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나도 서울 큰 병원 가겠다? 국민들 착각에 빠져있다"

의료계 원로들 쓴소리…"이재명 대표가 편견 더 각인시켜"

"명의 빅5에만 있는 것 아냐…이대로면 지역의료 붕괴 가속"


반나절이면 전국을 오갈 수 있는 시대가 열리면서 지역의료 붕괴가 가속화하고 있다. 지방의 의료진은 굳이 품을 들여 서울의 대학병원에 갈 필요가 없다고 환자를 만류해도 환자가 의지를 꺾지 않으면 들어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지방 환자들이 서울로 향하는 것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다. 1·2차 의료기관에서 충분히 다룰 수 있는 질병임에도 환자들은 진료의뢰서를 받아들고서 소위 빅5(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 서울삼성병원, 서울성모병원) 병원을 찾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최근 부산에서 흉기 습격을 당한 후 헬기를 타고 서울대병원으로 전원한 것을 두고 의사들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배경에는 의료계에 만연한 이같은 부조리를 타파하고 개혁해야 할 정치 지도자가 정반대의 행동을 보였기 때문이다.

특히 수십년간 환자들을 돌봐온 원로들은 이런 현상에 "국민들이 크나큰 착각에 빠져있다"며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 결국 서울의 대학병원은 몸집을 계속 불려나갈 테고 지방 병원들엔 환자를 볼 의사가 없어지는 비극적인 상황이 펼쳐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응급의학과 봉직의들이 모인 온라인 카페에는 '와 진짜로 나타났어요'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이 글에는 "아빠와 딸이 던진 장난감에 corneal laceration(각막 손상)이 강력히 의심되는데 엄마는 서울대병원 보내주세요. 안 된다 하니까 경찰 신고. 미치겠네요. 진짜로 경험할 줄은…"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도 비슷한 글이 게시됐다. 게시자는 "급성 담낭염으로 수술하는 환자가 서울 병원으로 가길 원해서 전원 의뢰서를 써줬다. 그런데 그 환자가 119구급차도 불러 달라고 해서 안 된다고 설득하느라 진이 빠졌다"는 글을 남겼다.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에서 30년간 일하고 있는 간호사는 "의사와 간호사들은 요즘 '저 환자도 헬기 타고 서울 가야 하는 거 아냐?'라며 웃지 못할 농담을 한다"며 "실제로 현장에서는 이런 논란 자체가 굉장히 뼈아픈 일"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들이 진료를 보기 위해 대기를 하고 있다. /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들이 진료를 보기 위해 대기를 하고 있다. /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의료계 원로들과 의사들은 이 같은 현상을 "충분히 예상했다"는 반응이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병원장을 역임한 한 의료계 원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안 그래도 서울 대형병원이 최고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국민들의 머릿속엔 '역시 서울이 최고구나'라는 생각이 문신처럼 각인됐다"며 "인식의 전환이 이뤄지지 않으면 지역 의료 붕괴는 더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예전부터 환자들은 희한하게 서울에 있는 병원이 모든 병을 더 잘 고칠 거라고 생각하는데 진짜 명의들은 대형병원이 아닌 곳에도 많다"며 "실제로 이번에 이 대표가 받아야 했던 수술도 웬만한 혈관외과 교수라면 잘 해낼 수 있고, 특히 부산에는 의사들 사이에서 존경받는 유명한 의사들이 포진해 있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약 40년간 개원의로 활동해온 또 다른 의료계 원로는 이 같은 '서울 대형병원 만능주의'가 오랫동안 축적돼 온 편견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얼마 전에도 초음파 검사를 하다 혹이 발견된 환자에게 조직검사를 한번 해보자고 하니 곧바로 '서울 큰병원 가게 진료의뢰서를 떼달라'고 해 지금은 큰병원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통하지 않더라"며 "충분히 의원에서도 대응이 가능하고 치료가 되는 질환임에도 의사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으니 큰병원들에 환자가 바글바글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월이 흐를수록 이런 환자들이 늘고 있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며 "소위 서울의 빅5 병원이 환자를 더 잘본다는 편견은 언론이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비판했다.

예를 들어 A병원의 위암 환자 수술 건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건 그만큼 그 병원에 위암 수술을 하는 교수가 많아 생긴 차이일 뿐인데 병원은 수술 건수를 홍보하고 언론은 그 수치만을 받아 써서 환자들에게 착각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이 원로는 "물론 환자를 많이 보면서 실력이 늘기도 하지만 전문의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술기여도 단지 큰 병원이라는 이유로 환자가 몰리는 것을 보는 의사들은 답답할 따름"이라며 "빅5라는 명칭을 달아 환자들의 생각을 편협하게 한 언론에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환자들이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떠나 지방 병원에 환자가 줄어드는 것은 지역 의료 붕괴에 가속 페달을 밟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지방 대학병원에서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한 교수는 "환자들이 계속 와야 병원도 운영이 되고 의사들도 여러 환자를 만나 치료 경험을 늘려야 하는데 정작 치료는 서울 가서 받겠다고 하면 지방 의사들은 할 수 있는 게 없어진다"며 "결국 이러한 현실을 알게 되면 전공의들도 지방 병원에 안 오려할테고 이렇게 악순환은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역·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선 의사들만 때려잡을 게 아니라 경증에도 응급실을 가고 서울로 향하는 환자들의 인식을 바꾸는 일도 함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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