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미국 없으면 한국 만날 일도 없다?

'北대응' 한미일 협의체 외엔 한일 간 접촉 사실상 無

美CRS "한일, 차가운 교착상태…미 국익에도 나쁘다"

 

미국 정부가 지난달 국무·국방장관의 한일 순방을 계기로 '한미일 안보협력'을 강조한 뒤로 한미일 3국의 주요 인사들이 함께 만나는 자리가 잇달아 마련되고 있지만, 정작 한일 간 소통은 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미 정부는 올 1월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북한·중국 등으로부터의 위협에 역내 동맹국들과 공동으로 대응하고자 한다'는 명분 아래 한미일 3국 간 협력을 강조하고 있는 모습.

이에 따라 지난 2일(현지시간) 미 메릴랜드주 아나폴리스에선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주재로 한미일 안보실장 회의가 열렸고, 이달 중엔 한미일 합참의장 회의와 한미일 외교장관 회의가 각각 미 하와이와 워싱턴DC에서 개최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과거사 문제에서 촉발된 한일 갈등이 지난 수년 간 경제·외교·안보 등 전 방위로 확산되면서 한일 양국의 주요 당국자들은 사실상 이 같은 미국 주도의 협의체가 아니면 서로를 만날 기회조차 없어진 게 사실이다.

심지어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올 2월 취임 이후 한반도 주변 주요 4강 국가 가운데 미국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중국의 왕이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 그리고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장관과는 직접 대면 회담을 했으나, 일본의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과는 전화 통화조차 하지 못한 상태다.

이 사이 일본 시마네현에선 '독도가 일본 땅'이란 억지 주장을 펼치기 위한 '다케시마(독도의 일본명)의 날'(2월22일) 기념식이 강행됐고, 일본 문부과학성도 지난달 30일 독도가 자국 영토란 주장이 담긴 고등학교 사회과 교과서 검정결과를 발표해 우리 정부와 국민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우리 외교부는 소마 히로히사 주한일본대사관 총괄공사를 초치해 엄중 항의했으나, 일본 측의 대응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이달 1일엔 일본 도쿄에서 한일 외교당국 간의 국장급 협의가 5개월 만에 열렸지만, 이 자리에서도 일본 측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및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한 기존 입장만을 되풀이하면서 우리 측과 평행선을 달렸다.

일본 정부는 징용·위안부 문제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과 2015년 한일위안부합의를 통해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해결됐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 따라서 일본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관련 피해배상을 요구한 우리 법원을 판결 또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게 일본 정부의 일관된 논리다.

앞줄 왼쪽부터 기타무라 시게루 일본 국가안보국장,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서훈 국가안보실장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트위터) 2021.4.3/뉴스1

나아가 일본 정부는 우리 법원의 징용 피해배상 판결이 "국제법 위반"에 해당한다며 우리 정부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일본 집권 자민당에서도 우리 법원의 징용피해 배상판결에 관한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진 "한국을 상대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크다.

올 1월 부임한 강창일 주일대사가 아직 스가 요시히데 총리나 모테기 외무상을 만나지 못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모테기 외무상은 언론 인터뷰에서 강 대사를 만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바빠서"라고 했다. 이런 가운데 강 대사는 이달 8일 나루히토 일왕을 예방해 신임장을 제출하려 했으나, 공교롭게도 본인의 다리 통증이 심해져 일정을 연기한 상태다.

우리 정부는 이미 작년 하반기부터 과거사 문제 해결과 미래지향적 협력과제를 분리하는 '투트랙 기조' 아래 대일관계 복원을 시도해왔지만, 일본 측은 계속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 사이에선 "일본이 한일관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등의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른바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FOIP) 전략이 바이든 정부 대(對)아시아 정책의 근간이 된 상황에서 일본은 이미 쿼드(미·일·인도·호주) 협의체를 통해 미국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 '한국보다 일본이 미국에 더 가깝다'고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의 주도 아래 북한 문제 등을 다루는 "한미일 간 협의체는 잘 가동되더라도 악화된 한일관계까지 풀기는 쉽지 않을 것"(이원덕 국민대 교수)이란 전망이 많다.

미 의회조사국(CRS) 또한 이달 6일(현지시간)자로 개정한 미일관계 보고서에서 한일관계를 "차가운 교착상태"로 표현하며 "이런 관계가 단기적으로 재설정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진단했다.

CRS는 "좋지 못한 한일관계는 대북정책은 물론 중국의 부상에 따른 한미일 3국의 대응을 더 복잡하게 만들어 결국 미국의 이익을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북한이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장거리미사일 시험발사를 재개한다면 역설적으로 한미일 3국간엔 물론 한미·한일·미일 간 공조를 강화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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