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수필-문해성] 전쟁과 일상 사이
- 26-03-23
문해성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전쟁과 일상 사이
또 전쟁이야.
TV에서 뉴스 속보로 전쟁 소식이 보도되고 있다. 쏟아지는 폭탄에 파괴되는 건물과 엄청난 불기둥이 솟구치며 도시를 다 삼킬 것 같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놀람보다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민다. 야, 이런…. 나도 모르게 욕설이 나온다. 마음 속에서 뛰쳐나온 감출 수 없는 진심의 언어일지 모른다. 무엇을 위해서, 설사 명분과 실리가 있다고 해도 그 많은 아이를 희생할 만큼 절실했나 묻지 않을 수 없다. 나는 허공에 욕설과 분노를 퍼붓는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일으킨 중동전쟁이 3주 차에 들어섰다. 그런데 전쟁을 일으킨 나라가 이렇게 조용하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사람들이 전쟁에 지쳤나. 그래서 그쪽으로는 눈을 감기로 했나. 그럴 만도 하다. 최근 몇십 년만 돌아봐도 걸프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 등등. 미국이 직접 일으킨 전쟁이 아니어도 개입하거나 간접 지원까지 하면 미국인들의 지치고 허탈한 마음을 이해할 것 같다.
어제나 전쟁의 피해자는 무고한 시민들 몫이다. 당장 차에 넣을 가스값을 걱정하고, 올라가는 물가에 생활비를 걱정해야 한다. 그런가 하면 이번 전쟁과 무관한 나라들이 더 힘든 이상한 형국이다. 특히 석유를 완전히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은 비상사태를 넘어 불안과 공포를 느끼고 있다. 올라가는 기름값에 경제가 멈출 수 있다는 심리적 불안이 더해지면서. 거기에 군함파견까지 압력받고 있다. 전쟁에 개입하지 않은 나라들까지 죽음의 바다로 몰아넣을 기세다.
전쟁의 버튼을 누른 대통령은 한가하게 골프를 즐기고 있다. 지금이 전쟁 중이고 그것을 일으킨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게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물론 미국 본토가 전쟁터가 아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일찌감치 포기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 일상이 돌아가는 이런 현상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TV를 켜면 분명 폭탄이 떨어지고 불타고 파괴되는 전쟁 장면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채널만 돌려도 즐기는 스포츠가, 영화가, 코미디 방송이 평범한 일상처럼 흐른다. 전쟁뉴스가 마치 특집 프로그램처럼 그렇게 보일 뿐이다. 내가 보고 있는 건 분명 공포영화가 아닌데, 이 상황이 참 낯설다. 그렇다고 나도 예외는 아니다. 늘 하던 대로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커피숍에도 간다. 그렇게밖에 할 수가 없다. 한쪽에서는 전쟁으로 사람이 죽고 모든 게 파괴되어 가는데,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이 아이러니 속에서 나는 혼란스럽다.
시대가 바뀌고 기술은 발전했지만, 인간의 폭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정교해지고 더 거대해졌을 뿐이다. 전쟁은 어쩌면 인간의 욕망이 가장 크게 드러나는 순간일지 모른다. 권력을 갖고 싶어 하는 욕망, 더 많은 땅을 차지하고 싶어 하는 욕망,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보다 위에 서고 싶어 하는 욕망. 그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만약 인간이 조금만 덜 욕심을 부리고, 누군가가 한 번만 더 멈추어 생각했다면 어땠을까.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지고 있다. 고도의 지능으로 문자도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수많은 책을 읽고, 음악을 만들고 별을 관측하며 살아간다. 그렇게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인간이, 결국 서로를 향해 총을 겨누는 존재라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하지만 나를 가장 괴롭게 만드는 것은 따로 있다. 전쟁이 벌어지는 동안에도 누군가는 그 속에서 이익을 계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도시가 파괴되고 사람들이 죽어가는 그 순간에 이익을 챙기고 어떤 물건이 더 팔릴지 계산한다. 설익은 AI를 이용해 가짜뉴스를 만들어 조회수를 늘리려 한다. 그런 모습이 전쟁보다 더 슬프다. 총성과 폭발은 순간적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지만, 욕망은 훨씬 더 오래 살아남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그 욕망은 또 다른 전쟁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전쟁을 싫어할 뿐만 아니라 저주한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여전히 나의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구 한편에서는 누군가 마지막 숨을 내쉬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누군가 저녁 메뉴를 고민하고 있다. 우리가 너무 쉽게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인간은 원래 그렇게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세상이 어두워도 사람은 결국 살아야 한다. 밥을 먹고 일을 하고 가족을 돌보며 내일을 준비한다. 그렇게 하루를 이어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지 싶다. 전쟁이 세상을 흔들어도 사람들은 여전히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어쩌면 일상은 인간이 가진 가장 조용한 저항일지 모른다.
언젠가는 TV 뉴스에서 더 이상 전쟁 장면을 보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 희망으로 오늘 하루도 버티며 잘살아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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