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들 몫까지 열심히 살자고 다짐했어요"…이태원 참사 100일

"아픔의 찌꺼기까지 남기지 않도록 감정 분출해야"

'트라우마 치유법'…"아픔 공유할 때 진정한 위로"

 

회사원 이민희씨(가명·30)는 평소 지인들에게 '구김살 없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스스로도 '예민하지 않고 무난한 성격'이라고 생각했다.

순탄하게 살던 그의 마음은 지난해 10월 29일 이후 격렬하게 요동쳤다. 이태원 참사를 직접 목격한 이후 상실감과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무난한 성격'의 그는 주변에 날카롭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계속 이렇게 지낼 수 없었어요. 회사 생활도 해야 하는데 상실감과 좌책감 때문에 버티기 힘들었어요."

참사 이후 어느 날 다시 찾은 이태원. 시민들의 위로 메시지가 담긴 추모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이날 추모공간에 붙은 포스트잇이 이씨의 눈에 들어왔다. '희생자들을 잊지 말자'는 글귀였다. 희생자 대부분은 이씨의 또래였다. 그는 희생자들을 위해서라도 다시 일어서야 한다고 다짐했다.

"돌아가신 분들의 몫까지 열심히 살자고 다짐했어요. 그것이 진정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방식이라고 깨달었어요."  

이태원 참사 100일을 맞았으나 우리 사회의 아픔은 현재 진행형이다. 생존자·목격자·유족의 마음에는 그날의 끔직한 모습이 선명하게 새겨진 상태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등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지만 이씨 같은 평범한 소시민은 트라우마를 안은 채 다시 일상을 보내야 한다.

심리학자들도 '마음의 아픔 찌꺼기까지 남기지 않도록 감정을 분출하라'고 조언한다. 마음의 아픔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트라우마 치유법이 된다는 것이다.

삶과 죽음의 의미를 되짚는 책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중 '수도꼭지를 틀고 감정으로 세수하라'는 문장도 이런 의미를 담고 있다.

30대 직장인 이모씨는 "의료기관을 찾았다가 트라우마를 주변과 공유하며 스트레스를 낮출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그렇게 하고 있다"며 "그러면서 어느 정도 일상생활로 회복했다"고 말했다.

40대 직장인 김모씨는 "힘든 이야기를 털어 놓을만한 회사 동료나 지인들이 많이 있어서 어려움에서 빨리 극복할 수 있었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사회 안전망이 더 갖춰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62)는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아픔을 공유할 때 진정한 위로를 할 수 있다"며 "함께 사는 사람들이 고통스러운데 그들을 위로하지 않는 사회라면 사회 건전성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이어 "마음의 고통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기록이 필요한 이유"라며 추모공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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