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發 "은행 과점 깨라"…'영국식 챌린저 은행' 한국판 통할까

尹 "은행 경쟁 촉진 방안 마련" 지시에 금융당국 이달중 TF 가동…英 챌린저뱅크 거론

거대 은행 빈틈 비집고 단기간에 성장…"인뱅 성장세 지켜봐야" 시기상조 목소리

 

금융당국이 국내 5대 은행 중심의 '은행권 과점체제'를 해소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영국의 '챌린저 뱅크' 사례가 유력한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중소 서민 대출·개인사업자대출 등 특정 업무에 특화된 은행으로, 실제 도입 시 5대 은행 중심의 과점 구도에 균열을 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만만찮다. 이미 국내 금융시장엔 은행 간 경쟁 촉진을 위해 설립된 인터넷전문은행이 세 개나 있는 만큼, 이들의 성장세를 지켜보는 게 먼저라는 얘기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이달 중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를 구축하고 은행권 경쟁 촉진·구조개선 방안을 논의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 제13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금융·통신은 민간 부문에서 서비스를 공급하고 있으나 서비스의 공공재적 성격이 강하고, 정부의 특허에 의해 과점 형태가 유지되고 있다"며 경쟁을 촉진할 방안을 수립하라고 금융위원회에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 영국에서 챌린저뱅크 '레볼루트'…설립 6년 만에 4대 은행과 어깨 나란히

금융당국은 취약계층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가 확충될 수 있도록 핀테크 혁신 사업자 등 신규 플레이어가 진입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안을 수립할 예정이다.

당국은 과점체제 완화 방안 중 하나로 영국의 '챌린저 뱅크' 사례를 참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챌린저 뱅크란 은행업 인가를 중소기업금융, 소매금융 등 소비자 중심의 특화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은행을 말한다. 설립 주체는 핀테크 업체다. 영국은 기존 대형 은행의 지배력을 약화시키고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2013년 챌린저 뱅크 제도를 도입했다.

영국 정부의 의도대로 챌린저 뱅크는 틈새시장을 공략하며 급격히 성장했다.우리금융경영연구소 등에 따르면 영국의 대표적인 챌린저뱅크인 레볼루트(Revolut)의 고객수는 출범 초기인 2016년 10만명에서 2021년 1500만명으로 크게 늘었다. 2021년말 기준 기업 가치는 330억달러로 영국 4대 금융그룹인 내셔널웨스트민스터은행(NatWest)의 기업가치인 334억달러에 근접했다.

투자·보험 등 카테고리별로 맞춤형 생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편, 중소기업·소상공인같이 고객군을 세분화해 맞춤형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가격 산정에 있어서도 유연하게 대처했던 점이 급격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배경으로 꼽힌다.

특히 팬데믹 시기를 거치며 '디지털 중심'의 챌린저뱅크가 급격히 성장했다. 자본시장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지난 2018년 기준 94%에 이르던 기존 은행(기존 은행 상위 4개사+대형 챌린저 뱅크)의 개인 계좌 점유율은 2021년 88%로 하락했다. 반면 디지털 챌린저 뱅크는 1%에서 8%로 성장했다.

심수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유럽 챌린저 은행의 성장 및 시사점'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챌린저 은행들은 시장에서 차별화를 꾀하기 위해 소수자 커뮤니티, 고액자산가, 신용점수가 없는 청년 등 매우 구체적인 지역사회와 틈새시장을 겨냥한 상품 출시했다"며 "IT 기술을 이용하여 운영 방식 등에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며 기존 은행보다 편리한 서비스를 출시하여 성장했다"고 분석했다.

◇ 전문가들 "핀테크 업체, 시중은행 빈틈 파고들지 못할 것…인뱅 성장세 지켜봐야"

영국의 혁신 사례에도 불구하고 국내에 도입하기엔 시기상조라는 목소리가 크다. 인터넷전문은행 제도를 도입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은 만큼, 시간을 갖고 성과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소규모 핀테크 업체가 특정 소비자를 타깃으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챌린저 뱅크와 비교해 인터넷전문은행은 업무 범위도 넓고, 설립 주체도 기존 금융회사나 산업자본으로 중량감이 있지만, 금융당국이 경쟁을 촉진하는 '메기 효과'를 노리고 도입했다는 점에서 '과점체제 해소'라는 지금의 화두와 궤를 같이한다.

금융위원회 자문기구인 '금융산업 경쟁도 평가위원회'가 지난해 펴낸 '은행업 경쟁도 평가 결과보고서'에서도 "신규 은행 진입은 인터넷전문은행 성장을 지켜볼 필요성이 있다"며 "위기 시 개별은행 규모, 은행의 수가 금융시장 안정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하여 진입규제 정책을 검토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대신 최근의 금융환경 변화, 은행과 소비자의 니즈 등을 반영하여 세분화(스몰라이선스)를 도입하거나 겸영·부수·위탁업무 등에 대한 종합적인 개선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부가 은행의 과점 체제를 깨고 경쟁도를 높이겠다는 계획을 밝힌 건 환영할 일이나 챌린저뱅크를 새롭게 도입하면 시간이 오래 걸릴뿐더러 궤도에 오르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며 "플랫폼 도입 등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은행 간 경쟁을 촉진할 방안이 여러가지가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영국의 경우 A은행이 B차주에 대해 대출 실행을 거절하면, 차주와 관련된 정보를 모바일애플리케이션 등을 통해 타은행에 공개해야 한다. 다른 은행들이 해당 정보를 보고 대출이 가능하다는 판단이 들면 차주에게 연락해 대출을 실행하는 식이다. 차주는 신속한 대출을 받을 수 있으며, 은행 간 경쟁도 촉발시킨다는 장점이 있다.

금융위원회 금융발전심의위원회 위원장인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그간 인터넷전문은행을 키우기 위해 차별화된 규제를 적용하고 각종 혜택을 부여했지만, 대형 은행과 맞서긴 어려운 상황"이라며 "국내 시중은행의 리테일 서비스 품질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 중소 핀테크 업체가 틈새시장을 비집고 들어오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특화 은행을 하나 더 만든다고 과점이 해결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사회의 다양성과 독립성을 강화하는 것도 방안 중 하나로 거론된다. 소비자보호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등에 정통한 사외이사를 다수 선임해 그간 벌어들인 수익을 금융소비자에 환원하는 식으로 과점체제에 따른 부작용을 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 교수는 "소비자 권익을 확대하는 차원에서 관련 경력을 가진 이들을 뽑아도,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금융회사 사외이사에 대해선 보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한편으로는 독립성도 확보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올 상반기 중엔 TF를 통해 제도 개선 방안을 내놓겠다는 방침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챌린저뱅크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부터 실현 가능 여부 등 전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며 "은행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백지상태에서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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