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칼럼-허정덕 목사] 상처 입은 치유자

허정덕 목사(시애틀물댄동산교회 담임)

 

상처 입은 치유자


세상은 화려하고 강력한 영웅이나 구원자를 원합니다. 2,000년 전 예루살렘에 모인 군중의 마음도 이와 같았습니다.

그들은 로마의 압제와 가난에서 자신들을 단숨에 구해줄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메시아를 기대하며 예수님을 열렬히 환호했습니다. 

하지만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신성모독죄로 몰아가고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는 무력한 모습을 보이자 그들의 열광은 금세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라!”는 분노와 저주의 외침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구약성경 이사야 53장은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 사건이 발생하기 약 700여전 전에 이미 고난 받는 종으로 오실 그분의 참된 모습을 생생하게 예언하고 있었습니다. 

2절: 예수님은 '연한 순’과 메마른 땅의 ‘한 줄기 뿌리’처럼 흠모할 만한 아름다움이 전혀 없는 초라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하지만 거친 비바람과 굳은 땅을 뚫고 자라나는 연한 순처럼, 그 비참한 연약함 속에는 사망 권세를 깨뜨리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지혜가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3절: 예수님은 높은 보좌에서 우리의 고통을 동정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이 극심한 정서적 고통인 '간고'와 육체적 쇠약함인 '질고’를 아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낮고 천한 마구간 구유에 나신 순간부터 사람들에게 배신당하고 조롱받으며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온갖 슬픔과 고통과 억울함을 온몸으로 아시는 우리의 참된 대제사장이십니다.

4-5절a: 그분이 받으신 고난은 철저히 우리를 대신한 대속적 고난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보며 그가 무언가 죄를 지어 하나님께 징벌을 받는다고 오해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창에 찔리고 뼈가 으스러지도록 상하신 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스스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끔찍한 대가를 아무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대신 치르신 것입니다.

5절b: 이 십자가의 고난은 놀라운 '은혜의 교환'을 이루어 냈습니다. 주님께서 마땅히 우리가 받아야 할 혹독한 징계를 대신 받으심으로, 우리는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는 완전한 평화, 즉 '샬롬'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또한 잔혹한 채찍에 맞아 온몸이 찢기심으로써 죄로 병든 우리는 영원한 나음을 얻었습니다. 주님의 상처는 부활의 소망 가운데 우리의 궁극적인 회복을 100% 보장하는 확고한 약속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창조주이시지만 가장 연약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인생의 모든 아픔과 고통을 친히 체휼하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해 십자가를 지셨기에 우리의 참된 구원자가 되신 것입니다.

이러한 십자가의 은혜는 깨진 도자기를 금이나 은으로 수선하는 일본의 전통 예술 '킨츠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킨츠기 장인들은 산산조각 난 그릇을 쓸모없다며 버리지 않고, 오히려 깨진 균열 위에 눈부신 금빛 칠을 더해, 파손되기 전보다 훨씬 아름답고 고유한 가치를 지닌 예술품으로 재탄생시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킨츠기를 ‘구원의 예술’이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질병과 실패, 상처로 몸과 마음이 산산조각 난 것 같을 때, 세상은 이제 끝났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십자가 보혈이라는 거룩한 금빛 은혜로 우리의 상처를 아름답고 찬란하게 메워 주십니다.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작품으로 새롭게 빚어내십니다. 그러므로 부서지고 깨어진 내 삶의 조각들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처럼 우리도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어, 나의 아픈 흉터가 동일한 고통 속에 신음하는 누군가에게 생명과 위로를 전하는 눈부신 통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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