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41만7천원으로 소아의료 살리겠다고?…정부 대책 참담해"

최용재 대한아동병원협회장·한국소아의료붕괴 비상대책위원장

“의사 늘려도 전문의 되려면 11년, 그때까지 자원 활용이 과제”

 

 지난 5월 7일 밤. 119 상황실엔 다급한 신고 전화가 걸려왔다. 다섯살 난 아이 정욱이의 엄마는 아이가 갑자기 쓰러져 의식을 찾지 못한다며 절규했다. 정욱이는 곧바로 도착한 구급대원들의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인근 대학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정욱이의 죽음이 더욱 안타깝고 허망한 것은 그가 하루 전날 이미 119 구급대원들을 한번 만난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사망 전날인 6일 밤. 정욱이는 '크룹'이라 불리는 급성 폐쇄성 후두염으로 인해 체온이 40도까지 올라 인근 대학병원으로 이송됐다. 하지만 응급실 도착 후에도 치료는 바로 이어지지 않았다. 진료를 받으려면 4~5시간 대기해야 한다는 말뿐이었다. 


상황이 시급한 탓에 구급대원들은 근처 다른 6곳의 대형 병원에 전화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오래 기다려야 한다", "소아는 진료할 수 없다"는 대답뿐이었다. 1시간이 넘도록 총 9개의 병원에서 퇴짜를 맞았고, 진료만 봐줄 수 있다는 병원에서 호흡기 치료만 받고 퇴원했다. 


'크룹'은 감기 바이러스 감염으로 염증이 생겨 후두와 기관지가 붓는 호흡기 질환으로, 제때 치료를 받으면 호흡곤란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사망 사흘 전 이비인후과 약을 받아 먹었음에도 응급 상황에 이른 정욱이는 '응급실 뺑뺑이'를 돌다 다섯 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회는 발칵 뒤집혔다. 이 사태를 마주한 소아과 의사들은 가슴을 쳤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로 25년간 아이들을 돌봐온 최용재 대한아동병원협회장도 가슴 한복판을 짓누르는 답답함을 가눌 길이 없었다고 했다. 소아과가 얼마나 절박한 상황인지, 오랫동안 이야기해왔지만 결국 이런 사달이 나고 말았으니, 자괴감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대한아동병원협회 부회장직을 맡고 있던 최용재 회장은 지난 22일 회장으로 추대되자마자 한국소아의료붕괴 비상대책위원회를 출범시켰다.


27일 인터뷰를 하기 위해 방문한 기자에게 최용재 회장은 불쑥 "제 2의 정욱이를 만들지 않도록 하는 게 목표"라며 말 문을 열었다. 


-현장에서 접하는 소아의료 붕괴 상황은 어떤가. 

▶한계 상황에 직면한 대학병원이 아주 많다. 73%가 24시간 소아 응급의료를 못 본다. 소아 중환자를 받아 대학병원으로 넘기면 인공호흡기를 달고 케어를 받아야 하는데, 숨이 쌕쌕거리는 아이를 중환자라고 대학병원에 보내도 계속 돌아온다. 배후 진료도 안 되는 상황이니 어쩔 수 없는 거다.

큰병원만의 문제가 아니다. 의원급인 1차 의료기관에선 더 이상 못하겠다며 폐과를 하고 있다. 우리 같은 병원급 의료기관은 원장들이 큰 부채를 짊어지고 일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개인병원처럼 쉽게 접고 떠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정부가 의사를 늘리고 한다지만 무슨 짓을 해도 모든 과정을 거친 전문의는 11년 후에나 나온다. 이 11년 동안 자원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를 풀어야 한다.


-무엇부터 해결해야 할까.

▶환자를 초기에 치료하면 위증증으로 가는 걸 다 막을 수 있다. 필수 의료 소비를 정당하고 합리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뜻이다. 

일단 응급실을 위중증 환자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 한국은 경증 환자를 보느라 응급실이 재기능을 못하고 있다. 우리가 환자를 보내도 응급실이 받질 못하니 사망하는 거다. 

