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서서 먹던 노량진 컵밥집도 이젠 주말에만 장사"…공시생 급감 '그늘'

박봉에 채용인원까지 줄어…진로 다시 생각하는 공시생들

 

 "이젠 컵밥도 주말 장사만 하는 집들이 생겼어요"


지난 24일 오후 6시30분쯤 방문한 노량진엔 과거의 활기가 사라지고 없었다. 저녁 장사가 한창일 시간대였지만 이날 노점상 23곳 가운데 11곳은 폐업했거나 휴업 중이었다. 이곳에서 수년째 장사를 하고 있다는 상인 A씨는 "평일보다 주말에 외부인이 그나마 좀 놀러와서 장사가 조금 되는 정도"라며 한숨을 쉬었다. 

A씨는 몇해 전만 해도 공시생들이 줄을 서서 컵밥을 사먹는 풍경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고 토로했다. 안정적인 직장으로 인기가 높아 '철밥통'의 상징이었던 공무원에 대한 관심이 예전 같지 않으면서 공시생이 크게 줄어든 영향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행정안전부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2023년 9급 국가공무원 공개경쟁채용시험 원서 접수 인원은 12만1526명으로, 지난해 대비 4만여명 줄었다. 2017년 지원자 수가 22만8368명에 달했던 것을 고려하면 6년 사이 46.8% 줄어들어 반토막이 났다.

◇ "공시생 줄어 장사 어려워"…노량진 상권도 찬바람

공시생 감소 여파는 주변 상권에서 느낄 수 있었다. 코로나19 이후로 대부분의 학생들이 집에서 인터넷 강의(인강)를 듣기 시작하면서 상권이 죽기 시작했다는 게 상인들의 설명이다. 

1983년부터 노량진 골목 한귀퉁이에서 40년간 학원 교재 분철 장사를 해온 70대 김모씨는 "코로나19 시작하면서 다 인강(인터넷 강의)으로 돌리니까 학생들이 학원가를 올 필요가 없어졌다"며 "학생이 코로나 전에 비해 4분의 1밖에 안 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노량진 골목에서 7년째 사주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씨(69·여)도 "몇해 전만 해도 시험 앞두고 가게 앞으로 골목을 못 지나다닐 정도로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며 "그때는 많이 벌면 하루에 40만원도 찍었는데 이제는 어림없다. 오늘 학생 2명이 예약해서 나온 건데 안 와서 허탕만 쳤다"고 고개를 저었다.

경찰 공무원 지원자수도 예전 같지 않다. 실제 상반기 경찰공무원(순경 일반) 응시자 수는 2018년 5만2920명에서 2023년 3만1667명으로, 2만명 넘게 줄었다. 노량진에서 공무원 체력시험학원을 운영 중인 40대 김모씨는 "처음 개원했을 때에 비해 수강생 3분의 2가 줄었다"며 "코로나19 끝나면 좀 회복될 줄 알았는데 큰 차이가 없다”고 토로했다.

노량진 한 골목에서 학용품를 장사를 하는 이모씨도 "학생이 작년 전에 비해 절반 이상 줄었다고 본다"며 "그래도 학생들 보기 힘들 정도는 아니었는데 오히려 코로나19 풀리고도 인강이 적응이 돼서 그런지 학생이 나오질 않는 것 같다. 학용품뿐만 아니라 사무용품도 사가는 사람도 드물다"고 말했다.

18일 오전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 경기고등학교에 마련된 2023년 소방공무원 채용 필기 시험장으로 응시자들이 들어가고 있다. 1,560명 선발에 총 2만 1,575명이 지원해 평균 13.8:1의 경쟁률을 보였으며, 공개·경력경쟁 채용시험 평균 연령은 27세·28세이며 이중 최연소는 17세·18세, 최고령 응시자는 43세로 기록했다고 밝혔다. 2023.3.18/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 학생들, '박봉', '줄어든 채용규모'에 진로 다시 생각

공무원 직종이 외면받은 가장 큰 이유는 최저임금 수준을 조금 웃도는 급여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올해 들어 크게 줄어든 채용 규모를 보고 진로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9급 공무원 초임은 최저시급을 간신히 넘는 수준이다. 올해 9급 공무원 1호봉의 세전 월급은 177만원, 5급은 265만원이다. 여기에 직급보조비 17만5000원, 급식비 14만원, 명절휴가비 17만7080원, 기본 초과근무수당 9만6200원을 더할 경우 월평균 급여는 236만원 정도다.

하지만 이는 세전 기준이고, 매월 소득액의 9%를 공무원 연금 개인 부담분으로도 내야 하기 때문에 실수령액은 더 적다.

8년째 소방공무원에 도전하고 있는 박모씨(28·여)는 "지금 공무원들의 급여 수준으로는 자신의 힘으로 수도권에서 괜찮은 주거 시설에 살기 힘든 시대인데 초과근무 제한이 엄격한 직렬은 특히 더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용고시 준비 2년차에 진로를 바꾸고 지난해 일반기업에 취업한 송모씨(28·여)는 "대기업 취업이나 전문직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일반 공무원보다 급여가 3배는 되는 것 같았다"며 "고생해서 선생님이 돼도 과연 그런 임금 차이를 극복할 수 있을지 확신이 안 들었다"고 토로했다.

올해 지방공무원 채용규모도 1만8819명으로 전년 대비 약 34% 감소하며 6년만에 최소 수준을 기록했다. 문재인 정부 이후인 2018년부터 5년간 2만명대로 늘었다가 올해부터 급감한 수치가 나왔다.

하혜수 경북대 행정학과 교수는 "몇해 전부터 2차에서 아주 근소하게 합격점에 근접해 있는 학생들이 많은 설득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공기업으로 가서 안타깝다"며 "소속 학교 기준으로 10명 중 7명은 행정학과 학생들이 다 공기업으로 들어갔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5년간 지방에 이름이 잘 안 알려진 대학들은 행정학과를 다 없애는 추세"라며 "예전과 달리 학생들이 공무원을 지원하지 않아 공무직 배출이 어려워 행정학과 존재의 이유를 잃었다는 점이 가장 크다"고 말했다.

컵밥집 앞에서 만난 3년차 공시생 B씨는 "공무원 채용인원도 줄고 물가도 많이 올라 시험을 준비하며 생활하는데 힘든 점이 많다"며 "올해까지 시험준비를 해보고 안되면 다른 직업을 고민해 봐야 한다"고 한숨을 쉬었다.

전날 경찰 공개채용에 응시했다는 양모씨(25·여)는 "아무래도 실제로 공고가 떴을 때 채용인원이 줄어든 것을 확인하고 힘이 빠졌다"며 "게다가 과거에는 사기업이 워라밸이 안좋아 비교적 나은 공무원직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요즘은 기업 문화도 좋아지고 워라밸도 상승하면서 공무원 직종 자체에 크게 관심이 떨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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