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신 아니었다"던 정유정, 범행 자백 어떻게 이끌어냈나

부산지검 수사팀 '과학수사' 성과…부인했지만 증거 내밀자 '자백'

평범한 첫인상, 조사 시작하자 돌변…범행동기 '내적 분노 폭발'

 


"제정신이 아니었다." "시켜서 그랬어요."


석 달 전 과외 앱으로 알게 된 여성을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를 받는 만 23세 정유정이 검찰 조사를 전후해 한 말이다. '심신미약'을 주장하며 감형을 노린 다분히 의도된 발언이다. 심지어 검찰 수사 과정에서 범행 현장에 있지도 않았던 여성이 보인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문제는 목격자가 없다 보니 정유정의 이같은 주장을 뒤집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특히 흉악범들은 폭력 전력이 있거나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는 행동을 보이는 전조 증상이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정유정은 사건 전까지는 경찰조사를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었고 주변 사람을 괴롭혔단 기록도 없다. 


하지만 지난달 열린 1차 공판준비기일에서 정유정 측 변호인은 검찰의 공소사실에 대해 "세부적으로 다른 부분은 있지만 전체적으로 잘못은 인정한다"고 밝혔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뉴스1>은 최근 사건을 담당한 부산지검 형사3부 전담팀과 서면인터뷰를 통해 수사과정을 들어봤다. 팀장을 맡은 송영인 부장검사(사법연수원 35기)는 낙동강 백골 어린이 살해, 20대 친부모 영아 살해, 부산 양정동 모녀 살해 사건 등을 해결한 베테랑 검사다.


◇첫인상 평범한 20대 여성…조사 시작하자 '돌변'


정유정의 범행은 자칫 미궁으로 빠질 가능성이 다분했다. 당시 택시기사가 여성이 새벽 시간대 혼자 캐리어를 끌고 풀숲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수상히 여겨 신고한 덕분에 긴급체포가 이뤄졌다.


정유정 사건을 경찰로부터 넘겨받은 부산지검 형사3부는 곧바로 전담수사팀을 꾸렸다. 영도 등굣길 초등학생 사망 사건을 맡았던 박인우 부부장검사(37기)가 수사팀의 중추 역할을 맡았다. 박 부부장검사는 정유정 사건으로 대검찰청이 선정한 '2023년 상반기 형사부 우수검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최수은 검사(38기), 김진호 검사(변시 6회), 진주환 검사(11회) 등 형사3부 소속 검사 모두가 수사팀에 소속돼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데 매달렸다.


수사팀은 "정유정 얼굴을 처음 마주했을 때 특별한 느낌을 받지 못했다"며 "조사를 시작하기 전 정유정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눌 땐 여느 20대 여성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가자 수사팀의 생각은 바뀌었다. 처음 받았던 인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정유정은 수시로 진술을 바꾸는가 하면 증거를 제시해야만 죄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진정성 없이 "반성한다"는 말만 형식적으로 되풀이했다.


특히 수사팀은 "자기 처지에는 굉장히 슬퍼하면서 피해자에게는 미안한 감정을 느끼지 않아 보였다"고 설명했다. 피해자를 언급할 때 미안한 감정이나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지만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는 모습은 많이 보였다.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할 때는 굉장히 슬퍼하고 눈물까지 보이면서 감정을 드러냈다.


 

◇"도대체 왜" 범행 동기부터 미궁…"성장과정서 쌓인 내적분노" 결론


조사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범행동기를 찾아내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정유정에겐 그 어떤 전조증상도 발견되지 않았고 피해자와 연결고리도 없었기 때문이다.  


정유정은 과외 앱을 통해 중학교 3학년 딸의 영어 강사를 구한다며 혼자 사는 피해자에게 접근했다. 범행 당일에는 집에서 흉기를 챙겨 중고로 산 교복을 입고 피해자 집을 찾아갔다. 살해 뒤에는 자택으로 돌아가 여행용 가방을 가져왔고 시신을 담아 한 공원 풀숲에 유기했다.


수사팀은 "목격자가 없는 상황에서 정유정이 '우발적 범행'을 주장하며 거짓 진술을 이어 나가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과정에 어려움이 있었다"며 "20대 초반의 전과가 없는 여성이 왜 일면식도 없는 피해자에게 흉악한 범행을 하게 됐는지, 즉 범행 동기가 가장 풀기 어려운 부분이었다"고 토로했다.


