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W 풋볼 전설이자 시애틀식당사업가 더그 마틴 별세

로즈볼 우승 주역·바이킹스 10년 활약…“실력보다 더 빛난 인간성”

 

워싱턴대(UW) 풋볼팀의 전설이자 1978년 로즈볼 우승 주역인 더그 마틴이 지난 18일 새벽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68세.

마틴의 별세 소식은 브루스 해럴 시애틀 전 시장 등 UW 시절 동료들을 통해 확인됐다. 동료 클리프 베시아는 “그를 알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행운이었다. 진심으로 따뜻한 사람이었다”고 애도했다.

마틴은 1976년부터 1979년까지 UW 수비라인을 이끌며 팀의 전성기를 이끈 핵심 선수였다. 통산 323개의 태클을 기록해 현재까지도 UW 수비라인 역사상 상위권 기록을 유지하고 있으며, 재학 기간 동안 팀은 29승을 거두고 로즈볼과 1979년 선볼 우승을 차지했다. 그는 주니어와 시니어 시즌에 올-Pac-10 퍼스트팀에 선정되고 올아메리칸 후보에도 올랐다.

이후 1980년 NFL 드래프트에서 전체 9순위로 미네소타 바이킹스에 지명되며 프로에 입성했다. 이는 UW 선수로서는 1952년 이후 가장 높은 순위였다. 마틴은 10시즌 동안 126경기에 출전해 61.5색, 7차례 펌블 유도, 인터셉트 1개를 기록했으며, 1982년에는 리그 최다인 11.5색을 기록해 올프로 1팀에 선정됐다.

그러나 동료들은 그의 진정한 가치를 경기력보다 인간성에서 찾았다. 그는 은퇴 후에도 팀 동료들과의 유대를 이어가며 공동체의 중심 역할을 했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묵묵히 도왔던 인물로 기억된다. 아내 오드리 마틴은 “남편은 늘 조용히 선행을 실천했던 사람”이라며 “주목받기보다 좋은 일을 하는 데 의미를 둔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1957년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태어난 마틴은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캘리포니아로 이주해 성장했다. 고교 시절부터 미식축구, 농구, 육상에서 두각을 나타냈으며 UW 진학 후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은퇴 후에는 시애틀 지역으로 돌아와 레스토랑 사업에 뛰어들며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커클랜드와 팩토리아에서 식당을 운영하며 요리에 대한 열정을 이어갔고, 동료들 사이에서는 ‘그릴 마스터’로 불릴 만큼 요리 실력도 뛰어났다.

말년에는 오랜 선수 생활로 인한 부상과 통증에 시달렸으며, 최근에는 기억력 저하 증상도 나타나 만성 외상성 뇌질환(CTE)을 우려하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으로는 아내 오드리와 두 아들 카일, 코리, 그리고 형제들이 있다.

동료 브루스 해럴은 “그는 뛰어난 선수였을 뿐 아니라 진정한 ‘신사’였다”며 “그의 부재는 우리 모두에게 큰 상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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