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제임스도 삼성전자 주식 쉽게 산다…外人투자등록제 폐지

30년만에 외국인 투자 걸림돌 제거…국제 기준 달라 투자 제약 요인

실시간 보고의무도 폐지하고 영문공시는 확대하기로

 

#. 한국인 A씨가 최근 하락폭이 컸던 '테슬라' 주식을 신규 매수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국내 증권사의 '해외주식' 계좌를 개설한 이후 국내 주식을 매수하듯 간편하게 매수하면 끝난다. 만약 한국인 A씨가 미국 주식을 사기 위해 번역・공증받을 서류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해 신상정보를 일일이 등록하고, 투자를 할 수 있는 전용 'ID'를 발급받은 다음, 투자 내역은 실시간으로 SEC에 보고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면 어떨까? 아마 테슬라 주식을 사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다가 그냥 매수 자체를 포기하고 말 것이다. 

현재 국내 상장주식에 투자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은 법인이든 개인이든 모두 이같은 절차를 거쳐야 한다. 즉 미국인 제임스가 삼성전자 주식을 사려면 우리가 테슬라 주식을 사듯 손쉽게 사는 것이 아니라 금융감독원에 별도 등록을 하고 신상정보를 등록하며 투자내역을 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외국인 수급에 지수가 좌지우지되는 국내 증시임에도 외국인 유입에 높은 '걸림돌'을 설치해 놓은 것이다. 

이에 금융당국은 지난 1992년 도입 후 30여년간 유지돼 온 '외국인 투자자 등록제'가 전면 폐지하기로 했다. 외국인의 투자내역 보고 의무도 함께 폐지한다. 외국인의 국내 상장사 정보 습득을 위한 '영문공시'는 단계적으로 의무화된다. 

◇ 30년만에 외국인 투자 걸림돌 제거…국제 기준 달라 투자 제약 요인 

24일 금융감독원은 글로벌 투자자들이 우리 시장에 투자하는데 걸림돌이 되어온 규제들을 과감히 개선하겠다면서 외국인 투자관련 제도를 개선한다고 밝혔다. 

우선 외국인 투자자 등록제를 폐지한다. 앞으로 외국인 투자자는 금감원 사전등록 없이 법인은 표준화된 ID(Legal Entity Identifier; LEI)를, 개인은 여권번호를 통해 한국증시에 투자할 수 있다. 

외국인 투자자 등록제도와 장외거래의 제한은 지난 1992년 외국인의 상장주식 투자를 허용하면서 도입됐다.

상장주식에 대한 투자를 허용하는 대신 각 종목별로 외국인 전체 10%, 외국인 1인 3%라는 한도를 설정했다. 이를 관리하기 위해 외국인 투자자에게 사전등록을 요구하고 장외거래를 제한한 것이다. 

일반 상장사에 대한 한도 제한이 1998년 폐지돼 현재 2500여개 상장사 중 기간산업을 영위하는 33개 종목만 취득한도가 제한됨에도, 외국인 투자자 등록제도 등은 약 30년간 큰 변화 없이 유지되고 있었다. 

미국·일본 등 주요 선진국에서 투자자 등록제도를 운영하는 곳은 없다.

이에 당국은 외국인 투자자 등록의무를 폐지하고, 법인은 LEI, 개인은 여권번호를 활용해 우리 자본시장에 투자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한다. 앞으로 외국인은 사전 등록절차 없이 국내 상장증권 투자가 가능하게 된다. 우리 국민이 미국 주식을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것과 유사한 절차다. 

외국인도 증권사에서 실명확인 등 절차를 거쳐 바로 계좌개설이 가능하고, 법인은 LEI, 개인은 여권번호를 식별수단으로 하여 계좌정보를 관리할 수 있다.

기존에 투자자 등록을 한 외국인의 경우, 종전에 사용하던 투자등록번호를 그대로 사용할 수도 있다. 

결제 즉시(T+2) 투자내역을 보고하도록 한 의무도 폐지한다. 이를 통해 외국인은 향후 다수 투자자의 매매를 단일 계좌에서 통합 처리(주문·결제)할 목적으로 글로벌 운용사 명의로 개설된 '통합계좌'를 통해 한국증시에 자유롭게 투자를 할 수 있다. 통합계좌는 지난 2017년에 제도로 도입됐으나 현재까지 개설된 사례가 없을 정도로 비활성화돼 있다. 

이에 당국은 최종투자자별 투자내역 보고의무를 폐지해 통합계좌를 이용한 거래의 편의성을 높이고 사후관리 체계를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화를 정리하고 있다. 2022.9.20/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 실시간 보고의무도 폐지하고 영문공시는 확대하기로

아울러 상장주식과 채권에 대해 외국인이 사전심사 없이 사후신고만으로 장외거래를 할 수 있는 범위를 확대하고, 신고 부담도 대폭 완화한다. 

현재 외국인 투자자의 상장증권 거래는 장내거래만 원칙적으로 허용하고 장외거래는 금감원으로부터 사전심사를 받아야 가능하다.

이에 금감원은 사후신고 대상의 범위를 대폭 확대하고, 신고 부담도 적극적으로 완화해 외국인의 장외거래 역시 폭을 넓힌다는 방침이다. 

금감원은 "사전심사건 중 심사 필요성이 낮고 시장참여자의 장외거래 수요가 높은 유형들을 사후신고 대상에 적극 포함해, 사전심사에 따른 투자자의 부담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혔다. 

외국인이 우리 기업에 대한 투자여부를 결정하는 데 핵심자료가 되는 영문공시 역시 내년부터는 자산 10조원 이상 상장법인을 시작으로 시장에 필요한 중요정보부터 단계적으로 의무화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국내 영문공시는 비영어권인 아시아 주요 국가 중에서도 상당히 미흡한 수준이다.

코스피 상장사가 한국거래소에 제출한 영문공시는 2022년 기준 국문공시의 13.8% 수준에 불과하고, 사업보고서 등 금융감독원에 제출하는 법정공시는 사업보고서에 첨부되는 재무제표에 대한 영문 자동번역만 제공되는 수준에 그친다. 

아시아 주요국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이미 공시언어를 영어로 채택(홍콩, 싱가포르)하거나 부분적으로 의무화(대만)하고 있다. 자산 10조원 이상 규모있는 기업만이라도 영문공시를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이에 당국은 오는 2024년부터 '대규모' 상장사와 시장에서 필요한 중요 정보를 중심으로 영문공시를 단계적으로 의무화해 나가는 한편, 영문공시 확산을 위한 지원방안도 병행한다는 방침이다. 

당국은 "이번 제도개선으로 국제기준에 맞춰 우리 자본시장의 투자환경이 개선되고, 외국인 투자자들의 편의성이 증대돼 외국인의 투자가 점차 확대될 수 있는 중요한 기반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면서 "외국인 개인뿐만 아니라 해외 교민과 중소 기관투자자도 글로벌 증권사에서 개설한 통합계좌를 통해 우리 증시에 손쉽게 투자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기대를 나타냈다. 

아울러 외국인 투자자 등록제도를 폐지하더라도 외국인 투자한도 관리, 시장 모니터링 등 기존 제도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 가능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당국은 상반기 중 자본시장법 시행령 및 금융투자업 규정을 개정하고, 이후 시스템 개발을 거쳐 연내 개선된 제도를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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