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칼럼-허정덕 목사] 예수님을 따르려면

허정덕 목사(시애틀물댄동산교회 담임)

 

예수님을 따르려면

 

과거에는 “예수 믿고 복 받으세요”라고 하면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던 시절이 있었지만, 요즘 이 전도의 말은 거의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희생하고 포기해야 할 일들이 많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살았던 지난날의 잘못된 삶을 회개하고, 예수님을 내 삶의 참 주인으로 모셔 따르기로 결단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마태복음 16장 24절도 참된 제자도의 의미를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여기서 알 수 있듯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은 ‘자기 부인’인데,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는 결코 자기 십자가를 질 수도, 주님을 따를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면서 이런 저런 갈등을 겪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마다 부패한 옛 자아인 ‘자기’가 살아서 내 욕심과 내 감정, 내 고집대로만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또 살다 보면 내 생각에는 좋은 것 같고 내가 보기에는 좋은 길 같는데, 하나님은 '아니라'고 하실 때가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과 내 뜻이 부딪힐 때 우리가 마땅히 취해야 할 태도가 바로 자기 부인입니다. 우리는 선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던 예수님처럼, 내 삶의 주도권을 기꺼이 굴복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예수님은 "자기 십자가를 질 것"을 엄중하게 도전하십니다. 현대 기독교인들은 종종 질병이나 껄끄러운 인간관계, 직장 생활의 어려움 등을 가리켜 "내가 져야 할 십자가"라며 푸념하곤 합니다. 그러나 이는 세상 사람 누구나 겪는 평범한 삶의 짐일 뿐, 성경이 말하는 십자가는 아닙니다. 1세기 유대인과 로마인들에게 십자가는 인간이 고안해 낼 수 있는 가장 고통스럽고 치욕스러운 처형 수단이었습니다. 로마인들은 사형수가 직접 십자가를 지고 사형장으로 걸어가도록 강제했기에,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온갖 조롱과 멸시를 받으며 죽음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따라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것은, 그 과정에서 수치와 고난, 나아가 죽음을 맞이한다 해도 하나님의 뜻에 기꺼이 순종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님은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부르실 때, 그는 와서 죽으라고 명령하신다"고 역설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에게 진지하게 물어야 합니다. 가장 친한 친구를 잃는대도, 세상의 조롱과 핍박을 당한대도, 소유와 명예를 빼앗기고 생명을 잃는대도 주님을 따르겠습니까?   

또한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복음을 위해 기꺼이 희생을 감수하는 일입니다. 마틴 루터는 "십자가를 지는 것은 내가 과연 참 제자인지, 아니면 떡덩이나 얻어먹으러 다니는 사람인지를 분별하는 시금석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희생 없이 단지 눈앞의 이익과 편한 자리만을 찾고 있다면 그것은 결코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처럼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길은 결코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닙니다. 이 길만이 영원한 영광으로 이끄는 참된 생명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고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영원한 생명과 상급을 확신한다면, 오늘 이 말씀을 깊이 새겨 기꺼이 자기를 부인하고 내 몫의 십자가를 짊어지는 참된 제자로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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