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팔기 겁나요" 자영업자들, 연말 몰래 온 '청소년' 손님 경계령

연말연시 신분증 도용·위조해 술 구매…"신고하겠다" 술값 떼먹기도

최소 2개월 영업정지 '철퇴'…면책 조항 있지만 '하늘의 별 따기'


15일 오후 5시 서울 마포구 소재 모 호프집. 가게 창문에는 '2003년생부터 출입'이라는 메모가 붙어있었다. 2004년생부터 술과 담배를 구입할 수 있지만, 이 업소는 자체적으로 문턱을 더 높인 것이다. 가게 주인 60대 이모씨는 "혹시 몰라 붙여놨는데, 오죽하면 이러겠나"라며 한숨을 쉬었다.

이씨는 지난해 이맘때쯤 미성년자에게 술을 팔았다가 과징금 폭탄을 맞았다. 손님 중 한명이 형의 신분증을 도용했는데, 생김새가 비슷해 걸러내지 못했다.

그는 "손님들이 나가고 얼마 후에 '미성년자에게 술을 팔았다는 신고가 들어왔다'고 경찰관이 찾아왔다"라며 "알고 보니 손님 중 한 명이 미성년자였는데, 그 친구가 경찰에 신고했다더라"고 말했다.

결국 이씨는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로 500만원의 과징금을 냈다. 그는 "나중에 학생들이 찾아와서 '적법하게 판 게 아니니 우리가 돈을 낼 이유가 없다'며 술값을 다시 받아 갔는데, 울화통이 터졌다"고 토로했다.

신분증을 도용하거나 위조한 미성년자에게 술을 팔았다가, 경찰 조사를 받는 자영업자가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특히 수능이 끝난 연말에는 몰래 술을 마시러 오는 청소년이 많아 긴장감이 가득하다.

◇"위조한 신분증 어떻게 걸러내나" 억울함 호소에도…영업정지 2개월

17일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전국 17개 시·도로부터 제출받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청소년에게 주류를 판매해 적발된 건수는 지난 2021년 1648건에서 이듬해 1943건으로 늘었다. 올해도 지난해 수준으로 나타날 것으로 관측된다.

이들 중 상당수는 위조 또는 도용 신분증을 제출한 청소년에게 주류를 판매한 사례로 추정된다. 이종민 자영업 연대 대표는 "학생한테 소주를 팔아서 돈 벌려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라며 "자영업자들이 억울한 상황에 부닥쳐 있다"고 말했다.

특히 연말이 다가올수록 자영업자들의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수능이 끝난 데다 크리스마스까지 있어, 전통적으로 연말에 불청객이 많다고 입을 모은다. 

마포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김모씨(32·남)는 "수능이 끝나서 그런지, 요즘 들어 평소보다 앳되어 보이는 손님들이 술을 많이 사러 온다"며 "철저하게 신분증 검사를 하고 있긴 하나, 작정하고 속이려 들면 걸러낼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자영업자들이 이토록 긴장하는 이유는 처벌 수위도 강한 데다, "위조된 신분증인지 몰랐다"는 주장이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청소년보호법엔 '청소년에게 주류를 판매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면책 조항도 없는 만큼, 위조 신분증에 속아도 처벌을 피하기 어렵다. 다만 대부분 정상이 참작돼 기소 유예에 그친다.

자영업자들에게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영업정지다. 미성년자에게 술을 팔면 청소년보호법뿐만 아니라 식품위생법으로도 처벌이 된다. 1차 적발 시 영업정지 2개월, 2차엔 3개월, 3차에선 영업 허가를 취소하도록 돼 있다. 

'신분증 위조·변조·도용으로 청소년임을 알지 못했을 경우엔 처분을 면제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지만, 대부분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인재근 의원실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20~2022년간 행정처분을 면제받은 사례는 194건으로 전체 적발건수 대비 2.8%에 불과하다.

법무법인 광야의 양태정 변호사는 "수사 단계에서 위조나 도용 신분증인지 몰랐다는 점을 객관적인 증거로 입증해야 하는데, 개인 입장에선 결코 쉽지 않은 일"이라며 "완벽하게 위조된 게 아니라면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수입이 일정치 않은 자영업자에게 영업 정지 곧 생계의 문제다. '연말' 대목을 놓칠 경우 그 타격은 더 크다.

송파구에서 호프집을 운영 중인 50대 배모씨도 도용 신분증을 제시한 청소년에게 술을 팔았다가 2개월간 가게 문을 닫아야만 했다. 그는 "가게 월세가 400만원 정도 되는데, 영업을 하지 못해 임대료를 못 내고 있다"고 토로했다.

모바일 신분증을 위조하는 경우도 등장해 자영업자들의 속을 썩이고 있다. 현재 엑스(X.구 트위터)에는 "모바일 신분증 위조해 드립니다"라는 광고가 다수 올라와 있다. 송파구에서 편의점을 운영 중인 박모씨는 "모바일 신분증도 위조한다는 기사를 보고 난 다음부터는 손님에게 신분증 앱 실행하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요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11일 오후 서울 을지로 노가리골목이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 News1 2022.4.11/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11일 오후 서울 을지로 노가리골목이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 News1 2022.4.11/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술 산 청소년들은 기소·선고유예…"솜방망이 처벌 더이상 안 돼" 주장도

위조·도용 신분증으로 술을 마신 청소년도 무겁게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작지 않다. 마포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김씨는 "청소년은 마땅히 사회가 보호해야 할 대상인 건 맞지만,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다 보니 외려 악용하는 것"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분증 위조 행위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신분증 도용도 공문서부정행사죄에 해당돼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다만 미성년자는 '보호 대상'으로서 선고 유예나 기소 유예에 그치는 경우가 다반사인 것으로 전해졌다. 일선 경찰 수사관은 "청소년의 경우 처벌 외에 교육 등 다양한 방식의 처분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급기야 오히려 자영업자를 협박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엔 16만원어치의 술과 안주를 주문한 후 계산서에 "신고하면 영업정지인데, 그냥 가겠다"는 메모를 남기고 달아난 사례도 등장했다.

현재 법제처는 자영업자의 상황을 고려해 위·변조된 신분증을 믿거나 폭행 또는 협박으로 신분을 확인하지 못한 사업자에 대한 제재 처분 감경 또는 면제 근거를 담은 방안을 마련 중이다.

법제처 관계자는 "자영업자의 부담 완화 방안을 담은 방안을 연내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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