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재테크이야기] 정체 모를 불안
- 26-04-19
서희경(연방 세무사/재정 전문가)
정체 모를 불안
은퇴 상담을 하다 보면 흥미로운 장면을 자주 마주합니다. 자산이 부족한 분보다, 오히려 적지 않은 자산을 가지고도 불안을 호소하는 분들이 더 많습니다.
“이 정도면 괜찮은 걸까요?” “써도 되는 건지 도저히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문제는 돈의 크기가 아니라, 돈을 바라보는 마음의 구조에 있습니다.
7080세대는 소비보다 절약이 강조되던 시절을 살아 왔습니다. 그래서 돈이 주는 안정감보다 부족해질지 모른다는 불안을 먼저 기억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벌어도 여유롭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마음속 불안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젊은 시절 몸에 밴 절약은 평생 이어지는 습관이 됩니다. 팬트리에 음식이 넉넉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하고, 통장 잔고가 줄어들면 잠을 이루기 어려워집니다. 필요한 만큼을 쓰고도 늘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도 이 같은 불안의 습관 때문입니다.
또한 타인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경향 속에서 ‘보여주기 위한 삶’에 익숙해지기도 합니다. 여기에 동양적 정서까지 더해지면서 돈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를 불편하게 여기는 태도도 나타납니다.
돈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언어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외면할수록 돈의 흐름을 이해할 기회는 점점 멀어집니다. 이러한 습관은 침묵 속에서 더 깊어집니다.
이 같은 태도는 은퇴 준비 방식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자산을 쌓는 데에는 익숙하지만, 그것을 활용하고 흐르게 하는 데에는 서툴기 쉽습니다.
특히 가정의 재정 상황이나 민감한 돈 이야기를 꺼리는 문화 속에서 변화하는 금융 환경을 배우는 데에도 소극적이 되기 쉽습니다. 때로는 ‘모르는 것이 마음 편하다’며 외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자산을 모으는 능력만큼이나 관리하고 활용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은퇴 이후의 자금 계획은 단순히 돈을 모으는 것을 넘어 사고방식을 바꾸는 데서 시작됩니다. 노후 준비에서 진짜 위험은 자산의 크기가 아니라, 금융 지식의 부족과 변화에 대한 무지입니다. 부동산에 묶인 자산을 현금 흐름으로 전환하지 못하거나, 연금과 보험을 활용하지 못하면 자산이 있어도 편안한 삶을 누리기 어렵습니다.
이른바 ‘현금 흐름 없는 빈곤’이 더 큰 위험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몇 가지 원칙을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 집 한 채에 묶인 자산은 생활비가 되지 않습니다. 부동산보다 연금이나 배당처럼 매달 들어오는 현금 흐름이 중요합니다.
둘째, 인플레이션과 자산 변동을 이해하고 이를 관리할 수 있는 금융 지식을 갖추어야 합니다. 셋째, 은퇴 이후에도 건강 관리와 사회적 활동을 통해 관계와 소득을 유지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수입에 맞춰 생활하고 지출을 통제하는 균형 잡힌 소비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결국 은퇴 설계는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불안을 다루는 과정입니다. 노후의 삶은 자산의 크기가 아니라 자산을 이해하는 데서 결정됩니다. 어느 정도까지 써도 괜찮은지를 아는 순간, 막연한 두려움은 계획이 되고 마음속에 자리 잡았던 정체 모를 불안은 관리 가능한 대상으로 바뀝니다.
문의 : 425-638-2112/ hseo@api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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