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 변동성'에도 병약한 원화…한국 펀더멘털 경고음

VIX 연저점 지속 경신…환율은 올 들어 상승세 뚜렷

"이젠 연준 탓 못해…무역적자 영향이 절반" 분석도


최근 글로벌 변동성이 잠잠해진 가운데 원·달러 환율만은 다른 통화 대비 커다란 오름세를 보이고 있어 우리 경제의 체력 저하를 방증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2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1일 원·달러 환율은 1328.5원으로 장을 마쳤다. 종가 기준 연고점을 다시 쓴 것으로, 지난해 11월28일(1340.2원) 이후 약 5개월 만에 최고치다.

이목이 집중되는 부분은 최근 글로벌 시장 내 변동성이 크게 낮아진 상태라는 점이다.

시카고옵션거래소(CBOE)가 집계하는 변동성지수(VIX)는 나날이 낮아져 지난주 16선 수준으로 수일째 연저점을 다시 썼다.

특히 지난 19일에는 16.46을 나타냈다. 지난해 1월 초 S&P 500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진 것이다.

VIX는 S&P 500 지수의 향후 30일간 변동성 기대를 나타내는 지표로서 높을수록 투자자들의 불안 심리가 강해졌음을 의미한다. 반대로 낮을수록 변동성 없는 안정된 시장 환경을 반영하는데 보통 20~30 정도의 범위에서 움직인다.

VIX 16선 수준은 매우 안정된 시장 환경을 가리킨다.

보통 투자자들의 심리가 안정되면 위험 선호가 회복되고 이에 환율은 내리는 경향(원화 강세)이 관찰된다.

하지만 VIX와 환율 그래프를 대조해 보면 마치 악어 입 같다. 지난달 말부터 서로 벌어지는 모양새를 보인다.

최근 3개월 VIX와 원·달러 환율 추이 (보라색이 환율)


실제로 최근 원화 가치 하락은 다른 통화 대비 가파른 것으로 나타났다.

한은 국제국 국제금융연구팀 유은혜 조사역이 34개국 통화의 환율을 비교한 결과, 지난 2월 원화 절하율은 7.4%로 선진국과 신흥국을 통틀어 전 세계 주요 34개 통화 중 1위였다.

지난 3월 말 기준 달러화 대비 가치를 봐도 유로화는 지난해 말보다 2.3% 절상됐으며 파운드화 역시 2.8% 절상된 것으로 분석된다. 엔화는 연말 대비 절하됐지만 절하율이 0.001% 수준으로 미미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원화 가치는 올 들어 5.2% 하락(지난 19일 종가 기준)하면서 주요국 통화 중 가장 큰 폭의 하락 폭을 기록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무엇보다 주목되는 현상은 달러화의 차별화 현상"이라며 "연초 이후 달러화 가치는 1.5% 하락하고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가 불거진 3월 초 이후로는 2.4% 하락했음에도 원화 가치가 하락했다. 원화와 달러 간의 차별화, 즉 비동조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은 제공)


약달러 속 환율 상승은 결국 한국의 펀더멘털 문제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

안재균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이제는 강달러 아닌 상태에서 원화 가치 하락이기에 진짜 연방준비제도(연준·Fed) 탓을 할 수가 없다"며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 하락이라든지 이런 부분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구체적으로는 무역수지 악화 영향이 환율 변화의 40%를 차지한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유은혜 조사역은 "최근 이례적인 환율 변화율의 상당 부분이 '무역수지 충격'에 의해 설명되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최근 무역수지가 악화된 태국, 남아공, 아르헨티나 등의 통화가치도 우리 원화와 비슷하게 크게 낮아졌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박상현 연구원도 "최근 원화 약세에는 무역수지 적자 기조 등 국내 요인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무역수지 적자 폭이 예상보다 확대되면서 경상수지마저 적자 전환한 것이 일단 원화 약세 압력을 높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상수지 적자와 함께 재정수지마저 적자를 기록하는 '쌍둥이 적자' 리스크 또한 원화 가치에 부담을 미치고 있다. 국내 경기 하방 압력에 따른 한미 기준금리 역전 폭 확대 우려 역시 원화 가치 하락을 부르는 요인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뉴스1


외환 당국은 최근 환율 상승이 특별한 위기 상황은 아니라면서 큰 걱정을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0일 미국 출장길에 환율 오름세와 관련해 "국가 대외 신인도를 체크해보면 문제가 없다"며 "수출기업 측면에서는 환율이 다소 높은 게 좋고, 1300원 초반에서는 국내적 위기라는 시각이 이제 드물기에 정상 범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지난 13일 미국 출장 중 언론과 인터뷰에서 "환율을 크게 걱정하고 있지 않다"며 "우리가 더 걱정하는 것은 산유국 감산에 따른 유가 경로나 미국의 통화정책이 향후 어떻게 될 것인지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외환 당국은 환율 안정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주 장 막판에는 당국 개입으로 추정되는 달러 매도 물량과 차익성 매물이 쏟아졌다.

전문가들은 향후 무역수지 개선에 따라 2분기 말에서 3분기 초 원화 강세 전환을 기대 중이다.

다만 무역수지 등 국내 경기 회복 시그널이 지연될 경우 추가 약세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박상현 연구원은 "2분기 중국 생산·투자 정상화에 힘입어 2분기 말 혹은 3분기 초에 대중 수출 회복을 통해 국내 수출 경기 회복 시그널이 가시화된다면 원화 가치는 강세 추이를 보일 것"이라며 "반면 예상보다 약한 중국 경기 회복세와 더불어 각종 지정학적 리스크가 증폭된다면 원화 가치의 추가 약세 가능성도 잠재해 있다"고 평가했다.

김찬희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환율은 2분기 중 달러화 지수와 차별화됐던 부분이 정상화되면서 1300원 내외 등락 흐름을 이어가겠고 하반기 달러와 동조화돼 하락할 전망"이라며 "3분기 중국 경제 회복 본격화와 맞물려 무역수지 개선 등이 기대되는 점도 원화 강세를 뒷받침한다"고 예상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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