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의 집'이 펼쳐 놓은 상상의 남북

 <종전을 맞은 한반도 비무장지대에 공동경제구역(JEA)이 만들어지고 그 안에 조폐국이 설립된다. 천재적 전략가와 각기 다른 능력을 지닌 강도단이 이 JEA에 침투해 인질 강도극을 벌이며 4조원을 찍어낸다.>

스페인에서 시작된 넷플릭스 시리즈 '종이의 집'이 한국식으로 각색됐다(종이의 집:공동경제구역). 전 세계 남아있는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국에서만 상상할 수 있는 가상 상황이다. 통일 직전, 공동 화폐를 만들기 위해 JEA라는 가상의 공간을 만드는 미래가 그리 멀지도 않은 2025년에 펼쳐지다니, 사실이라면 드라마에서 언급된 대로 "변화는 뜻밖의 도둑처럼 찾아온" 것이다.

북한의 7차 핵실험 위협이 더욱 고조되고 있는 때에 이런 상상은 어쩐지 어색하면서도 꽤 흥미롭다. 실제로 남북이 통일을 준비한다면 일어날 법한 상황들이, 디테일은 차치하더라도 나름 의미심장하게 묘사되고 있어서다.

"웰컴 투(Welcome to) 자본주의."

드라마는 평양에서 '코리안 드림'을 갖고 내려온 도쿄(전종서 분)의 관점에서 시작한다. 도쿄는 부푼 꿈을 안고 평양을 떠나 서울로 오는데 이주 브로커에게 사기를 당하고 북한 노동자란 이유로 각종 차별과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 도쿄는 '웰컴 투 자본주의'라고 되뇌며 이 모든 것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이 남한 사회의 실상임을 암시한다.

여기까지는 북한 선전매체에서도 자주 비난의 소재로 등장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와 별다를 게 없다. 하지만 충분히 상상해볼 만하다. 이미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이주 노동자 문제, 계층 간 격차라는 사회적 문제에 '북한'이라는 하나의 상상만 더한 것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 남한의 재벌기업은 북한에 대대적인 투자를 약속하고 남북 모두에 '떼돈'을 버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가진 자들만 더 갖게 되고 열악한 노동자의 삶은 더 열악해진다. 드라마 속 뉴스에서는 "남북경제 협력이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계층 간 빈부격차가 벌어지는 데 따른 현상"이라고 북한 노동자들에 대한 반감, 사회 갈등의 원인을 짚는다.

남북이 통일을 논의하는 시기가 '도둑처럼' 온다면 급격한 사회적 변화는 기존에 존재하던 문제를 심화시키면 시켰지, 완화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물론 드라마의 극적 연출을 위한 각색이라는 점을 감안해 현실은 이보단 덜했으면 좋겠지만 말이다.

"오래 떨어져 살았는데 금방 친해질 수 있겠어?"

북한 수용소 출신인 강도단의 리더, 베를린(박해수 분)은 인질들을 출신에 따라 남북으로 나눠 서로를 감시하게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남측 인질이 잘못하면 북측에, 북측 인질이 잘못하면 남측에 책임을 묻겠다고 하며 '갈라치기'를 하는 것. 베를린은 이 방법의 목표는 "서로를 적으로 만들어 진짜 적을 잊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서로 70여년 이상 따로 살아온 남북이 한자리에 모인다면 안 싸울 리가 없다'는 것도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남북이 겪을 수 있는 또 다른 문제다. 베를린의 말대로 "그저 북남(남북)으로 나눴을 뿐인데"도 드라마에서 남북은 사사건건 부딪친다.

강도 인질극 해결을 위해 모인 경찰도 마찬가지다. 무력 진압을 통한 빠른 사태 해결을 주장하는 북측 차무혁(김성오 분) 대위와 인질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협상해야 한다는 남측 선우진(김윤진 분) 위기협상팀장이 그렇다. 다만 이들은 한발 앞선 '교수(유지태 분)'의 작전에 말려들며 실수를 반복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각자의 생각을 존중하게 되는 듯하다.

극적 연출이겠지만, 70여년 싸워온 남북이 초반엔 투덕거리다가 결국엔 힘을 합치게 되는 스토리 흐름이 현실에서도 가능할까. 현재로선 이 역시 상상의 영역에 맡겨봐야 할 것 같다. 남북은 2018년 총 36차례 회담을 위해 마주 앉았었지만 북한의 7차 핵실험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는 지금은 모든 교류가 막혔다. 

"북조선에도 '아미'가 있다"(?)

1화에서 도쿄는 방탄소년단(BTS) 노래에 맞춰 춤을 추며 본인을 아미(BTS 팬클럽 이름)이자 진짜 아미(army)라고 소개한다. '무리수' 논란이 있긴 했지만 나름 재치 있게 남북의 상황을 묘사하려고 한 시도라고 본다.

실제로 드라마에서 남북은 여러 혼란을 겪지만 그 와중에 BTS의 평양 콘서트 표는 매진됐다는 뉴스가 나온다. 남북이 종전선언을 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현재 '종이의 집:남북경제공동구역'이라는 드라마가 제작되고, 전 세계인들이 본다는 것 자체가 문화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다만 북한 사람이 거리낌 없이 BTS 음악을 듣고, 남북경제교류가 결정되자마자 망설임 없이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으로 들어오는 장면들은 한국인의 관점에서만 본 북한이다. 남한 콘텐츠의 유입을 극도로 경계하는, 한편으론 '모니터링'하고 있을 북한이 이 드라마를 봤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하다. 남북을 소재로 한 드라마는 언제나 한쪽의 관점에서 만들어지니 '반쪽'일 수밖에 없다. 

현재 한반도의 상황으론 요원하지만 남북이 '문화'라는 창구로 교류를 할 수 있게 되는 날도 상상해본다. 드라마처럼, 어쩌면 그리 머지않은 미래일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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