 감정이나 의견이 들어간 경우는 사실적시가 아니라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법적 공방 장기화 가능성

사건 당사자인 정대협과 류 전 교수 모두 항소할 계획임을 밝혔다.

정대협은 입장문에서 "학문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인간의 존엄이라는 근본 가치에 우선할 수 없다"면서 "올바른 역사관으로 미래세대를 길러야 함에도 류 전 교수는 일본 우익의 전형적 표현과 유사한 발언으로 역사를 부정하고 피해자들에게 깊은 상처를 입혔다"고 비판했다

법조계에서는 류 전 교수 사건이 2심에서 뒤집힐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못하고 있다. 학문적 주장 혹은 의견 표명이라고 해도 그 전제가 되는 사실을 적시했으면 명예훼손이 성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적시된 사실이 타인의 사회적 가치나 평가를 객관적으로 저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명예훼손에 해당할 수 있다.

김대근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박사는 "명예훼손은 기본적으로 개인의 법익을 보호하는 법이기 때문에 개인이 특정되지 않으면 명예훼손 법리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법원의 일관된 입장이고 학계의 통설"이라면서도 "다만 주목할 점은, 위안부 생존자가 몇 남지 않은 상황이라면 불특정 다수가 아니라 특정 가능하다 보고 명예훼손이라 볼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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