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순간' 고두심·지현우의 멜로, 파격 너머의 연민과 공감

선뜻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70대 여성과 30대 남성의 멜로라니. 하지만 영화 '빛나는 순간'은 두 사람이 교감하고, 연민하며 끝내 사랑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비교적 자연스럽게 풀어내며 나이차에서 오는 위화감을 줄였다. 활자로는 '멜로'라는 틀 안에 가둘 수 밖에 없는 사랑이지만 영화 속 진옥과 경훈의 관계는 남녀의 사랑이라는 틀을 넘어 연민과 공감, 이해 등 다양한 감정의 파도들을 넓고 깊은 바다처럼 품어냈다.

30일 개봉한 '빛나는 순간'(감독 소준문)은 '바다에서 숨 오래 참기'로 기네스북에 오른 제주 해녀 진옥과 그를 취재하기 위해 온 다큐멘터리 PD 경훈이 서로를 사랑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다. 고두심이 무뚝뚝하지만 마음 따뜻한 해녀 진옥을, 경훈이 서울에서 내려온 섬세한 다큐멘터리 PD 경훈을 각각 연기했다.

진옥은 홀로 병이 든 남편의 수발을 들며 살아가고 있는 해녀다. 경훈은 기네스북에 오른 해녀 진옥을 꼭 촬영해야만 하는 상황. 하지만 진옥은 그의 그런 촬영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고, 경훈은 진옥의 마음에 들기 위해 그를 쫓아다닌다. 어느 날 경훈은 물질을 하기 위해 물이 들어간 진옥이 4분 넘게 돌아오지 않는 것을 보고 패닉에 빠져 물에 뛰어든다. 그에게는 연인을 바다에서 잃은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영을 못하는 바람에 되려 경훈이 물에 빠지고, 이내 물위로 올라온 진옥이 그를 구한다. "아이구 고맙다"며 가까스로 살아남은 경훈을 끌어안는 진옥에게도 사실 바다에서 어린 딸을 잃은 상처가 있다.  

 

그렇게 진옥은 경훈에게 마음을 열게 되고, 경훈은 진옥의 매니저를 자처하며 '진옥 삼춘'('삼춘'은 제주에서 가까운 손윗사람을 일컫는 말이다)을 보필한다. 진옥은 적지 않은 나이에도 여전히 열심히 일을 하며 살아간다. "여자로 태어나느니 소로 태어나고 싶다"는 말에 진옥의 고단한 삶이 배어있다. 그러던 어느 날 진옥은 우연히 샤워를 하는 경훈의 알몸을 보고난 후부터 감정에 변화를 겪는다. 볼일이 있어 서울로 떠난 경훈의 귀가가 예상보다 늦어지자 마음이 상해 화를 내는가 하면, 생전 바르지 않았던 화장품을 사서 바르기도 한다. 그리고 다큐멘터리 촬영을 하기로 한 어느 날, 진옥은 경훈의 카메라 앞에서 그간 누구에게도 풀어내지 않았던, 오래묵은 상처를 꺼낸다.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광들 속에서 '빛나는 순간'의 파격적인 설정은 여유를 얻는다. 푸른 바다와 신비로운 상사화가 가득 피어있는 숲과 동굴, 자연 속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아픔을 풀어놓는다. 진옥이 가장 좋아하는 꽃 상사화는 꽃이 필 때 잎이 없고, 잎이 자랄 때 꽃이 피지 않는다. 상사화에는 꽃과 잎이 만나는 아주 짧은 순간이 존재하고 진옥과 경훈은 이를 의미있게 여긴다. 이질적인 두 사람이 인생이 포개진 순간 상사화의 '빛나는 순간'이 완성된다.

베테랑 배우 고두심은 인생 연기를 보여준다. 고향 제주도에 대한 사랑으로 영화에 출연한 그는 난생 처음 경험하는 다양한 감정들에 당황하고 환희하는 70대 해녀 진옥을 진정성 있게 연기했다. 고두심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한 많은 제주 해녀들의 삶을 마치 한 사람의 몸에 함축시켜 놓은 듯한 느낌이 든다. 제주4.3 사건을 언급하며 토해내듯 상처를 드러내는 진옥의 독백신은 고두심 연기의 백미다. 영화는 진옥의 감정을 따라간다. 때문에 경훈의 감정선은 다소 가려져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게 사실이다. 제주도 올로케이션으로 찍은 작품이다. 러닝 타임 95분. 30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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