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에 못이겨…" 50년 한 푼 납북어부 신평옥씨 법정 오열

검사 "검찰 일원으로 피고인에게 깊이 사과"…신씨에 머리 숙여

법원 "위법 수집된 증거 법적 증거능력 없어" 무죄 선고


"북한 경비정에 의해 납북됐던 그 때에도, 빨갱이라 손가락질 받고 살았던 지난 세월에도, 이 법정에 서 있는 지금 이순간에도 저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 신평옥입니다."

1971년 북한 경비정에 납치됐다가 귀환한 뒤 우리 수사기관으로부터 간첩으로 몰려 불법 구금됐던 납북귀환어부 신평옥씨(84).

7일 열린 재심 선고공판에서 광주고법 제1형사부(재판장 박혜선)으로부터 50년 만에 무죄를 인정 받은 신씨가 최종 진술에서 한 말이다.

북한에 납치된 지 1년 만에 대한민국으로 돌아온 그는 수사기관의 각종 고문에 못이겨 허위 자백을 했고, 반공법 위반, 수산업법 위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신씨는 1972년 11월 탈출로 인한 반공법 위반과 수산업법 위반에 대한 유죄 선고를, 국가보안법 위반에 대해서는 무죄 선고를 받았다.

2심은 신씨와 검사의 항소를 모두 기각했으나 대법원은 1973년 9월 검사의 상고를 받아들여 원심을 파기, 광주고법으로 환송했다.

다시 사건을 넘겨받은 광주고법은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6개월에 자격정지 3년 등을 선고했다.

재심 결심공판에 선 그는 최종 진술에서 꾹꾹 눌러쓴 글을 읽어 내려갔다.

신씨는 "저는 어떤 의도도 없었고 순전히 노부모님과 처자식을 먹여살리기 위해, 가장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돈을 벌고자 하는 목적 밖에는 없었다"며 "고문에 못이겨 살기 위해 했던 거짓 자백들이 저를, 우리 가족들을 빨갱이로 손가락질 받고 살게 했다"고 말했다.

신씨는 "경찰들의 회유와 감시 속에 고향사람들 마저 저와 가족들을 감시하는 그런 세상을 살아왔다"며 "징역을 살고 온 뒤 고용해줄 선주도 없었고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몸은 허약해져서 고향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해본 일이 없었다"고 소회했다.

이어 그는 "몸이 아픈 절 대신해 저보다 더 많은 일을 해야 했던 집사람의 손을 봐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신씨는 "저로 인해 시작된 우리 집의 비극은 저 뿐만 아니라 저의 아내와 자식들까지 힘들게 했다"며 "못난 남편을 만나 지금까지 고생만 한 우리 집사람, 가난한 형편에 가르치지도 잘 먹이지고, 잘 입히지도 못햇지만 바르게 커준 자식들이 그저 고맙기만 하다"고 말했다.

그는 "저는 평생을 가슴한 곳에 이 일을 묻어두고 있었다. 이 억울함을 제대로 풀지 못하고 죽었으면 자식들에게 빚을 지어주는 것 같아 마음 편히 눈을 감지 못했을 것"이라며 "부디 이 늙은이의 억울함을 알아줘 얼마 남지 않은 삶을 편하게 마감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진술했다.

북한에 납치됐다가 생환했지만 우리 수사기관의 고문에 허위 자백을 해 반공법 위반 혐의를 확정 받았던 신평옥씨가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7일 광주고법 법정 앞에서 소감을 말하고 있다. 2023.9.7/뉴스1 최성국
북한에 납치됐다가 생환했지만 우리 수사기관의 고문에 허위 자백을 해 반공법 위반 혐의를 확정 받았던 신평옥씨가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7일 광주고법 법정 앞에서 소감을 말하고 있다. 2023.9.7/뉴스1 최성국


검사는 "피고인을 비롯한 선원들은 수사와 재판 후에도 낙인 효과로, 본인을 비롯한 가족까지 정상적인 사회 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고통을 입었다. 피고인은 수사와 재판을 받는 동안 기본권을 보장받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검사는 "과거 50여년 전 검찰이 이 사건과 관련해 적법절차 준수와 기본권 보장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해 현재 검찰의 일원으로서 피고인에게 깊이 사과드린다"며 신씨에게 고개를 숙였다.

재판부는 "피고인에 대한 앞선 재판과 수사는 적법한 절차 없이 수집된 증거로 증거 능력이 없다"며 "피고인들이 구속영장에 의해 구속되거나 석방된 이후 이뤄진 진술 역시 증거능력이 되지 않는다. 피고인은 무죄"라고 말했다.

이날 한꺼번에 이뤄진 검사의 무죄 구형과 재판부의 무죄 선고를 들은 신씨와 그의 아내, 가족들은 법정에서 눈물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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