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하이밍 논란에 "국정농단한 위안스카이 떠올려" 직격
대통령실 "적절 조치" 압박에도…중국, 사실상 거부

한중관계가 블랙홀 속으로 빨려드는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이 한국에 대한 내정간섭 논란을 일으킨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에 대한 불쾌감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가운데, 중국 정부가 싱 대사에 대한 한국 정부의 '조치' 요구를 사실상 거부하면서 한중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14일 대통령실과 정부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전날(13일) 비공개 국무회의에서 싱하이밍 대사에 대해 "(조선) 국정을 농단한 (청나라) 위안스카이를 떠올린다는 사람들이 많다"다며 "부적절한 처신으로 국민들이 아주 불쾌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싱 대사를 1880년대 구한말 조선에 주재하며 오만불손하게 행동해 원성을 샀던 위안스카이에 빗댄 셈으로, 싱 대사가 지난 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초청 만찬에서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는 이들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한다"고 발언한 것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이어 "한중관계는 늘 양국이 상호존중과 우호증진, 공동이익의 추구라는 대원칙으로 해오고 있었다"면서 "(싱 대사는) 도저히 상호존중이나 우호증진의 의지가 있는 것인지(의심스럽다)"고 말했다고 복수의 국무회의 참석자들이 전했다.

윤 대통령까지 노골적인 불쾌감을 드러내자, 한국 정부는 싱 대사의 발언에 대해 중국 정부에 '적절한 조치'를 압박하고 나섰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전날 기자들과 만나 외교관이 주재국 내정에 개입해서는 안 될 의무를 명시한 빈 협약 41조를 들어 싱 대사를 비판하면서 "중국이 이 문제를 숙고해보고 우리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적절한 조치'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함구했지만, 주한 중국대사의 교체 및 징계, 또는 싱 대사의 발언에 대한 중국 정부의 유감 표명을 요구했을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중국 정부든 싱 대사 본인이든 말이나 행동이 어떻게 되는지를 지켜보겠다는 이야기"라고 했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적절한 조치'를 사실상 거부하면서, 한중관계의 냉랭한 신경전을 장기화할 것으로 보인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전날 정례 브리핑에서 한국 정부가 싱 대사에 대해 중국 측의 '적절한 조치'를 요구한 데 대해 즉답을 피했다.

대신 왕 대변인은 "한국 측의 관련 입장 표명(싱 대사에 대한 조치 요구)과 함께 일부 한국 언론이 싱 대사 개인을 겨냥해 사실에 맞지 않는, 심지어 인신공격성 보도를 한 점에 주목한다"며 "이에 대해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의 면담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2023.5.19/뉴스1 © News1 김명섭 기자

이에 여권을 중심으로 싱 대사를 '외교적 기피 인물'(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지정하고 추방해야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철규 국민의힘 사무총장은 전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싱 대사가 외교관으로서 책임과 역할을 망각하고 계속 오만하게 행동한다면 앞으로 외교적 기피 인물로 지정까지 검토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외교부에서는 싱 대사를 외교적 기피 인물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지만, 싱 대사의 발언으로 한중관계 악화가 지속될 경우, 연내 개최를 추진 중인 한중일 정상회의의 무산으로 이어지는 '나비효과'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외교가 일각에서 제기된다.

다만 대통령실은 국장급에 불과한 중국대사의 발언이 한중관계를 흔들거나, 정상 간 공동이익에 따라 개최되는 한중일 정상회의에 변수가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조태용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김포국제공항 출국길에서 기자들과 "한중관계에 대해서는 상호존중과 공동이익을 두 가지 핵심 키워드를 중심에 놓고 한중 간 관계를 발전시키자, 또 건강하게 발전시키자는 것이 윤석열 정부의 변함없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조 실장은 한중일 정상회의에 대해 "한국이 의장국을 맡을 차례로, 중국과 일본에 한중일 정상회의를 하자는 의향을 전달하고 외교 채널 간 협의를 하고 있다"며 "대한민국으로서는 한중 간에도 건강한 관계 발전을 희망하고, 한중일 간의 협의체도 잘 발전하겠다는 중심 잡힌, 의연한 입장을 갖고 있다"고 했다.

이어 "한중일 정상회의는 정상 차원에서 한중일이 필요해서 만든 것"이라며 "(한중일) 공동의 이익이 되기 때문에 중국과 일본이 우리의 요청에 호응해서, 부응해서 올해 중에 열릴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조 실장은 싱 대사의 질문이 반복되자 "하" 한숨을 쉬었다가 "제가 싱하이밍 대사라는 말을 하고 싶지가 않다. 왜냐하면 저는 안보실장"이라고 했다. 국장급인 중국대사의 논란에 대해 우리나라의 외교·안보정책을 총괄하는 국가안보실장이 일일이 대응하는 것은 격에 맞지 않다는 취지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