정부는 캠페인을 하겠다고 하는데, 제도적으로도 응급실로 경증 환자들이 오지 못하게 재무적인 걸림돌을 만들어야 한다. 미국처럼 경증 환자가 응급실에 가게 되면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진료비를 내야 한는 등 '선진적인 금융 치료'가 필요하다. 

또 지역 완결형 의료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중앙에 있는 서울에 있는 병원들에 의료 자원과 환자 공급이 집중되면 지방에 있는 의료 인프라는 수요가 없어 다 죽는다. 의료 인프라가 말살되면 그곳에선 애 키우기가 더 힘들 것이고, 수요는 더 줄어들게 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큰 병원뿐만 아니라 1차 의료기관인 동네 의원들이 문을 닫는 원인이 무엇인가. 

▶수가가 너무 낮다. 또 우리나라 법 체계가 의사의 과실이 없어도 결과가 안 좋으면 배상하라는 주의다. 

아이는 혈관이 잘 보이지 않아서 주삿바늘을 감으로 찔러 맞춰야 한다. 쉬운 기술이 아니다. 아이 팔도 잡아줘야 하고 해서 2~3명이 달라붙어 주사를 놓는데 수가가 1500원, 1700원 이렇다. 

그런데 아기들은 또 가만히 있지 못하다 보니 팔을 흔들면 약이 새서 피부가 까맣게 되거나 염증이 생기는 경우가 흔하다. 그런데 이걸로 소송을 건다. 1500원 받고 수백 만원의 소송을 당한다. 돈뿐만 아니라 시간도 뺏기고 마음의 상처도 크다. 누가 하겠느냐는 말이다.

 


-그래서 올해 정부가 대책을 좀 내놨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들 중 야간이나 휴일에도 진료가 가능한 달빛어린이병원을 40곳에서 100곳으로 늘리고, 병원당 2억원을 지원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휴일, 야간 진료수가도 2배로 올린단다. 

근데 여기 문제가 있다. 병원급과 의원급의 지원을 달리하지 않았다. 의사를 포함한 의료인력 2~3명으로 운영이 가능한 동네 의원과 의사, 방사선사, 임상병리사, 수액 놓는 사람 등 최소 5명에서 많게는 8명이 필요한 병원급의 지원이 똑같다는 거다.

물론 1차 의료기관에는 아주 좋은 대책이라고 생각한다. 1만원이던 진료비가 3만원이 되면 의원급은 좋겠지만 그 이상 병원은 여전히 돈이 안 된다는 거다. 디테일이 너무 떨어지는 대책이다.



-소아청소년과 전임의, 전공의에게 100만원씩 수련 보조수당도 주겠다고 했다.

▶추가 수당 지급은 크게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그 수당 받겠다고 전공의 지원이 늘어날 것 같지 않다. 의사 개인에게 의업은 생업이다. 삶의 질, 미래 여건이 제일 큰 고려 사항이다. 

과거에도 전공의 수입이 변변찮았지만 필수의료과 전공의 지원은 미어터졌다. 미래 보장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또 이렇게 수련 보조수당을 올리게 되면 전공의, 전임의와 초임교수의 임금 역전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전공의, 전임의보다 더 중요한 의학적 결정을 내리면서도 더 적은 재정적 대우를 받는다면 교수직을 내려놓고 싶지 않겠나.


-26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소아필수의료 지원 대책으로 연 300억원을 지원하는 안을 의결했다. 

▶2021년 기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등록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6000명을 대입해 계산해 보면 소아청소년과 전문 인력 인프라 유지를 위한 정책가산으로 의사가 매달 더 받을 수 있는 돈은 월 41만7000원이다.

정부가 월 41만7000원으로 붕괴된 소아 의료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이 참담하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소중하고, 계속 태어나야 하며, 잘 길러져야 한다. 그 아이를 키우는 일은 우리 세대의 책임이자 기쁨이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뉴스포커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