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고뇌의 산물'?… 강제동원 문제에 사과 대신 개인적 유감 표명

한일정상 공동회견서 "힘들고 슬픈 경험 가슴 아프게 생각"

양국 여론 감안해 '절충점' 찾은 듯… 전문가 평가는 엇갈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한일 간 최대 갈등현안으로 꼽혀온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와 관련해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의 한일정상회담 뒤 공동 회견을 통해서다.

기시다 총리는 이날 회견에서 "윤 대통령의 결단으로 3월6일 발표된 조치(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에 관한 한국 정부에 의한 노력이 진행되는 가운데 많은 분들이 과거의 아픈 기억을 되새기면서도 미래를 위해 마음을 열어준 데 대해 감명 받았다"며 "나도 당시 혹독한 환경 속에서 일하게 된 많은 분들이 힘들고 슬픈 경험을 한 데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는 이어 "한일 양국 간엔 수많은 역사와 경우가 있지만, 어려운 시기를 극복해온 선인들의 노력을 이어받아 미래를 위해 윤 대통령을 비롯한 한국 측과 협력해가는 게 일본 총리로서 내 책무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기시다 총리의 이 같은 발언은 일단 표현만 놓고 봤을 땐 지난 3월 우리 정부의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 발표 이후 국내 다수 여론이 요구해온 '일본 측의 보다 분명한 사과 입장 표명'엔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기시다 총리가 이번 방한 및 한일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 간 과거사 문제에 대한 기존 일본 정부 입장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신의 언어로 '유감'의 뜻을 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와 관련 기시다 총리는 이날 회견에서 해당 발언이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것으로 이해해도 되느냐'는 물음에 "그 당시 힘든 경험을 한 분들에 대해 나 자신의 심정을 솔직하게 말씀드린 것"이라고 답했다.

기시다 총리는 또 지난 3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윤 대통령과의 회담 당시 "1998년 10월 한일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小淵) 선언)을 포함해 역대 일본 내각의 역사인식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고 밝힌 사실을 들어 "일본 정부의 이런 입장은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엔 과거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 지배한 데 대한 "통절한 반성과 마음에서의 사죄"가 명문화돼 있다.

한일정상 확대 회담. (대통령실 제공) 2023.5.7/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이 때문에 그간 외교가에선 기시다 총리의 이번 방한을 앞두고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에 대한 명시적 사과가 어렵다면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해당 문구를 육성으로 언급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다.

실제 한일 간엔 이 문제를 두고 직·간접적인 의견 교환이 이뤄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즉, 기시다 총리의 이날 "가슴이 아프다" 발언은 "강제동원 피해배상 해법 발표 이후에도 일본 측의 '성의 있는 호응'이 부족하다"는 한국 내 여론과 "더 이상의 사과는 안 된다"는 일본 집권 자민당 내 요구 사이에서 나름 '절충점'을 찾은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도 기시다 총리의 이날 발언은 "강제동원 관련 법적 책임을 피하고자 하는 기존 일본 측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피해자들의 아픔을 최대한 공감한다'고 밝힌 것이란 점에서 전보다 다소 진전됐다"며 "박진 외교부 장관이 얘기했던 '물컵의 절반'을 일본 측이 채우려고 노력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기시다 총리가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언급하며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얘기한 데 대해서도 "기존 (일본 정부) 입장을 답습하면서도 좀 더 구체화된 표현"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기시다 총리 개인적으로는 (피해자들에게) '위로를 더 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냉정히 보면 '사죄와 반성'이 한마디도 안 나왔다"며 "(기시다 총리가) 사견임을 전제로 얘기했단 점에서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 표명은 사실상 거부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윤 대통령인 이날 기시다 총리와의 확대 정상회담 및 공동 회견에서 "(한일) 양국이 과거사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으면 미래 협력을 위해 한 발자국도 내딛을 수 없다는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난 과거사에 대한 인식 문제는 진정성을 갖고 하는 게 중요하지 어느 일방이 상대에게 요구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이날 회담에서 오는 19~21일 일본 히로시마(廣島)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히로시마 평화 기념 공원 내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함께 참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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