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축빌라 '집값<보증금' 뻥튀기…전세사기 그놈들의 최애 수법

분양가 부풀려 임차→바지사장에 명의 이전 먹튀 '조직범죄'

HUG 적격심사 강화, 등기부 '체납정보'…법·제도 개선 절실

 

지난해 10월 세입자 이장우씨(29·가명)는 서울 송파구에 보증금 2억1000만 원에 전셋집을 구했다. 대리인과 계약을 마무리하고 집주인을 상대로는 보증보험을 요구했다. 처음에는 금방 해줄 것 같던 집주인은 대리인에게 부탁해놨다며 보험 가입을 차일피일 미뤘고 대리인은 집주인이 하기로 했다며 요구를 떠넘겼다.

느낌이 좋지 않았던 이씨는 입주 4개월이 지나 등기부등본을 확인했는데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체납된 세금으로 세 든 집이 압류돼 있었기 때문이다. 가입해 준다던 보증보험도 실은 거짓말이었다. 애초에 보증보험을 가입할 수 없는 집이었기 때문이다.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없을 것이라 판단한 이씨는 재빠르게 구제책 마련에 나섰다 이내 더 큰 충격에 빠졌다. 집주인이 지난 10월 사망한 것이다. 알고 보니 집주인은 수도권에 빌라·오피스텔 1139가구를 사들여 전세 사기 행각을 벌이다 사망한 '빌라왕' 김모씨(42)였다.

◇시세 불투명한 빌라가 주 타깃…수법은 전세금 먹튀

전세 사기 가담자들은 이씨의 사례처럼 시세 정보가 어두운 신축 빌라를 주 타깃으로 삼았다. 건축주가 빌라 건물 1채 가격에 분양대행사, 부동산중개업자, 임대 사업자에게 줄 리베이트를 붙여 분양가격을 정한다. 이후 세입자가 나타나면 이 가격에 전세금을 맞춰 계약을 맺는데, 대부분의 전세금은 매매가 보다 높은 금액으로 형성된다.

이들은 세입자들을 상대로 이사비와 이자 지원 등 유인책도 활용한다. 그리고 건물을 통째로 소득과 재산이 없는 제3자에게 떠넘기는데 이들이 명의만 대여한 빌라왕 같은 바지사장이다.

핵심은 바지사장이 소득과 재산이 대부분 없어 보증금을 돌려줄 능력이 없다는 점이다. 통상 세입자는 임대차 계약이 만료된 후 이 사실을 알게 되는데 빌라를 경매에 넘기더라도 보증금이 집값보다 높아 보증금을 온전히 돌려받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만약 앞서 언급된 이씨의 사례처럼 체납된 세금마저 있다면 1순위 채권자에서도 밀리게 된다.

국토교통부는 최근 전세 사기로 의심되는 거래 106건을 적발해 수사 의뢰했는데 대부분이 이씨의 사례와 같은 깡통 전세, 즉 무자본 갭투자였다. 

인천 미추홀구청에서 열린 '전세사기 피해 근절을 위한 관계기관 간담회'가 진행되고 있다. /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위조와 조작…눈 뜨고 코 베인 세입자들

지난 3월 서울 강서구에서 보증금 2억4600만 원에 신축 빌라 전세 계약을 맺은 오정국씨(30·가명)는 최근 집주인이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빌라를 담보로 6000만 원의 대출을 받은 사실을 확인했다. 전세 계약 체결 후 확정일자를 받아 전입신고까지 완료했는데도 자신도 모르게 대출이 이뤄진 것이다.

세입자가 전입신고를 한 집은 집주인이 임의로 대출받는 것이 불가능한데 집주인은 임차인의 인감을 위조했다. 위조한 인감으로 월세 계약서를 또다시 만들었고 이를 가지고 대부 업체에 돈을 빌렸다. 집주인은 다른 집들도 같은 방식으로 대출을 했고 피해 금액만 수십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깡통 전세와 더불어 전세 사기 중 많이 쓰이는 수법이 바로 위조와 조작에 따른 담보 대출이다. 담보 대출은 깡통 전세 후속 사기에 해당한다.

따라서 위조와 조작에 따른 담보 대출은 주로 바지사장에 의해 이뤄진다.

실제로 오씨도 처음에는 집주인이 건축주였는데 한 달도 안 돼 집주인이 바뀌어 다시 계약을 맺었다. 사실상 건축주는 전세금으로 매매가 이상을 벌어 사라졌고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바지사장이 새 주인이 된 것이다.

서류의 위조와 조작의 형태는 다양하다. 가짜 월세 계약서 작성과 함께 또 다른 유형이 바로 가짜 전입신고다. 집주인이 도장을 위조해 세입자가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나간 것처럼 신고를 하고 자신이 다시 그 집으로 전입신고를 해 담보 대출을 받는 방식이다.

이 경우 역시 경매에 넘어가도 전세보증금을 다 못 받을 가능성이 크다. 신축 빌라는 매매가가 형성돼 있지 않기 때문에 경매에 넘어갈 시 전세보증금을 다 못 받을 수 있다.

이 같은 경우는 보험을 통해 보증금을 받는 것도 쉽지 않다. 오씨도 피해 사실 확인 후 주택도시보증공사(HUG)로부터 보증금 지급을 요청했으나 처음에는 집주인과 세입자가 '짜고 친다'는 의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오씨는 피해를 입증했으나 전세보증보험을 들지 못했던 다른 세입자들은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었다. 

/뉴스1 © News1 박세연 기자


◇속수무책 피해자들…"HUG, 적격 심사 강화해야"

전문가들은 HUG의 느슨한 적격 심사가 피해를 키우는데 한몫한다고 지적한다.

빌라왕 김씨의 사례를 예로 들면 이미 과도한 물량의 집을 보유 중이고 세금도 체납됐으며 전세금 반환 사고도 일으키고 있음에도 보증 적격 판정을 내린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이상영 명지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제일 중요한 것은 보증하는 자산의 가치가 반환 금액 이상인지, 그리고 그것을 정확하게 측정하고 회수하는 프로세스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어 "임대인이 어떤 문제를 일으킨 사람인지를 미리 파악하고 보완 내지는 안전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며 "반환 보증 제도를 제대로 운영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이런 일은 또 일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법망 재정비도 필요하다. 공인중개사법 개정을 통해 임대인의 체납한 정보를 등기부등본에 기재하는 내용을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또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을 통해 지자체가 전세 피해 지원 기구를 설치하고 각종 행정적 지원에 나서는 방안도 거론된다.

이 밖에도 집주인의 선순위 채무와 보증금의 제3자 위탁 관리 등의 제도를 고려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제시한다. 아울러 세입자 역시 주택금융공사(HF),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서울보증보험(SG) 등에서 마련한 보증금 반환 상품에 가입해 보다 적극적인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세 사기 예방하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세입자들은 피해를 입고 구제를 받는 것보다 미리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했을 경우 구제받을 확률이 높지만 집이 경매에 넘어간다면 근저당(집에 대한 채권담보)보다 순위가 뒤에 있을 경우 보증금을 돌려받기 힘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직 계약 전이라면 근저당이 없는 집에 전세를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또 확정일자를 받아 놓는다면 전세금을 떼일 가능성은 확연히 줄어든다.

만약 알아본 집이 대출이 있다면 대출금과 전세금을 합친 금액을 비교해야 한다. 합한 금액이 집값의 70% 이하인 경우 통상 안전하다고 본다.

집주인의 세금 체납도 미리 확인할 필요가 있다. 물론 집주인이 이를 거부하면 확인할 길이 만무한데 이 경우는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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