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성공해도 한 달 200만원뿐"…헐값에 넘어가는 저작재산권

웹툰·웹소설 업계, 작가가 불리한 불공정 계약 만연

매절 계약 문제 되니 나타난 20년 계약·공동저작권


창작자와 제작사 사이의 저작권 갈등은 출판 업계를 넘어 디지털 콘텐츠 업계에서도 일어난다. 특히 지식재산권(IP) 확장이 유리한 웹소설과 웹툰 시장에서는 '헐값'에 작가의 저작재산권이 양도되는 불공정 계약이 이뤄지고 있다.

웹소설 작가 A씨(33)는 1년 전 한 제작사와 작품 계약을 맺었다. 매주 7회 분량을 공급하는 대신 그가 받는 원고료는 한 달 200만원 수준. 계약서에는 유료 결제로 발생한 추가 수익을 작가가 가져갈 수 없다는 조건이 붙었다. 또한 작품에 대한 2차 사업권을 모두 제작사에 양도하는 내용까지 담겨 사실상 '매절' 계약에 가까웠다.

A씨는 해당 계약이 자신에게 불리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눈앞에 닥친 생활고를 피하는 게 더 급했다. 다른 제작사를 찾아볼 여유도 없었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을 맺었지만 제작사는 "다른 작가와 비교했을 때 돈을 많이 받는 수준"이라며 A씨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했다. A씨는 "내가 선택한 계약이지만 정당한 보상을 해주지 않는 불공정 계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웹툰작가로 활동했던 B씨(40)도 자신이 그린 작품의 2차 사업권을 플랫폼에 모두 빼앗긴 적이 있다. 캐릭터, 영상화, 번역 등 원작 기반의 사업권을 회사가 모두 갖는 불공정 계약이었다. 당시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 명령으로 권리를 되찾을 수 있었지만 1년 동안 싸우느라 지친 그는 결국 웹툰계를 떠났다.

이후 작품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출판사 문을 두드렸지만 회사가 내민 계약서에는 그가 플랫폼과 싸워서 되찾은 것들이 요구사항에 똑같이 담겨 있었다. 저작재산권을 모두 양도하는 이른바 '매절' 계약서였다. 자기 작품을 세상에 내놓으려면 모든 권리를 포기해야만 하는 현실에 B씨는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웹툰 작가가 경험한 계약 관련 불공정 행위 실태조사 결과(한국콘텐츠진흥원 '2022 웹툰산업 불공정 계약 실태조사 보고서 갈무리)


◇ 플랫폼·제작사 유리한 일방적 계약…"내 자식 뺏기는 기분"

작가들은 이처럼 자신의 저작재산권을 헐값에 제작사로 양도하는 불공정 계약이 비일비재하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협상력이 부족한 신인 작가들은 자신이 불합리한 대우를 받는다는 사실도 모른 채 계약을 맺는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웹툰산업 불공정 계약 실태조사'에 따르면 '2차적 저작권, 해외 판권 등 제작사 및 플랫폼에 유리한 일방적 계약'을 맺었다고 응답한 웹툰작가가 40.8%에 달했다.

구체적으로 △해외 배급유통권 독점 계약 강요(29.1%, 이하 복수 응답) △2차적 저작물 계약 시 작가 배분율 미설정(26.6%) △2차적 저작물 제작 시 매절 계약 강요(19.7%) 등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기업들이 부가가치가 높은 2차 사업을 독점하기 위해 불공정 계약을 강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A씨는 설문조사 결과와 비슷한 경험을 현재도 겪고 있다. 그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웹툰이 제작 중이지만 저작권 양도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논의에 참여할 수 없는 것. 원고료 200만원에 가치를 가늠할 수 없는 저작재산권까지 모두 포함된 것에 대해 A씨는 "내 자식 같은 작품이지만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것에 대해) 허탈함을 크게 느낀다"고 한숨을 쉬었다.

플랫폼에 2차 사업권을 빼앗겼던 B씨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작품은 '히트작'은 아니었으나 출판 등을 통해 부수적인 수입을 올릴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사업권을 가진 플랫폼은 B씨에게 어떠한 2차 사업도 추진하지 못하게 했다. B씨뿐만 아니라 대부분 작가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떤 작품이 '대박'을 칠지 모르니 일단 계약으로 묶어두는 식이었다.

현재 웹툰계를 떠난 그는 "2차 사업은 인기가 있어야 진행하기 때문에 돈 되는 작품만 따로 계약을 맺으면 되는데 관행이라는 이유로 모든 작품의 권리를 묶어버린다"며 "사업권을 되찾은 후에 웹툰 작품의 판권을 팔아 책으로 냈더니 오히려 더 잘 팔리더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같은 문제를 막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는 표준계약서를 통해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은 별도의 계약을 맺도록 권고하고 있다. 최초 계약 시 헐값에 2차 사업권을 넘기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강제사항이 아니다 보니 현장에서는 실효성이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불과 11.9%의 웹툰작가만 '표준계약서 양식을 그대로 사용한다'고 응답했다. 결국 현장에서는 업체가 마련한 자체 계약서 한 장으로 모든 권리가 양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웹툰 작가로 활동했던 B씨의 작업실 모습. B씨는 불공정 계약으로 플랫폼과 분쟁을 겪은 뒤, 웹툰 업계를 떠나 출판물 작업만 하고 있다.


◇ 매절 계약 문제 되니 등장한 '장기계약', '공동저작권'

최근에는 플랫폼 및 제작사들이 수십 년짜리 계약서를 제시하기도 한다. 장기계약을 통해 작품의 사업권을 확보하고 유통과 판매를 독점하는 형태다.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의 경우 작가에게 남겨두지만 '우선 협상권', '제3자에 유리한 조건 제시 금지' 등 독점적인 지위는 여전히 회사가 갖는다.

플랫폼 업체와 장기 계약을 맺은 한 작가는 "매절 계약에 대한 비판이 커지다 보니 플랫폼이나 제작사들이 20년짜리 계약서를 만들었다"며 "작가들끼리 모이면 꼭 20년 뒤에도 살아서 (권리를) 돌려받자고 이야기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20년이 넘어도 작품의 상품 가치가 남아있는 경우는 매우 극소수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수익은 제작사에 돌아간 뒤다.

문제는 이러한 계약이 업계 표준으로 자리 잡을 경우 신인 작가들의 처우 개선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B씨는 "경력 작가의 경우에는 회당 원고료가 높으면 장기 계약에 동의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하지만 신인 작가들은 일반 원고료 수준의 돈을 받고 사업권까지 통째로 넘기고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 인식이 낮은 신인 작가들의 권리가 헐값에 넘어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플랫폼 및 제작사의 '공동저작권' 등록도 문제로 거론된다. 제작사가 창작 활동에 직접 기여하지 않아도 작품의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림작가와 저작권을 나눠 갖는 경우다. 제작사는 이와 같은 방법으로 그림작가를 부품처럼 사용하고 저작권을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다.

작가들은 이처럼 교묘하게 변화하는 불공정 계약에 우려를 표한다. 빠르게 성장하는 웹소설·웹툰 시장과 달리 작가들에게는 관행이라는 핑계로 불공정 계약 문제가 지속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작가들은 관련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가 나서 불공정 계약을 근절할 수 있도록 대책 마련에 시급히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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