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군 총탄 6발'에 숨진 김오랑 중령 '재조명'…유족의 '한마디'

'서울의 봄' 흥행에 유족 “영화 보는 내내 괴로웠다”

“올해 12월 12일 오전 10시에도 어김없이 추모행사 진행”

 

1979년 12월 12일 수도 서울에서 일어난 신군부 세력의 반란을 막기 위한 일촉즉발의 9시간을 그린 영화 ‘서울의 봄’이 흥행을 이어가는 가운데 배우 정해인이 열연한 오진호 소령의 실제 인물인 고 김오랑 육군 중령이 재조명되고 있다. 


김오랑 중령의 조카 김영진씨는 29일 “영화를 보는 내내 (김 중령) 모습이 그러져 마음이 괴로웠다”며 “오 소령을 맡은 배우가 삼촌과 많이 닮았다”고 했다. 


그는 “삼촌이 돌아가시고 30년 가까이 전국을 돌면서 억울함을 풀기 위해 노력했다”며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이번 영화를 통해) 지금이라도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참군인 김오랑 기념사업회’ 김준철 사무처장(현 대한군인기념사업회장)은 “오랜 시간이 흘러 무뎌졌는지 슬픈 감정은 덜했다”면서 “측은한 마음을 넘어 정선엽 병장·김오랑 중령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그런 분들이 계셔서 다행이었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1945년 경남 김해에서 태어난 김 중령은 김해농업고와 육사를 졸업하고 1970년 맹호부대 소속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그는 ‘12·12 군사 반란’ 당시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불법체포하기 위해 사령부에 들어온 신군부 측 군인들에 홀로 맞서 교전하다 자정을 넘긴 13일 오전 0시 20분께 M16소총 6발을 맞고 숨졌다. 


그는 사망 당시 34세, 계급은 소령이었다. 사후 10여년이 넘도록 추서되지 못하다 1990년에 이르러 중령으로, 2014년 4월 1일 특전사령부 연병장에서 보국훈장 삼일장이 추서됐다. 같은 해 6월 6일에는 김해 삼정동 삼성초등학교와 삼정중학교 사이의 산책로 옆 잔디밭에 김 중령 흉상이 세워졌다.


김 소령의 아내 백영옥씨는 남편의 죽음 뒤 충격으로 시신경 마비가 돼 실명한 후 1991년 6월 숨진 채 발견됐다. 두 사람 사이에 자녀는 없었다.


김지관 김해인물연구회장은 2014년부터 매년 김 중령의 추모 행사를 추진하고 있다. 김 회장은 “처음 몇 해는 김 중령의 친구분들이나 특전사 동기, 주민분들이 제법 참석하셨다”며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관심과 참여가 떨어진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매년 찾는 분들은 늘 있다”며 “올해 12월 12일 오전 10시에도 어김없이 추모행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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