범죄심리학 전문가는 범행동기가 시기나 열등감에 의한 분노 표출이라고 봤다. 성장 과정에서 쌓인 내적 분노와 사이코패스적 성향이 표출된 범죄로 판단됐다.


검찰 조사 결과 정유정은 함께 살던 할아버지와 갈등을 빚다가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조사됐다. 범행 전에는 부친과 2시간 정도 통화하며 자신의 불우한 가정환경에 사과를 요구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대답은 '너도 잘못한 점이 있다'는 것이었다. 정유정이 살인을 하기로 결심하게 된 순간이었다. 


수사팀은 "정유정이 가족에게 어릴 적 힘들었던 점을 토로하면서 큰 사고를 칠 것처럼 말한 사실은 정유정이 범행을 예고한 단서 중 하나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사건 직후 정유정이 피해자의 신분을 뺏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을 것이란 추측도 제기됐다. 하지만 수사팀 수사결과 신분 탈취 범행으로 볼 만한 증거나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범행 부인했지만 '증거' 내밀자 시인…우발적 살인 아닌 계획적 범행


정유정은 피해자에게 사건 발생의 책임을 전가했다. 하지만 검찰은 범행 대상을 물색하고 흉기를 미리 준비해 간 계획적인 범행이었다는 자백을 결국 끌어냈다.


경찰은 정유정 진술에 중점을 두고 범행 동기, 범행 준비 과정, 범행 방법 등을 파악하는 데 주력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경찰 수사결과에 더해 휴대전화·노트북 분석, 통합심리분석, 전문가 감정 등 과학수사 기법을 적극 활용했다.


수사팀도 범행 전모를 밝히는데 '과학수사'가 가장 중요했다고 강조했다. 수사팀은 "정유정 진술에 의존하기보다는 범행 현장에서 수집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물적 증거를 과학수사 기법을 최대한 활용해 수집한 것이 주효했다"고 밝혔다.


수사팀은 부검감정과 DNA 감정 결과 등을 통해 범행 당시 상황을 재현했다. 과외앱 이용 자료, 현장 폐쇄회로(CC)TV, 교통카드, 신용카드 그리고 통신사용 내역 등을 토대로 정유정의 범행 전후 동선을 낱낱이 분석했다.


검찰은 수사 초기부터 정유정이 심신미약을 통한 감형을 노릴 것으로 의심했다. 수사팀은 "검찰 수사에서는 다른 사람이 시켜서 범행했다거나 범행 현장에 실제로는 없었던 여성이 눈에 보인다는 비정상적인 진술을 했다"며 "심신미약을 노린 진술로 보이는데 법원에서 쉽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은둔형 외톨이 범죄 아냐…이번주 2번째 재판


이번 사건을 두고 '은둔형 외톨이' 범죄라는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수사팀은 은둔범죄로 단정 짓기 어렵다고 결론을 내렸다. 


수사팀은 "정유정이 가족 외에 만나는 사람이 없었을 뿐 보통 사람처럼 일상생활을 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었다"며 "평소 도서관과 독서실을 다니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고 아프면 병원에도 자주 다닌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다행히 정유정의 가족은 수사 과정에서 협조적이었다고 한다. 수사팀은 "가족들이 '생각지도 못한 행동'이라며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드러냈고 피해자 측에는 미안하다는 태도도 보였다"고 말했다.


현재 정유정은 살인, 사체손괴, 사체유기, 절도 혐의로 기소돼 재판받고 있다. 지난달 14일 첫 공판준비기일이 열렸고 정유정 측은 전체적으로 잘못을 인정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오는 28일 오전 11시에는 부산지법에서 정유정의 2차 공판준비기일이 열릴 예정이다. 그간 정유정은 재판부에 6차례 반성문을 냈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최소한 무기징역 이상을 구형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이에 대해 수사팀은 "정유정이 저지른 죄에 상응하는 형벌이 선고되도록 공소유지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억울하게 살해당한 피해자가 영면에 들기를 바란다"며 "사건의 전모를 밝혀낸 것이 소중한 피해자를 잃은 유족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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