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청과·산부인과 전공의 지원 '0명' 수두룩…"가르칠 교수도 사라질 판"

2024년 전공의 모집 결과…빅5도 필수의료과 정원 못 채워

"정부, 1분 1초라도 빨리 획기적인 필수의료 대책 마련해야"

 

내년도 전공의 모집 결과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등 필수의료과들이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든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빅5'라고 불리는 대형병원에서 조차도 일부 과에서 단 한 명의 지원자도 받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7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2024년 전공의 모집 결과 서울대, 서울아산, 세브란스, 삼성서울, 서울성모 등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빅5 병원들도 필수의료 과목들이 대부분 정원을 채우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의대를 졸업하면 수련병원에서 수련의(인턴) 생활 1년을 한 후 전공의(레지던트), 의국장(치프), 전문의, 임상의(펠로우) 과정을 거쳐 교수가 된다. 다시 말해 전공의가 미달된다는 것은 전문의, 나아가 후배들을 양성해야 하는 교수의 수까지 부족해진다는 의미다.


각 과별로 모집 현황을 살펴보면 소아청소년과의 상황이 가장 심각했다. 서울아산병원은 정원 10명 중 12명이 지원해 1.2대1의 경쟁률을 보이며 유일하게 모집 정원보다 지원자가 많았다.


서울성모병원은 정원 4명에 딱 맞춰 지원자도 4명이 지원했다. 하지만 서울대학교병원은 17명 모집에 15명이 지원했고, 삼성서울병원은 9명 모집에 7명이 지원했다. 세브란스 병원은 10명을 모집했지만 지원자는 0명이었다.


빅5 병원의 한 소청과 교수는 "지난해에도 결과가 좋지 않아서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또 이런 결과를 받아보니 너무 착잡하다"면서 "이런 문제는 십수년 전부터 시작됐고 그 결과가 최근 벌어지는 소아과 진료 대란, 응급실 뺑뺑이 등으로 나타나는 것인데 다가올 미래가 너무 두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소청과는 지난해에도 전공의 모집 상황이 좋지 않았다. 서울아산병원만 정원 8명 중 지원자 10명을 받았고, 서울대병원은 정원 14명 중 지원자 10명, 가톨릭중앙의료원은 정원 13명 중 지원자 1명, 삼성서울병원 정원 6명 중 지원자 3명을 받았다. 세브란스병원은 11명을 뽑으려 했지만 이때도 지원자는 0명이었다.


병원마다 전공의 지원자 수가 큰 차이를 보이는 것에 대해 병원 관계자들은 어떤 병원이 특별히 좋고 나빠서는 아니라고 했다.


한 병원 관계자는 “한 해 전에 전공의가 된, 바로 직속 선배가 없다 보면 막상 그 병원에 갔을 때 전공의로서 업무에 대한 부담감이 있다 보니 그런 걸 따진다고들 하더라”면서 “동기들끼리도 트레이닝 과정 중에 부담감을 덜기 위해 십시일반 모여 지원을 하기도 한다더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세브란스병원 소청과 전공의 지원은 지난해에도 0명, 올해도 0명이다. 반대로 서울아산병원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모집정원을 초과한 지원자를 받았다. 앞서 병원 관계자의 설명대로 라면 내년에도 이같은 현상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빅5 병원 관계자는 "이번 소청과 전공의 모집에서 전국 60개 수련병원 중 한림대강동성심병원(정원 1명에 지원자 2명), 서울아산병원, 서울성모병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미달"이라며 "아주대병원, 이대병원, 그 이하 지방병원들 대부분이 지원자가 아무도 없다"고 했다.


흉부외과도 상황은 비슷했다. 빅5병원 중 정원을 채운 곳은 서울아산병원으로 정원(3명)보다 2배 많은 6명이 지원했다. 세브란스병원은 정원 3명에 지원자 2명, 삼성서울병원은 정원 4명에 지원자 2명, 서울대병원은 정원 4명에 지원자 1명을 받았다. 서울성모병원은 정원 2명에 지원자 0명이었다.


빅5 병원 관계자는 "흉부외과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처참한데 수련병원 34곳을 합치면 지원율이 절반"이라면서 "그래도 지난해엔 빅5 병원 중 흉부외과 지원자 0명인 곳은 없었는데 올해는 생겨 마음이 더 안 좋다"고 말했다.


저출산 여파로 문닫는 병원은 늘고 있지만 의료인력은 계속 부족한 산부인과도 사정은 좋지 않았다.


빅5 병원 중에서는 서울대병원(정원 12, 지원자 13), 삼성서울병원(정원 6, 지원자 9)이 경쟁률 1.5대 1을 보여 정원을 충원했다.


반면 서울아산병원은 6명 모집에 지원자 4명, 서울성모병원은 4명 모집에 1명의 지원자를 받았다. 세브란스병원은 10명이라는 많은 인원을 모집했지만 지원자는 0명이었다.


오랫동안 필수의료과 살리기에 목소리를 내 온 한 산부인과 교수는 "오는 14일부터 불가항력 분만 의료사고에 대해 정부가 100% 보장하는 법이 시행돼 이번 전공의 모집에 좀 희망을 걸었는데 역시나였다"며 "이대로라면 중학생인 내 딸이 결혼해 아이를 낳을 때쯤이면 신생아를 받아줄 병원이 없어 낳지도 못할 상황이 생기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병원의 관계자는 "지금 전공의 모집이 잘 안 되면서 이들을 가르쳐야 할 교수들까지 서고 있다"며 "환자 보는 일도 벅찬데 거기다 연구도 해야 하고 당직도 서야 하고 과부하에 걸리니 교수들마저 현장을 떠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 종합병원 필수의료과 교수는 "일이 몰려드는 것도 문제지만 지금도 수술방에서 날아다니고 없어서는 안 될 교수들 중 곧 정년을 앞둔 분들이 많다"며 "의학 지식은 교과서만으로 되는 게 아닌데 들어오는 후배도 없고, 이를 가르쳐줄 선배도 없는 총체적 난국이 된 상황"이라고 한탄했다.


응급의학과도 비슷한 상황이다. 삼성서울병원(정원 4명, 지원 5명)과 세브란스병원(정원 6명, 지원 7명)만 정원을 채웠다. 서울아산병원은 6명 정원에 3명이 지원했고 서울대병원은 8명 정원에 6명이 지원했다. 서울성모병원은 11명 모집에 10명 지원으로 마감했다.


빅5 병원 필수의료과 교수는 "큰일이다 큰일이다 하지만 사실 내 일이 되지 않는 이상 이게 얼마나 큰일인지 모르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의사가 없어서 살릴 수 있는 환자를 치료하지 못하는 현실은 말도 안된다. 정부는 1분 1초라도 빨리 필수의료에 대한 획기적인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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