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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생활-김 준 장로] 허례허식(상)

김 준 장로(종교 칼럼니스트)

 

허례허식(상) 


거의 10여년 전의 일입니다. 어느 날 한국에서 커다란 대형 봉투가 하나 배달되어 왔습니다. 열어 보았더니 바로 그 전 해에 어학 연수차 몇개월 동안 시애틀에 머물러 있다가 동부를 거쳐 귀국한 P목사님이 보낸 것이었습니다. 

그 봉투 속에는 그 분이 새로 부임한 교회의 취임식에 초대하는 초청장과 그 날 있을 행사표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을 담은 팜플렛이 두꺼운 고급 용지로 된 대학 노트 만한 크기였고, 그것도 표지와 뒷면을 합쳐서 6페이지나 되는 양이었습니다. 

그 교회는 서울 북쪽, 경기도 어느 소도시에 위치한 것으로써 P목사님이 개척하는 교회는 아니고 장년이 약 100여명쯤 되는 작은 규모의 기성교회 였습니다. 

그 커다란 순서지를 펼쳐보니 목사 취임식과 함께 1명의 장로 장립, 5명의 안수집사, 6명의 권사가 취임하는 의식이었습니다. 제1부에는 예배, 제2부는 임직식, 제3부는 축가 음악연, 제 4부는 만찬 파티로 이어지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의식에 필요한 순서를 받은 목사님들이 무려 16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리고 필자 나름대로 그 임직식에 소요될 시간을 상정해 보았는데 아무래도 짧게는 3시간반, 길게는 4시간 이상이 소요될 것이 분명하였고 오고 가는 시간까지 합치면 5시간은 족히 걸릴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필자는 그 행사에 지출될 비용을 생각해 보았지만 한국의 실정을 잘 모르기 때문에 정확히는 알 수가 없었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 작은 교회로서는 너무나 많은 비용이 들 것이 분명하였습니다. 16명이나 되는 목사님들에 대한 사례금, 임직자들에게 줄 선물, 임직자들이 교회에 바치는 기념품, 축하 파티에 필요한 경비, 6페이지나 되는 순서지에 컬러로 찍은 사진까지 넣은 인쇄비, 실내장식비, 그리고 이 미국에까지 날라온 그 대형 순서지와 초청장의 무게만큼 비싸게 지불했을 항공요금, 그것도 필자 한 사람에게만이 아닌, 미국에 살고 있기 때문에 참석할 수 없을, 수십, 수백명에게 전달될 그 무의미한 비용들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그 작은 교회에서 그처럼 많은 경비를 들여가면서 거창한 의식을 행하는 것이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일까. 그리고 교회에 바쳐진 헌금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사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지출이란 낭비가 아니라 절약이 되어야 할 것이고, 무가치한 용도에가 아니라 가치있는 용도에 쓰여져야 하겠고, 인간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지출이어야 한다고 볼 때 그 교회의 행사에는 많은 부분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과는 거리가 멀게 헌금이 사용되고 있다고 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행사에 참석하는 사람들에게 소요될 시간이 왕복 시간 합쳐서 5시간 정도 걸릴 것으로 생각되었는데, 필자의 판단이 맞는다면, 그 행사를 위해서 수백명이 그토록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이고 하나님이 또한 기뻐하실 일일까요. 

몇해 전 미국의 유명한 코넬대학이 창립 100주년을 맞게 되었는데 그 기념식을 정확히 50분 만에 끝냈습니다. 남들은 모두 그렇게 살고 있는데 우리도 무심코 흘려보낸 시간 속에 우리의 금쪽같은 시간들이 되찾을 수 없는 허망 속에 묻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 보아야 할 것입니다. 

얼마 전에 한국의 어느 유명한 목사님의 사모님이 세상을 떠난 후 1주기를 맞아 추도식을 거행하게 되었습니다. 모 대학의 교수 한 분이 그 행사의 순서를 하나 맡게 되어 참석했는데, 그가 맡은 순서를 마치고 돌아가서 오후 강의를 할 예정이었으나 추도식이 어찌나 길게 이어지는지, 그리고 추모사를 하는 6명이 거의 비슷한 내용을 2시간 이상 했기 때문에 그 교수는 결국 결강을 하게 되어 수십명의 학생들에게 피해를 주고 그들로부터 불신을 사게 되었노라고 토로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무위(無爲)의 상태로서만 시간을 허비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열심히 움직이고 무엇인가 부지런히 하고 있는 것 같은데도 남기는 것 (열매)이 없이 사는 것도 역시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다음 칼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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