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재테크이야기] 타이밍이 중요하네요
- 26-04-06
서희경(연방 세무사/재정 전문가)
타이밍이 중요하네요
‘은퇴’라는 주제는 늘 중요하지만, 때로는 이론처럼 들리고 익숙한 이야기로 흘러가기 쉽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개념이 아닌, 실제 제가 만나뵌 분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 의미를 풀어보려 합니다.
70세에 은퇴하신 김 사장님은 매주 골프 약속이 빼곡했고, 시애틀에 비가 잦아지기 시작하면 캘리포니아에 마련해 둔 또 하나의 삶의 공간으로 향하셨습니다.
지인들과 어울리며 누구보다 활기찬 은퇴 생활을 보내셨고, 햇살이 머무는 그곳의 여유와 시애틀의 안정된 일상이 조화를 이루며 그분이 오래도록 그려온 삶을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럴 때 쓰려고 모은 돈이지요.” 그렇게 말씀하시며 연금에서도 비교적 큰 금액을 기꺼이 인출하셨습니다.
10년 후 다시 뵌 김 사장님은 조금 다른 일상을 보내고 계셨습니다. 무릎 통증으로 골프는 줄었고, 여행도 예전만큼 자유롭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그때 참 잘 쓴 것 같아요. 몸이 따라주던 시기에 마음껏 즐길 수 있었으니까요. 지금은 여유가 있어도 예전처럼 쓰기는 쉽지 않네요.” 이 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은퇴 자금의 핵심은 ‘얼마를 가지고 있느냐’보다, ‘언제 어떻게 쓰느냐’에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는 흔히 은퇴 자금을 ‘균등하게 오래 쓰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은퇴 이후의 삶은 보통 세 단계로 나뉩니다.
활동이 가장 많은 ‘GO GO 시기’, 활동이 점차 줄어드는 ‘SLOW GO 시기’, 그리고 신체적으로 제약이 많아지는 ‘NO GO 시기’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흐름에 맞춰 자금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GO GO 시기에는 경험에 적극적으로 쓰고, 이후에는 생활 중심으로 전환하며, 마지막에는 대비 중심으로 준비해야 합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이 흐름을 고려하지 않은 채 동일한 방식으로 연금을 인출하거나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접근한다는 점입니다. 김 사장님의 이야기는 말해줍니다. 그때의 소비는 가장 좋은 시기에 가장 잘 사용된 선택이었습니다.
박 여사님은 그와는 다른 선택을 하신 분입니다. 평생 성실하게 모아오신 분이셨고, 은퇴 후에도 늘 신중하셨습니다. “혹시 아이들에게 쓸일이 생길 지 모르니 아껴야지요.” 여행과 취미를 미루며 지출을 최소화하셨습니다. 몇 해 뒤 다시 뵈었을 때, 박 여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는 가까운 곳도 쉽게 다녀오기 어렵네요. 그때가 아니면 안 되는 시간도 있었던 것 같아요. 요즘은 챙겨야 할 약도 늘었고, 병원을 오가는 일도 잦아지다 보니, 마음은 있어도 예전처럼 쉽게 나서지 못하네요.” 잠시 말을 고르시던 그분은 조용히 덧붙이셨습니다. “자식들에게 남겨준다고 해도 그게 큰 의미가 있을까 싶어요. 오히려 애들도 제가 건강하고 즐겁게 지내는 걸 더 바랐을 텐데, 너무 아끼고만 살았던지라 제 자신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그 말씀에는 후회라기보다, 지나쳐버린 기회에 대한 조용한 아쉬움과 스스로를 돌아보는 담담한 성찰이 담겨 있었습니다.
두 분의 이야기는 같은 메시지를 전합니다. 은퇴 자금은 지키는 돈이 아니라, 삶의 흐름 속에서 쓰일 때 비로소 의미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핵심은 타이밍입니다. 연금은 금액을 나누는 상품이 아니라, 인생의 속도에 맞춰 분배를 설계하는 도구입니다.
결국 재정 계획은 ‘얼마를 가졌는가’가 아니라, ‘언제 어떻게 사용했는가’로 결정됩니다.
문의 : 425-638-2112/ hseo@api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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